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강윤지 기자] 경기를 앞두고 준비 중이던 A선수가 멀리 있는 누군가를 보더니 흠칫 놀라 도망치듯 몸을 숨었다. B방송의 C해설위원과 마주치지 않으려던 것. 나중에 그 이유를 묻자, A선수는 “B위원이 TV 중계에서 나에 관해 지나치게 안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 마주치기가 껄끄럽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야구선수가 프로야구선수가 되는 순간, 가장 달라지는 생활은 팬과 미디어다. 특히, 선수와 팬의 사이를 이어주는 미디어 노출에 신경을 쓴다. 자신의 가치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해마다 진행되는 신인선수 오리엔테이션에서 미디어교육이 빠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자신에 관한 기사, 중계방송을 챙긴다. 국내 선수는 물론 외국인선수도 PC, 스마트폰의 번역 기능을 활용해 찾아본다. 자신에 대한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이야기를 수도 없이 보고 듣는 선수들은 개의치 않으려 한다. 그렇지만 크고 작게 심리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디어를 통해 비난이 가해질 때 타격은 가중된다. 미디어가 ‘선수 비난의 판‘을 작정하고 깔아줄 때도 있다. 언제부턴가 당사자가 웃어넘기기 힘들게 과한 시청각 자료들이 필터링 없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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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스포츠로 불리는 프로야구. 지난 5일 잠실 LG-두산의 어린이날 매치서 10년 연속 매진을 기록한 모습. 사진=천정환 기자 |
프로야구는 거의 전 경기가 중계되고 있다. 2015시즌 10구단 kt의 가세로 하루 5경기가 열리면서 중계방송사는 총 5개로 늘어나 실시간으로 전파를 탄다. 접근성도 가까워졌다. 야구팬은 TV를 비롯해 인터넷, 스마트폰 등을 이용해 중계를 접할 수 있다. ‘플레이볼’ 시간이 다가오면 포털사이트에는 어김없이 ‘프로야구 중계’라는 검색어가 등장할 정도로 프로야구 중계방송은 인기 콘텐츠가 됐다.
이에 각 방송사는 타사와 차별성을 두면서 시청자에게 더 큰 만족을 주는 중계를 만들기 위해 매년 많은 투자를 한다. 초고속 카메라, 피칭캠 등은 상당히 고가의 장비들이다. 여기에 스타 해설위원의 영입 비용까지 더하면 한 시즌을 꾸려가는 데는 적지 않은 예산이 든다.
이렇게 정성을 들이고 많은 투자를 하는 데도 최근 중계방송에 대한 시청자의 불만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중계 본연의 역할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 시즌 동안 팀당 144경기 등 총 720경기가 치러진다. 모든 경기가 다 재미있을 수는 없다. 점수차에 상관없이 공 하나하나가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팽팽한 경기가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경기도 많다. 방송사에서는 일방적으로 한 팀이 경기를 끌어가거나 흐름상 느슨한 내용이 이어질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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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중 선수의 SNS(반려견-식단)를 캡쳐해 띄운 화면. 사진=중계방송 캡쳐 |
그런데 언제부턴가 자료의 질과 양이 모두 과해지면서 ‘자료공해’를 일으키고 있다. 시청자가 눈살을 찌푸리는 횟수도 그와 비례해 늘어났다. 좋은 중계를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색해질 정도로 중계 그 자체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올해 들어 한 방송사는 선수 및 선수 지인의 SNS를 생중계 화면에 삽입하고 있다. ‘야구stagram’이라는 이름으로 선수의 반려견이나 식단 사진이 등장한다. 한 선수가 좁은 주차 공간에 어려움을 표한 SNS 게시물을 화면에 띄우고, 중계석에서는 “(공간이 좁으니) 선루프를 통해서 타야겠다” “요즘에는 주차 공간이 너무 좁다” 등의 멘트로 화제가 자연스럽게 전환되는 식이다. 선수 본인의 SNS를 넘어 가족의 SNS까지 범위를 넓히면서 일반인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까지 일어나고 있다.
