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안준철 기자] “10승 하는 순간 와이프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지난 7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만난 SK와이번스 박종훈은 ‘에이스’라는 말에 손사래를 쳤다. 7일 만났을 때만 해도 SK 팀 내에서 다승 1위였고, 이닝(114⅓이닝)은 팀내 2위를 기록 중이었다. 이제는 에이스라고 불러도 될 만한 성적을 거두고 있었지만 박종훈은 “아니다. 다른 형들이 보면 놀린다”며 경계(?)를 풀지 않았다.
올 시즌 박종훈은 한 층 더 성장했다. 8일 현재 10승5패에 평균자책점 3.86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 규정 이닝을 채운 토종 선발 투수 가운데 3점대 평균자책점 투수는 박종훈과 3.58을 기록중인 KIA타이거즈 양현종 뿐이다.
제구가 잡히면서 박종훈은 상대하기 까다로운 투수가 돼 있었다. 땅바닥을 스칠 듯 나오는 피칭으로 상대 타자의 혀를 내두르게 했던 박종훈이지만, 제구는 그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변화무쌍한 공의 변화를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해 자기 공을 못 던져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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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 박종훈은 항상 웃는 인상이다. 이제 그는 자신의 목표 중 하나인 한국시리즈 등판을 정조준 하고 있다. 사진=SK와이번스 제공 |
▲ 긍정의 힘이 만든 2년 연속 10승 “주변 도움이 컸다”
지난해 12승7패 1홀드 평균자책점 4.10으로 프로 데뷔 8년 만에 두자릿수 승수를 거둔 박종훈은 2년 연속 10승을 하는 순간 “아내가 가장 먼저 생각났다”며 웃었다. 동갑내기 박나영씨는 2년 연속 두자릿수 승리의 가장 큰 조력자다. 박종훈은 항상 선발로 등판하는 날에 아내가 끓여주는 소고기 뭇국을 먹고 경기장에 출근한다. “맛있고, 속이 편안해진다”며 웃은 박종훈은 “염경엽 단장님께서 잘 던지는 투수들이 경기 당일 뭘 먹고, 어떤 길로 오는지 잘 보라고 말씀해주셨다. 켈리도 그렇고, 다 정해져 있더라. 그래서 루틴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제 세 살인 딸 시은이도 박종훈에게는 비타민이다. 박종훈은 “딸하고 놀아주다보면 힘든 줄 모른다. 이제 아빠가 야구선수인 줄 알고, 제법 아는 척도 한다”고 자랑했다.
코칭스태프와 팀 동료들의 도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박종훈은 올 해 들어 자신의 제구가 좋아진 것에 대해 “(이)재원이 형의 리드가 도움이 많이 됐다. 예전에는 볼을 빼라고 하는 사인에 스트레스도 받았지만, 재원이 형이 ‘네가 제구가 좋아져서 그러는 것이다’라고 얘기해줘서 더 자신감이 생겼다. 코치님들의 조언도 많은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이어 “원래 성격이 예민했는데, 프로 와서 많이 변했다. 예전엔 못던지면 구석에 가서 혼자 쭈그려 앉아 있었다. 그걸 보고 제춘모 코치님이 밝은 곳으로 인도했다. (김)태훈이 형이나 (서)진용이 등과 어울리면서 외향적으로 바뀌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 첫 메이저대회 국가대표 “팀에 민폐만 끼치지 말자”
박종훈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도 선발됐다. 과거 일본 지바 롯데 마린스에 뛰었던 와타나베 슌스케와 흡사할 정도로 낮게 나오는 공은 충분히 국제무대에서도 통할만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박종훈이고, 프로 2년차였던 2011년에는 야구월드컵 국가대표로, 상무시절이던 2013년에는 동아시아대회 국가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물론 메이저대회 국가대표는 처음이다. 박종훈은 “가문의 영광이다. 가서 민폐만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박종훈이 주요 경기에 나서야 되는 상황이긴 하다. 대표팀에 선발된 투수 중 예선 1차전인 대만전 선발이 유력한 양현종과 더불어 10승을 거두고 있는 투수이기 때문이다. 조심스럽지만 박종훈도 자신감을 나타냈다. 박종훈은 “2013년 동아시아대회 일본전에서 7이닝 2실점을 기록하고 패전투수가 돼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솔로 홈런 2개를 맞았는데, 당시 나왔던 선수들 대부분이 이번에도 나온다고 하더라”라고 소개했다.
박종훈은 “일단 가봐야 알 것 같다. 무엇보다 재원이 형이 함께 태극마크를 달게 돼서 걱정이 덜 된다”며 웃었다. 그는 “내가 맡은 역할은 최선을 다하고 싶다. 좋은 성적을 내는데 보탬이 되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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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훈의 투구는 낮아 잠수함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독특한 투구폼은 제구 불안이라는 독을 품기도 했다. 박종훈은 올 시즌 그 독을 잘 다스리고 있다. 사진=옥영화 기자 |
▲ “팀이 우선이다” 무르익는 한국시리즈 등판의 꿈
이제 10승이라는 고지에 오른 박종훈은 지난해 자신이 세운 한 시즌 최다승(12승) 기록도 넘어설 기세다. 박종훈은 “앞으로 8경기 정도 더 나올 수 있는데, 승수를 추가하기보다는 내가 나온 경기에서 팀이 무조건 이겼으면 좋겠다”고 덤덤히 말했다.
승수 추가보다 더 큰 목표는 포스트시즌 등판이다. 박종훈은 9년 간의 프로 생활에서 아직 가을야구 등판이 없다. SK는 2007년부터 2012년까지 6시즌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박종훈의 입단 후에도 3차례나 한국시리즈까지 오른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 박종훈은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했다. 그렇게 2012시즌 이후 박종훈은 상무에 군입대해 2014년 말 전역했다. 그리고 전역 후에 기회가 찾아왔다. 2015시즌 SK는 역시 5위로 와일드카드결정전에 진출했다. 그 때는 엔트리에 포함됐다. 그러나 역시 당시도 박종훈은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지난해 NC다이노스와의 와일드카드결정전에도 던지지 못했다. 박종훈은 “제춘모 코치님이 자신처럼 10승에 한국시리즈 승리투수가 돼야 인정해주신다고 했다”며 “꼭 인정을 받기보다는 큰 무대에서 던지고 싶다. 개인 성적보다 팀 성적이 좋아야 가능한 일이다. 남은 경기에서도 최선을 다해 팀이 이기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박
1991년 8월 13일생
186cm 82kg
군산중앙초-군산중-군산상고-SK(상무 복무)
2010년 SK 2라운드(전체 9순위)
2011년 제39회 야구월드컵 국가대표
2013년 퓨처스리그 남부리그 최다승리투수상(상무)
2013년 제6회 동아시아경기대회 야구 국가대표
jcan1231@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