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잠실) 이상철 기자] 김재호(33·두산)는 오랫동안 입을 꾹 다물었다. 너무 두려웠다.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힘들었다. 어느 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너무 아팠다. 지금껏 겪지 못한 수난이었다.
김재호의 지난겨울은 힘겨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김재호는 지난해 한국시리즈의 마지막 타자였다. 두 팔을 벌린 양현종(KIA)이 동료들에 둘러싸여 기뻐할 때, 그는 쓸쓸히 퇴장했다. 두산의 패배. 한국시리즈 3연패가 좌절됐다.
KIA가 더 강했다. 두산도 잘 싸웠다. 그러나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2등은 기억되지 않는다. 박수와 격려보다 비난이 쏟아졌다. 특정 선수에게 몰렸다. 그 수많은 화살은 김재호에게 향했다.
↑ 두산 김재호의 미소를 곧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진=김영구 기자 |
2004년 프로 데뷔한 김재호는 베테랑이다. 그럼에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상처 받은 그는 오랫동안 음지에 있어야 했다. 나갈 수 없었다. 나가고 싶지 않았다. 거리를 걷다가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두려웠다.
김재호의 마음은 강추위보다 추웠다. 그의 겨울은 조용했다. 그는 침묵 속에 따뜻해질 봄을 기다려야 했다.
김재호는 오랫동안 말을 아꼈다. 시즌을 마친 뒤, 해가 바뀌어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를 치르는 동안에도. “죄송하다.” 김재호에게 들을 수 있던 말도, 김재호가 할 수 있던 말도 그것 밖에 할 수 없었다.
24일 시즌이 개막한다. 저마다 기지개를 편다. 김재호도 다시 일어설 준비를 마쳤다. 그는 이제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잃어버린 자신감도 회복했다. 이번에는 따뜻한 겨울을 꿈꾸는 김재호, 그 동안 할 수 없었던 이야기보따리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
“지난해는 어느 해보다 힘겨운 한 해였다. 주장을 맡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시작으로 참 많이 욕을 먹었다. 시즌 중에는 (어깨를)다친 데다 포스트시즌에서는 부진으로 무수한 비판을 받았다. 안 좋은 일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2017년 8월 29일 잠실 롯데전. 김재호는 수비 도중 왼 어깨를 다쳤다. 어깨 인대를 다친 그는 재활 후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포함됐다. 한국시리즈는 2차전부터 선발로 뛰었다. 그러나 100% 컨디션이 아니었다. 힘을 보태고 싶었으나 그렇지 못했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한국시리즈 준우승이 가장 아쉽다. 팀과 팬도 (내게)많은 기대를 걸었을 텐데 그 하나하나에 부응하지 못했다. 사실 불안했다. 어쩌면 안 나가는 게 맞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를 필요로 했다. 감사했다. 나도 잘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역시 내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두산의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그를 향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됐다. ‘김재호 때문에 졌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관련 뉴스에는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이 가득했다. 선수도 인간이다. 맷집도 한계가 있다. 한국시리즈 2연패에 기여했던 김재호는 한 순간 ‘죄인’이 됐다. 조심스러웠다. 활동 반경도 좁았다. 집, 야구장, 병원만 오갔다.
“주위에서 뉴스 댓글을 읽지 말라고 했다. 굳이 안 보더라도 나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팬 앞에 서기가 힘들었다. 마치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두산을 열렬히 응원했던 팬이 아쉬움에 쓴소리를 하는 거였다. 그러나 너무 많으니 감당하기도 쉽지 않았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다. 자신감도 많이 잃었다. 사람을 보는 걸 의식하게 됐다. 길거리를 걷는 데도 눈치를 봤다. 그렇게 되더라. (사람들을)피해 다녔다.”
상처는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다. 그가 흘린 땀이 많을수록. 그리고 겨울이 가고 봄이 올수록. 결국 그가 다시 서야 할 곳은 야구장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해왔듯, 다시 야구를 해야 한다. 팬 앞에서.