↑ 야구 경기 생중계 도중 드라마 채널로 변경? 지난 4월 30일 광주 경기 실제 중계 화면. 사진=중계방송 캡쳐 |
스포츠중계의 제1원칙이 ‘현장감’이다. 중계방송은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면을 경기장에 있지 않은 시청자의 눈과 귀로 고스란히 전해주는 데 가장 큰 가치가 있다. 그러나 요즘 중계방송은 이러한 최우선 가치를 잃고 있다.
지난달 30일 광주 NC-KIA 경기에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골수 KIA팬을 자청하는 배우 이선균이 시구에 나선 것. 중계 방송사는 시구를 마친 이선균을 중계석으로 초대했다. NC 에이스 제프 맨쉽이 공을 던지고 KIA의 4번타자 ‘100억의 사나이’ 최형우가 치는 흥미진진한 맞대결이었다. 하지만 중계방송은 그라운드의 선수가 아닌 중계석의 시구자 위주였다. 딱 공을 던지는 그 순간만 그라운드를 비출 뿐, 카메라는 계속해서 이선균을 좇았다.
급기야는 시청자의 눈을 동그랗게 뜨게 만드는 장면까지 전파를 탔다. 이선균의 대표작인 드라마 ‘파스타’의 자료화면이 나온 것. 이어 이선균의 KIA 사랑 등 연예인 신변잡기 식의 이야기로 흘러갔다. 경기는 진행 중이었다. 선수가 안타를 때려도 중계진은 한 문장으로 상황을 요약 설명하더니 다시 이선균에 집중했다. 이 경기를 보러 채널을 고정했던 시청자는 “내가 지금 무슨 채널을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야구중계에 야구가 아닌 이야기가 도배됐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해설위원의 관련 장면을 경기 중 내보내면서 그 후일담을 듣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이야기가 특정인 위주로 과하게 편중되기도 했다. 해설위원의 아들인 선수가 등장할 때마다 공격·수비를 막론하고 초점을 부자(父子)의 ‘가족 채널’로 만들어 시청자의 몰입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
한 야구팬은 “선수 출신 해설들의 선수 시절 사진이나 자료화면까지는 이해를 하더라도, 개인적인 내용까지 나오는 것은 별로다. 야구에 집중할 때 방해 받는 느낌이다. 나는 야구를 보고 싶은 것이지 예능을 보고 싶은 게 아니다. 팬들이 처음에 좀 재밌어 해주니까 점점 도가 지나치는 것 같다. ‘어그로’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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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시즌 10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삼성. 최근 한 방송사에서 이를 조롱하는 단어를 자막에 띄우기도 했다. 사진=MK스포츠 DB |
감독이나 선수를 지나치게 희화화하거나 조롱하는 것도 문제다. 온라인 유머게시판에나 올라오는 댓글을 여과 없이 가져다 쓰거나, 팬끼리만 보는 데서 쓸 법한 과한 비난의 글을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 시청자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선수의 실수 장면을 수도 없이 반복 재생하는 것부터, 자막이나 자료로 조롱하는 식이다. 한 관계자는 “저런 영상을 왜 저렇게 보여주지 싶을 때도 있긴 하다. 지고 나서 그런 걸 다시 볼 때는 화가 난다”고 말했다.
과거 이런 방식으로 공개적인 조롱의 대상이 됐던 한 선수는 “나는 열심히 하려고 한 건데 그렇게 비추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일부러 하는 것도 아닌데 좀 그렇다.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고려한 것이라고 해도)적당하게 선을 지켜주면 좋겠다. 간혹 선을 안 지켜줄 때가 있는데 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다.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으려 하지만 짜증 날 때가 있는 건 사실이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피해자가 된 선수들은 이따금 구단 홍보팀을 통해 불만을 전하기도 하지만 구단 입장에서는 방송사에 대놓고 이야기하기가 껄끄러운 것도 사실이다. 논란의 횟수에 비해 정식 항의 건은 터무니없이 적다.
같은 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도 서로의 과한 행태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 한 전문가는 “옐로우 저널리즘으로 가는 것은 막아야 한다. 선수들을 지나치게 신성시할 필요는 없지만 존중할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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