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안준철 기자] “야구는 투수 놀음이다”라는 말은 오래 된 야구계의 격언이다. 10번의 기회에서 3번만 안타를 때려도 잘 치는 타자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야구는 투수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스포츠다.
현대 야구에서 투수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고, 위상은 높아지는 게 현실이다. 최근 들어 타고투저 현상이 심화되면서 투수의 가치는 더욱 뛰고 있다. 올해도 타고투저 현상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스트라이크존을 확대하며 타고투저 현상은 완화되는 듯 했다. 4월까지 리그 전체 평균자책점은 4.38, 타율은 0.270이었다.
하지만 리그 평균자책점은 27일까지 4.96으로 5점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역대 최고였던 2014년(5.21)과 지난해(5.17)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여름을 지나고 난 뒤에는 비슷해지지 않으리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평균자책점과 마찬가지로 리그 전체 타율도 역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현재 0.285로 역대 최고였던 지난해(0.290)와 2014년(0.289)을 넘보고 있다.
↑ 후반기 롯데의 상승세가 무섭다. 마무리 투수 손승락의 역투가 눈에 띈다. 사진=MK스포츠 DB |
그러나 후반기 들어서 순위 경쟁은 종잡을 수 없게 전개되고 있다. 선두 KIA는 후반기 두 번째 3연전이었던 롯데와의 홈경기에서 스윕을 당했고, NC가 다시 추격하는 그림이 만들어졌다. 전반기 예상 밖으로 부진했던 전년도 챔피언 두산이 치고 올라오고 있다. 반면 3위를 굳건하게 지켰던 SK는 7연패에 빠지면서 6위까지 추락했다. 후반기 순위싸움의 중심에는 역시 마운드가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 지키는 야구…후반기 희비 가른다
지키는 야구가 후반기 희비를 가르고 있다. 지난 18일부터 시작된 후반기에서 가장 돋보이는 팀은 롯데다. 롯데의 후반기 팀 평균자책점은 2.52로 10개 구단 중 유일한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 중이다. 롯데는 지난해까지 2년 연속 에이스 역할을 했던 조쉬 린드블럼(30)이 선발진에 복귀하면서, 안정적인 선발 로테이션을 가져갈 수 있는 동력을 확보했다. 여기에 시즌 초반 부진했던 브룩스 레일리(29)가 연일 호투 중이다. 지난 6월30일 사직 NC전부터 5연승 중인 레일리는 지난 23일 광주 KIA전에서 완투승을 거두기도 했다. 특히 후반기 롯데 상승세의 주역은 불펜투수들이다. 불펜 평균자책점이 2.55로 역시 10개 구단 중 유일한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 중이다. 불펜의 중심에는 마무리투수 손승락(35)이 있다. 손승락은 후반기 들어 4세이브를 추가했고, 자책점은 0점이다. 하지만 26일 사직 한화전에서 롯데는 9-3으로 앞선 9회초 수비실책이 겹치면서 5점을 내주는 불안한 모습을 보였고, 27일 한화전에서는 3-3으로 맞선 9회초 조정훈이 3실점(자책점)을 기록하며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후반기 불펜 평균자책점이 8.02인 SK 사정은 처참하다. 25일 광주 KIA전에서 9회 박희수(34)가 김선빈(28)에 통한의 동점 투런홈런을 허용한 게 상징적인 장면이다. 그 여파인지 26일 경기에서도 연장 혈투 끝에 패하고 말았다. SK의 후반기 팀 평균자책점은 8.73으로 10개 구단 중 최하위다. 홈런을 앞세운 공격야구도 투수들의 부진 속에 빛을 발하기 힘든 상황이다. 넥센도 불펜이 무너지면서 연이틀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했다. 26일 잠실 LG전에서 마무리 김세현(30)이 3-1로 앞선 9회말 등판했지만 3점을 내주며 블론세이브와 함께 끝내기 패배의 패전을 안았다. 올해 부상과 부진 속에 마무리에서 물러났다가 최근 복귀한 김세현은 다시 불안감을 키웠다. 이전 마무리 김상수(30)는 이날 밀어내기 끝내기 볼넷을 내줬다. 27일 경기에서는 한현희(24)가 3-2로 앞선 9회말 등판해 2사까지 잘 잡아놓고 박용택(38)에 끝내기 투런홈런을 맞았다.
↑ 27일 오후 잠실야구장에서 벌어진 2017 프로야구 KBO리그 넥센 히어로즈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LG가 연이틀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LG는 2-3으로 뒤지던 9회 말 박용택의 역전 끝내기 홈런으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한편 이날 경기에서 패한 넥센은 2연패에 빠졌다. 최원태 등 넥센 선수들이 연이틀 역전패에 아쉬워하고 있다. 사진=김재현 기자 |
과거 사례를 참고해 봐도, 후반기 순위싸움에서 투수들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2011년 후반기 대약진하며 정규시즌 2위에 올랐던 롯데가 그랬다. 당시 롯데는 올스타브레이크 전 38 3무41패로 5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후반기 초반 7경기에서 6연승을 내달리며 무서운 기세를 탔다. 8월에만 16승(7패)을 쓸어 담았다. 후반기에서 4연승만 3번이었다. 5연승과 6연승이 1번씩이었다. 롯데는 후반기 34승으로 그 해 한국시리즈 우승팀 삼성(33승)보다 더 많이 이겼다. 선발로 재미를 보지 못해 불펜으로 보직이 바뀌었던 노장 브라이언 코리를 퇴출하고, 새로 데려 온 크리스 부첵이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가면서 장원준-송승준-라이언 사도스키-부첵-고원준으로 로테이션이 완성됐다. 특히 마무리 김사율이 나흘 연속 등판해 4연속 세이브를 거두는 등 임경완-강영식과 함께 확실한 필승조 역할을 해줬다.
지난해 LG도 후반기 반등을 통해 가을 야구를 밟은 기적의 주인공이다. LG는 지난해 전반기 순위가 8위였다. 34승 1무 45패로 승패 마진이 ‘-11’이었다. 1위 두산과는 무려 19.5경기차였다. 그러나 후반기 54경기에서 37승을 수확했다. 이 또한 마운드 안정과 관련 있다. 지난해 LG는 7월까지 팀 평균자책점 8위~6위를 오르내렸다. 8월 월간 평균자책점이 4위로 올라선 뒤 9월은 1위를 기록했다. 역시 셋업맨 김지용과 마무리 임정우의 역할이 컸다. LG는 2014년에도 후반기 반등하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당시 LG는 시즌 중 감독 교체 여파로 팀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하지만 양상문 감독 부임 후 마운드부터 안정을 찾았다. 당시 LG는 6월까
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말처럼 투수력이 뒷받침이 되면, 타선까지 살아날 때 그 상승세가 더욱 커보이는 효과가 있다. 후반기 마운드의 힘을 앞세워 치열한 순위경쟁에서 살아날 팀이 어디일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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