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안준철 기자] “저 선수가 WNBA인가?”
AFP통신 일본·동북아시아지국에서 스포츠와 라이프스타일 취재를 맡고 있는 알러스테어 힘머(Alastair Himmer) 특파원은 30일(이하 한국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이스토라체육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여자농구 준결승 남북 단일팀(Unified Korea)과 대만전을 지켜보다가 한 선수를 가리켰다.
기자가 “19번(Number Nineteen-박지수)?”이라고 되묻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신 코트를 구석구석 누비는 한 선수를 콕 집으며 말했다. “11번(Number eleven).”
↑ 남북단일팀의 맏언니 임영희가 30일 대만과 준결승에서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치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시진(인도네시아 자카르타)=천정환 기자 |
그러자 힘머 특파원은 재빨리 경기 자료집을 뒤적였다. 임영희의 나이를 보더니 놀라면서 물었다. 확인을 요청하듯. “38(Thirty eight)? 정말인가(Really)?”
이날 코리아는 89-66으로 승리를 거둬, 결승에 진출했다. 지난 17일 연장 접전 끝에 대만에 85-87로 당한 패배를 완벽하게 설욕하는 대승이었다. 가장 화제는 박지수(라스베이거스)와 북측 로숙영의 호흡이었다. 로숙영은 이번 대회 단일팀의 주득점원으로 자리매김했다. 182cm의 상대적으로 작은 키이지만, 골밑 플레이가 좋고, 미들슛도 정확해 단일팀의 주요 공격루트였다. 박지수는 WNBA일정 때문에 25일 밤에 자카르타에 도착했다. 다음날인 26일 태국과의 8강전은 벤치에서 지켜봤다. 이날 경기가 박지수의 아시안게임 데뷔전이었다.
힘머 특파원도 경기 시작 전 단일팀에서 북측 선수가 누구인지, 에이스로 떠오른 로숙영이 어떤 선수인지, 그리고 WNBA에서 뛰다온 선수가 누구인지를 자세히 물었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고 나서 그는 임영희에게 꽂혔다. 그럴만했다. 이날 임영희는 전천후 활약을 펼쳤다. 프로필에 기재된 38세, 한국식 나이법으로는 서른아홉살로, 남자 선수를 기준으로 해도 벌써 은퇴를 했을 나이지만, 쉴 새 없이 코트를 누볐다. 이미 전반에만 이날 자신이 기록한 17득점을 모두 넣었다.
특히 1쿼터 임영희의 활약으로 28-20으로 앞선 단일팀은 임영희가 코트에서 잠시 빠진 동안 큰 위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 위기 탈출은 이끈 이도 임영희였다. 35-33으로 2점 차까지 쫓긴 2쿼터 3분15초를 남기고 귀중한 레이업슛으로 단일팀을 위기에서 구해냈으며, 전반 막판에도 연속 속공 득점을 몰아쳐 다시 단일팀이 주도권을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임영희의 활약으로 이후 흐름이 대만 쪽으로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후반에도 더욱 적극적인 공격을 몰아치며 일찌감치 승부에 쐐기를 박을 수 있었다. 임영희는 이날 27분24초를 소화해 17점 7리바운드 4어시스트 1스틸을 기록했다.
임영희는 여자프로농구(WKBL)의 대표적인 대기만성형 선수다. 만33세였던 2012-13 여자프로농구 MVP를 수상하며 뒤늦게 농구 인생을 활짝 꽃피웠다. 이런 활약으로 2014년에는 인천아시안게임 여자농구 금메달의 주역이 됐고, 우리은행의 통합 6연패를 이끈 중심이었다.
단일팀에서는 당연히 정신적 지주다. 여고생 가드 막내 박지현(숭의여고)과는 스무 살 차이가 난다. 북측 선수들까지 임영희가 선수단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단일팀 남북합작의 중요한 키플레이어인 셈이다.
경기 후 임영희는 “의지를 좀 더 가지고 하자고 얘기를 했는데 경기에서 잘 된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결승 상대가 누구든 오늘 같이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맏언니 임영희의 존재가 더욱 든든한 남북 단일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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