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황석조 기자] 지난해 11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APBC 2017, 즉 24세 이하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대회 당시 선동열 대표팀 감독은 “친선전이니까...”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허허 웃으며 취재진 앞에서 선수들을 기특해하는 일도 잦았고 도쿄돔에서는 마치 고척돔처럼 편안하고 상냥한 덕장의 모습을 많이 비췄다.
선수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시즌이 끝난 뒤인데다 또래들이 대거 합류한 대표팀이다보니 활력 넘치고 거침이 없었다. 결승서 일본을 꺾은 뒤 특별한 세레머니를 펼쳐 일본에는 충격을, 고국 팬들에게는 감탄을 안기고자하는 당돌한 계획도 숨기지 않았다. 비록 투수력이 많이 부족했고 결과적으로 일본에 한 번도 이기지 못했지만 화기애애했고 패기 넘쳤고 또 미래가 보였던 대표팀으로 회자된다. 선 감독 역시 당시 기억에 크게 매료돼 이를 바탕삼아 2~3년 중장기 계획을 세웠다 전해지고 있다.
↑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하기 위한 야구대표팀이 23일 결전의 장소로 출국했다. 사진(인천공항)=김영구 기자 |
23일 출국에 앞서 선 감독 및 구성원들의 표정은 짐짓 비장했다. 태풍으로 인한 기상악화로 출국여부가 불투명했기에 더욱 그런 측면이 있었지만 선수단 전체가 금메달이라는 목표에 성공하지 못할 시 닥칠 후폭풍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알 수 없는 무거운 공기가 때때로 퍼져있었다. 선 감독은 “천만다행이다”, “훈련 날짜 때문에 걱정했다”, “최선을 다하겠다” 등 우려와 고민이 듬뿍 담겨진 출정소감을 남겼고 주장 김현수는 더욱 직접적으로 “(대회) 시작도 전부터 욕을 많이 먹었다. 솔직히 부담이 있다. 무조건 금메달을 따야한다는 생각에 압박감을 느낀다”는 진지한 각오를 남기기도 했다.
이와 같은 2017년과 2018년의 차이는 당연한 이치다. 선 감독 말처럼 APBC는 친선대회였고 유망주들의 기량을 점검해보는 게 주된 목표였다. 하지만 이번 아시안게임은 다르다. 한국으로서는 금메달을 수성해야하고 최근 부진했던 국제대회 아쉬움을 털어내야하고 더 나아가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자연히 책임감이 되고 또 부담으로 이어진다. 만약 금메달 그 이하의 결과를 만든다면 선 감독과 코칭스태프, 핵심선수들은 비난의 십자포화를 피하기 힘들 것이다. 당연히 세상에 100% 장담할 수 있는 일이란 없을지 인데 선수단이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돼버린 것이다.
↑ 지난해 11월 젊은 선수들이 주축이 돼 의미 있는 성과를 남겼던 APBC2017. 사진=MK스포츠 DB |
이는 더 나아가 대회에 프로 최정예가 나서는 것 자체로 확대된다. 정예들이 모이는 WBC도 아니고 프리미어12도 아닌, 그렇다고 자국에서 개최하는 특별한 이벤트도 아닌데 아시안게임을 위해 프로 최정예가 시즌까지 중단하고 나섰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아마추어가 대거 나오는 대만, 사회인야구팀으로 구성된 일본 전력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어딘지 모르게 서글픈, 낯선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환경 속 선수단이 ‘금메달 아니면 큰일 날 것’라는 예감을 하는 게 크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선수단은 팬들 반응이 서운한 모양새다. 국가를 대표해서 가는데 응원은 커녕 악담이 더 많은 것 같으니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그럴 법도 하다. 강팀 약팀을 떠나 공은 둥근데 승리를 강요한다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프로스포츠 드림팀이 아마추어 스포츠제전에 나서게 된 유례와 목적을 먼저 생각해봐
국가대표 선수들은 국민들에게 응원 받으며 출국할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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