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김성근(75) 한화 감독이 불명예 퇴진했다. 한화와 김 감독의 만남은 결과적으로 ‘새드엔딩’이었다.
‘야신’ ‘승부사’로 불렸던 김 감독은 명예 회복에 실패했다. 한화는 김 감독 체제에서도 ‘가을야구’를 구경만 했다. 막대한 투자를 하고도 순위를 맨 아래에서 몇 계단 올린 정도다.
한화는 2015년 6위(68승 76패), 2016년 7위(66승 3무 75패)에 그쳤다. 5할 승률에도 미치지 못했다. 22일 현재 올해 성적표도 참담하다. 18승 25패로 9위에 머물고 있다. 시즌 내내 하위권을 전전하고 있다. 지난 4월 15일 이후 7위권 이내로 진입한 적은 딱 1번(5월 13일 7위)뿐이었다.
↑ 김성근 감독과 한화 이글스는 결별했다. 시기가 다를 뿐, 어느 정도 예상됐던 그림이다. 사진=MK스포츠 DB |
한화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6시즌 동안 최하위를 5번이나 기록했다. 유일하게 탈꼴찌에 성공한 2011년도 최하위 넥센 바로 위였다.
‘최약체’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한 한화는 김 감독의 손을 잡았다. ‘야신을 원한다’는 한화 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한화가 김 감독에게 바란 것은 가을야구 갈증 해소였다. 이를 위해 지갑도 열었다. 부임 당시 연봉 5억원은 최고 대우였다. 지금도 여전히 최고 대우다.
김 감독은 “마지막까지 기회를 주신 구단에 감사드린다. 한화를 명문구단으로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면서 목표는 우승이라고 취임 소감을 밝혔다. 그러나 김 감독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한화가 바랐던 그림도 그리지 못했다.
김 감독은 퇴진했다. 지난해 말 기회가 더 주어졌지만, 결국 계약기간 3년을 다 채우지 못했다. 제 발로 나갔든 등 떠밀려 나갔든 그는 한화와 인연이 끝났다.
한화는 김 감독의 리더십, 훈련 강도, 승부근성 등을 높이 평가하며 팀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 점 때문에 한화는 매 경기 시끄러웠다. 퀵후크, 혹사, 훈련방식 등 각종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명문구단으로 가는 길을 닦겠다던 김 감독이 남긴 유산은 전혀 달랐다. 김 감독은 ‘김성근이니까’라는 편견 섞인 시각에 불쾌감을 드러냈지만, 오늘만 걱정하는 김 감독의 야구는 불편함과 불안감을 안겼다. 내부적으로 잡음과 마찰의 연속이었다. 권한이 1군 선수단으로 축소된 뒤 더욱 심해졌다.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물론, 김 감독 부임 후 한화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전국구 구단이 됐다. 온오프라인에서 화제가 끊임없이 생산됐으며, 한화 경기를 보러 수많은 관중이 몰렸다. 관심의 정도는 다른 9개 구
폭발적인 인기는 쉽게 얻을 수도 받을 수도 없다. ‘프로’야구단으로써 가치를 높일 수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많았다. 게다가 한화가 아닌 김 감독에 쏠렸다. ‘이슈메이커’ 김 감독의 퇴진과 함께 거품이 빠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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