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엑소더스(China Exodus)' 풍부한 노동력과 저임금 때문에 중국에 둥지를 틀었던 글로벌 기업들이 규제나 정치적 문제로 인해 이탈하는 현상이다. 하지만 산업분야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중국축구협회가 자국 선수 보호를 위해 외국인 선수 출전 규정을 크게 줄이면서 '축구판 차이나 엑소더스'가 벌어지고 있다.
올 시즌이 시작하기전 중국 슈퍼리그에서 뛰는 한국인 선수는 무려 10명이나 됐다. 5명 보유에 아시아 쿼터 1명 포함, 4명까지 동시에 경기를 뛸 수 있도록 했던 여유로운 외국인 선수 출전 규정 덕분에 공격에는 유럽이나 남미의 비싼 선수를 쓸지언정 수비에는 '가격대비성능'이 뛰어난 한국인 수비수들이 큰 인기를 끈 것이다. 국내 K리그보다 훨씬 높은 연봉 수준을 약속하니 선수들에게도 나쁠 것이 없는 이적이었다.
그러나 불과 한 시즌만에 아시아 쿼터 없이 외국인 선수 3명만 출전하는 것으로 규정이 바뀌며 모든 것이 달라졌다. 현재 슈퍼리그에는 황석호(28·텐진 테다), 김기희(28·상하이 선화), 김영권(27·광저우 에버그란데), 권경원(25·텐진 취안젠), 정우영(28·충칭 리판) 만이 남아있고, 이번 여름이적시장에서도 황일수(30)만이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옌볜 푸더로 적을 옮긴 것이 전부다.
규정 변화는 물론, 지난 시즌까지 중국을 호령하던 이장수, 최용수, 홍명보 감독이 연이어 사임하거나 경질당한 것도 그들이 지휘봉을 잡으며 함께 데려갔던 한국 선수들의 거취에 악영향을 미쳤다. 새로 부임한 감독들이 또 자신의 입맛에 맞는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저렴한 한국 선수들이 가장 먼저 주전에서 밀려나는 모양새다.
경기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급선무인 선수들은 일단 K리그로 복귀하면서 활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옌볜에서 함께 뛰었던 김승대(26)와 윤빛가람(27)은 각각 포항 스틸러스와 제주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으면서 친정팀 복귀를 선택했다. 김형일(33)은 아예 2부리그인 K리그 챌린지 부천을 택하기도 했다. 비록 연봉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지만 그보다는 익숙한 곳에서 정기적인 출전 기회를 갖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포항 유스 출신인 김승대는 "포항은 내 집처럼 편안한 곳"이라며 "K리그에 복귀한다면 포항이 당연히 1순위였다"고 말했고, 선수 생활 막바지에 접어든 김형일 역시 "뛰지는 못했지만 중국에서 좋은 경험이었다. 이제 부천의 1부리그 승격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겠다 "고 밝혔다.
물론 여전히 해외에서 승부를 보려는 선수들도 있다. 주로 울리 슈틸리케 전임 국가대표 감독 체제에서 중용됐던 수비수들이다. 장현수(26)는 지난 12일 광저우 푸리에서 과거 자신이 뛰었던 J리그 FC도쿄로 완전 이적하며 중국을 벗어났고, 장쑤 쑤닝에서 13일 외국인 선수 등록 제외를 통보받은 홍정호(28) 역시 새로운 팀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올 시즌 광저우 푸리에서 단 1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던 장현수는 "정말 경기에 뛰고 싶어 이적을 결심한 것"이라며 "중동팀 제안도 있었지만 프로 데뷔했던 도쿄에 마음이 더 끌렸다"고 말했다. 아직 계약 기간이 2년 6개월이나 남아 임대 이적이나 계약 해지 등 여러 방안을 두고 고민해야 하는 홍정호는 여름 이적 시장이 끝나기 전 새 팀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해야한다.
선수 개인의 입장에서 자신이 정기적으로 출전할 수 있는 팀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 다만 8월 31일 이란전과 9월 5일 우즈베키스탄전에서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어야 하는 신태용호에는 반갑지 않은 일이다. 당장 눈 앞의 승리가 급한 상황에서 수비수들의 컨디션 문
한준희 해설위원은 "남은 월드컵 예선 2경기는 그 시점에서 가장 컨디션이 최고조인 선수들을 뽑아야 한다"면서 "지금 팀을 옮겨야 하는 선수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실전감각을 끌어올리기 어렵다는 뜻이기에 달가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용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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