[매경닷컴 MK스포츠(인도네시아 치비농) 이상철 기자] 스물두 살의 청년은 인생을 배웠다. 한 달이 채 안 되는 시간, 쓴 맛과 단 맛을 다 경험했다. 금메달, 그 이상의 값진 소득이다.
한국 축구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2연패를 달성했다. 김학범 감독은 “선수들이 스스로 만들었다. 모두가 다 고맙고 미안하다”라고 밝혔다.
스포트라이트는 누구보다 절실했고 간절했던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에게 쏠렸다. 외신도 앞 다퉈 한국의 금메달과 손흥민의 병역 특례를 전했다. 손흥민은 주연이 맞다. 그는 유럽 무대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할 기회를 얻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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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희찬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태극전사의 마지막 골을 기록했다. 사진(인도네시아 치비농)=천정환 기자 |
그렇지만 황희찬(함부르크)이라는 또 다른 주연이 있다. 더욱 드라마틱하다. 시련을 이겨내고 끝내 웃었다. 마치 한 편의 서사시 같다.
8월 8일 U-23 대표팀에 합류한 이후 황희찬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기대를 한 몸에 받은 것치고는 두드러진 활약이 아니었다. 바레인과 조별리그 첫 경기에 여섯 번째 골을 넣었으나 경기력은 만족할 수준이 아니었다.
게다가 말레이시아전 충격패 후 악수를 하지 않으면서 황희찬을 향한 비판이 거셌다. 황희찬은 SNS까지 비공개로 전환해야 했다. 8강 우즈베키스탄전에서도 연장 후반 13분 페널티킥 결승골을 넣은 후 유니폼을 상의를 벗고 침묵 세리머니를 펼쳐 다시 한 번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황희찬의 일거수일투족은 지대한,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작은 행동도 ‘핫 이슈’가 됐다.
경기력이라도 좋았다면 나았을 테지만 그렇지 않았다. 준결승 베트남전에서 3골 중 2골에 관여했으나 황희찬을 향한 차가운 시선은 녹지 않았다. 미운 털이 박혔다.
황희찬에게 반전 기회는 일본과 결승전, 한 번 밖에 남지 않았다. 김학범 감독은 선발 출전 기회까지 줬다. 황희찬이 수비를 단단히 할 일본을 흔들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축구팬은 황희찬이 아닌 이승우가 베스트11에 빠진 것을 두고 불쾌한 목소리를 냈다.
황희찬은 90분 동안 두드러지지 않았다. 몇 차례 저돌적인 돌파를 했으나 의욕이 너무 넘쳤다. 경고를 받기까지 했다. 두 차례 찬스를 만들어줬지만 동료의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1-0의 연장 전반 11분 헤더 골을 넣으며 반전의 신호탄을 쐈다. 한국이 연장 후반 10분 실점으로 2-1 승리를 거뒀던 터라, 황희찬의 골은 결승골이었다. 또한, 그는 박지성이 2010년 5월 일본 팬 앞에서 했던 산책 세리머니를 재현했다. 국민은 그 모습을 보고 통쾌했다. 그를 향한 비판이 눈 녹듯 다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분명 달라졌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았다. 그러나 동료들은 팀을 위해 터질 것이라고 믿었다. 톡톡 튀는 황희찬을 신뢰로 감쌌다. 그 믿음에 답한 황희찬이다.
황희찬은 조별리그 일정을 다 마친 후 많은 골로 팀을 돕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위닝골’이면 더 없이 좋다. 황희찬은 토너먼트에서 2골(8강·결승)을 넣었으며 그 2골은 모두 위닝골이었다.
황의조(감바 오사카)는 “(황)희찬이가 정말 고맙다. 우즈베키스탄전이나 일본이나 중요할 때마다 골을 기록했다”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해피엔딩이었지만 내용적으로는 좌충우돌이었다.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가장 마음고생이 심했던 태극전사였다. 그렇지만 그 과정 속에서 태극마크의 의미와 무게를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황희찬은 시상식 후 “금메달을 딴 게 아직도 믿기지 않다. 꿈꾸는 것 같다. 힘든 순간을 함께 이겨냈기 때문에 더욱 빛나는 금메달
황희찬은 열렬한 응원으로 힘을 실어준 국민에게 감사의 인사도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아직 우리는 젊다. 여기서 만족하거나 안주해서는 안 된다. 더욱 발전해야 한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rok1954@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