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인도네시아 치비농) 이상철 기자]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굉장히 힘겨운 도전이다. 그렇지만 어려우며 두렵다고 피할 생각은 없다. 결단코 우승으로 만들어 보답하겠다.”
3월 5일 U-23 대표팀 사령탑으로 취임한 김학범 감독의 출사표였다. 그리고 그는 5개월 후 한국 축구 통산 다섯 번째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안겼다.
취임 당시만 해도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김봉길 전 감독 체제에서 참가한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4위에 그쳤다. 성적 못지않게 경기력 부진이 도마 위에 올랐고, 결국 5개월 만에 경질됐다. 김봉길 전 감독의 임기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까지였다.
↑ 김학범 감독은 아시안게임 2연패 약속을 지켰다. 사진(인도네시아 치비농)=천정환 기자 |
김학범 감독의 계약기간은 2020 도쿄 올림픽이었다. 하지만 아시안게임을 마친 뒤 중간 평가를 받겠다고 했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물러나겠다는 ‘배수의 진’이었다.
성과는 곧 금메달이다. 아시아 대회에서는 우승 이외 의미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던 김학범 감독이다. 그만큼 강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는 “올림픽까지 임기를 보장 받더라도 아시안게임 성적이 안 좋다면 스스로 그만둘 것이다. 악조건이라도 이겨낼 자신이 있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는 공언한대로 금메달을 목에 걸고 활짝 웃었다.
김 감독의 예상대로 악조건은 하나둘이 아니었다. 변수도 있었고 악재도 있었다. 조 추첨을 세 차례나 하면서 준비에 차질까지 빚었다. 이라크와 평가전은 취소됐으며, 출국일도 변경됐다. 가뜩이나 미숙한 대회 운영으로 좋지 않은 환경인데, 길이 더욱 험난해졌다.
바레인전 6-0 대승에 도취돼 말레이시아전에서 로테이션을 일찍 가동했다가 한 방을 얻어맞았다. 방심하고 자만했다. 여론은 들끓었다. 김학범 감독을 향한 비판이 거셌다. 최종 명단부터 제기됐던 선수 선발 및 활용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대표팀을 둘렀나 분위기도 어수선했다.
지면 끝이었다. 진짜 벼랑 끝에 선 김학범 감독이었다. “험한 길을 자처했으나 기꺼이 감수하고 도전하겠다”라고 각오를 밝혔다.
이후 김학범호에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먼저 반성하겠다던 김 감독은 ‘학범슨’ 답게 팔색조 전술로 승리를 이끌었다. 준결승 베트남전에서 손흥민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8강 우즈베키스탄전이 최대 고비였으나 황의조의 맹활약으로 이겨냈다. 인맥 축구 논란까지 불거졌으나 황의조는 절정의 골 감각을 과시하며 김학범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황의조를 뽑은 것은 김학범이었다. 손흥민에 조현우까지, 와일드카드 3장을 효율적으로 써 효과를 극대화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김학범 감독에게도 의미가 컸다. ‘감독’ 김학범의 역량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성남 일화가 K리그를 주름 잡던 시절 기초를 다졌던 그는 2006년 K리그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 해 감독상을 수상했다. 시민구단으로 전환한 성남으로 다시 돌아와 2014년 FA컵 우승을 지휘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U-23 대표팀은 김학범 감독에게 사실상 마지막 도전에 가까웠다.
아시안게임 금메달, 결코 쉽지 않았다. 특히 원정 아시안게임에서 정상에 오른 것은 1978년 방콕 대회 이후 40년 만이다. 아시안게임 2연패도 사상 처음이다. 박수 받아야 마땅했다. 모두가 찬사를 보냈다. 도쿄 올림픽을 향한 김학범호의 항해 또한 동력장치를 얻었다. rok1954@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