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야구관계자 몇몇과 점심식사를 했다. 자연스럽게 최근 야구팬들의 질타를 받고 있는 야구선수가 화제에 올랐다. 이 자리에 함께 있던 프로야구 감독 출신의 한 인사가 대뜸 이런 말을 했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따고 현역병으로 입대하는 선수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분위기는 진지해졌다. 그리고 이 인사의 말에 수긍하는 반응이 이어졌다.
우리나라 프로야구 선수들, 거쳐 간 선배들. 기타 여러 종목의 많은 선수들이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입상으로 병역혜택을 누렸다. 지금 이 순간도 군 입대를 합법적으로 피하기 위해 메달획득에 열을 올리고 있는 선수들이 있다. 국민들의 비난과 욕설을 감수하면서.
↑ 2018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잠실구장 훈련 모습. 사진=김영구 기자 |
오래 전 남의 나라 얘기 좀 하겠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1월 6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투수 밥 펠러는 연봉협상을 위해 차를 몰고 가다 라디오를 통해 일본군이 진주만을 공습했다는 방송을 듣고 핸들을 돌린다. 그리고 참전을 위해 자진입대를 선언했다. 그의 나이 24세였다.
펠러는 1941년 시즌 무려 343이닝을 던지며 25승13패, 평균자책점 3.15, 탈삼진 260개로 다승과 탈삼진 1위에 올랐다. 그는 입대 대상자가 아니었다. 많은 연봉을 포기한 것은 물론 목숨을 잃을 지도 모르는 전쟁터에 몸을 던졌다.
펠러는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무사히 살아 돌아와 메이저리그에 복귀하면서 이렇게 말을 했다. “난 영웅이 아니다. 영웅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생존자들이 집에 돌아온 것이다.” 그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것을 수치스러워 했다.
보스턴 레드삭스 테드 윌리엄스는 1941년 4할의 타율을 기록해 지금껏 메이저리그 마지막 4할 타자로 남아 있다. 그러나 윌리엄스가 이듬해인 1942년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것도 파일럿으로 자원해 적 후방을 폭격했다.
윌리엄스는 전쟁이 끝나고 1946년 메이저리그로 돌아와 곧바로 아메리칸리그 MVP가 됐으며, 1947년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윌리엄스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방망이를 집어 던지고 다시 자원입대했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야구선수는 메이저리그, 마이너리그를 포함해 400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목숨을 잃었다. 미국야구가 그냥 미국인들의 국민스포츠가 된 것이 아니다.
상황은 정반대지만 수많은 일본 프로야구 선수들도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제국주의의 총알받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미국 시민권을 가진 교포 청년 중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해 군 입대를 지원한다. 평범한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병역혜택은 남의 나라 얘기다. 이들은 아무 군소리 없이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한다.
프로야구선수들에게 70여 년 전 밥 펠러나 테드 윌리엄스가 되란 소리는 아니다. 국민에게 사랑받는 만큼의 10분의1이라도 되돌려 줘야 하지 않겠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따고 군대 가자.” 특정 선수를 겨냥해서 하는 말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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