“과거 힘들었던 경험 덕분이지 추스를 수 있었다. 지금은 괜찮다. 다 지난 일이다. 다 털었다. 어쩌면 다행일 지도 모른다. 안 좋은 일이 몰린 만큼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좋은 일이 생길 수 있으니까. 살다 보면 누구나 그런 날이 온다고 생각한다. 인생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지 않은가. 쭉 내려갔지만 다시 조금씩 올라가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새 시즌을 준비했다.”
↑ 두산 김재호의 미소를 곧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진=김영구 기자 |
“안 아프고 시즌 개막을 맞이한다는 게 가장 잘 된 것 같다. 혹시 다칠지 몰라 신경을 많이 썼다. 몸을 드는 단계부터 달랐다. 어깨가 아픈 상태로 포스트시즌을 소화했다. 검사하고 치료하며 재활 위주로 시간을 많이 보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어깨 상태는 8,90% 정도다.”
김재호는 건강하다. 멘탈도 강해졌고 몸도 튼튼해졌다. 자신감을 회복했다. 그렇게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리셋.’ 김재호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이번에는 수비 훈련을 이것저것 정말 많이 했다. 스프링캠프에서는 물론 귀국 이후에도 계속 했다. 몸이 안 되니 어이없는 실책을 범했다. 그에 많은 비판을 들었다. 다시 이겨내려면, 수비에 대한 자신감을 되찾아야 했다. 그래서 기본기부터 하나씩 다시 했다.”
김재호는 6번의 시범경기에 출전했다. 전 경기를 뛰었다. 그의 각오대로 수비에서 미스 플레이는 없었다. 실책은 0개. 야구의 즐거움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솔직히 지난해는 너무 힘들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됐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모든 게 좋다. 적어도 몸 상태는 좋다. 체력적으로 잘 준비됐다. 그리고 더 이상 어깨를 짓누르는 게 없는 만큼 재미있게 시즌을 치를 수 있을 것 같다.”
두산의 목표는 우승이다. 김태형 감독은 지난 22일 개막 미디어데이에서 우승을 천명했다. 지난 1월 시무식에서도 두산 선수단은 하나같이 우승을 노래했다. 누구보다 다시 정상에 서고 싶은 것은 김재호다.
“모든 팀이 그렇지만 나 역시 꼭 우승하고 싶다. 저마다 정상에 오르기까지 그 과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훈련을 많이 해서 우승을 하는 게 아니다. 훈련이 적어서 우승을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선수들끼리 하나로 뭉쳐 우승을 목표로 달려가는 것이다. 목표는 우승일 수밖에 없다. 설사 올해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 다음 목표가 생기기 마련이고 그에 따라 선수도 발전하는 것이다.”
김재호는 누구보다 자신의 역할이 크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 재능 있는 후배들이 있지만, 적어도 자신이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해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빈자리가 없지 않다. 그러나 (박)건우와 (김)재환이가 잘 메워주면서 티가 덜 난다. 그리고 새롭게 젊은 선수가 등장한다. (허)경민이도 지난해와 달리 좋은 출발이다. 확실히 지난해와 다른 시즌이 될 것 같다. 문제는 나와 주장 오재원 아닐까. 우리 둘이 프로로서 잘 한다면 팀이 더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올해 그의 소원은 얼핏 허무맹랑하게 들릴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만큼 그의 간절한 마음이 잘 담겨있다. 한 번도 이루지 못했으나 이번만큼은 꼭 해보고 싶다.
“가장 첫 번째 소원은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이다. 나아가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하고 싶다. 말 그대로 소원이지 않은가. 지난해 워낙 많은 욕을 먹었다 .나 때문에 두산이 졌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나 때문에 이겼다라는 말을 한 번 듣고 싶다.”
김재호에게 2018년 겨울은 어떨까. 적어도 그는 봄 같이 따뜻한 겨울을 희망하고 있다. 동료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다른 팀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판가름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