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빗맞아도 홈런이다. 자세가 흐트러져도 홈런이다. 넥센팬은 허정협(27)의 ‘괴력’ 매력에 푹 빠졌다. 연일 상종가다.
육성선수로 넥센 유니폼을 입은 지 3년 만에 시즌을 2군이 아닌 1군에서 시작했다. 허정협은 “그동안 기회를 잡지 못했는데, 올해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돼 감격스럽다. 기대에 부응하고 좋은 결과로 보답드릴 수 있게 어느 자리에서든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했다.
그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25일 현재 넥센의 1군 엔트리에는 허정협이라는 이름이 남아있다. 그냥 한 자리만 차지하는 게 아니다.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지고 있다.
주전 우익수, 그리고 5번타자. 대타라는 한정된 기회만 얻었던 그의 현재 포지션이다. 장정석 감독은 허정협에 대해 “기용할 때마다 잘 하는데 안 쓸 수 있는가”라며 껄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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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넥센의 허정협은 21일 고척 롯데전부터 25일 고척 두산전까지 4경기에서 안타 5개를 쳤다. 그 중 4개가 홈런이었다. 사진(고척)=김재현 기자 |
특히, 지난 21일 고척 롯데전 이후 최근 4경기에서 홈런 4개를 때렸다. 영양가 만점이다. 그의 홈런이 터진 3경기에서 넥센은 진땀을 흘리고도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허정협의 안타 18개 중 장타가 10개(홈런 6개-2루타 4개)다. 장타율이 0.755에 이른다. 규정 타석 기준이라면 4위에 해당되는 수치다. 허정협의 장타 능력은 퓨처스리그에서 검증됐다. 2년간 31개의 홈런을 쏘아 올렸다. 스스로도 남들보다 힘이 좋다는 걸 느낀다.
허정협은 “평소에는 잘 모르겠다. 특별한 보양식 같은 것은 없다. 남들처럼 똑같이 밥을 먹을 뿐이다”라며 “그런데 배팅 훈련을 할 때 다른 선수보다 타구가 더 강하고 더 멀리 날아갈 때 느껴지더라. 친할아버지의 유전이 아닐까 싶다. 할아버지께서 젊은 시절 체격이 좋으셨고 힘이 세셨다”라는 말과 함께 웃었다.
경기를 뛰는 것만으로 감사하다는 허정협은 그는 “겨우내 준비를 정말 열심히 해왔다. 내게 기회가 주어지기만 한다면 곡 해낼 수 있다고 여겼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매 타석 집중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 절실함이 허정협 활약상의 원동력이다.
허정협의 끝없는 노력과 강병식 타격코치의 조언 아래 거포 유망주는 꽃을 피우고 있다. 지난 25일 고척 두산전의 5회말 홈런은 강렬했다. 승부에 쐐기를 박는 한 방이기도 했지만 정상적인 타격 자세가 아닌 데도 타구를 외야 담장 밖으로 넘겼다.
허정협은 “중심이 뒤에 있어 (자세가 흐트러졌지만)힘이 실려 넘어갈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라면서 “이 같은 모습 때문에 다들 나에게 ‘힘이 좋다’라고 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타구의 궤적을 보고 홈런이라는 걸 느낀다. 빗맞은 게 홈런이 됐을 때 더 짜릿한 것 같다. ‘내 힘으로 잘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투만큼 자신감 있는 스윙이었다. 장 감독은 “이제는 타석에 섰을 때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게 보인다. 이 같은 페이스면 30홈런도 거뜬히 가능하다. 간혹 타격을 망설일 때가 있는데 보다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하면 더 좋지 않을까”라며 흡족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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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런 후 유니폼 상의에 입을 맞추는 허정협만의 세리머니. 사진(고척)=김재현 기자 |
허정협은 이에 “그런 농담과 별명도 나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감사하다”라면서도 “너무 많이 들었다. 난 한국인인데 그만해 주셨으면 좋겠다”라며 정중하게 요청했다.
일부 넥센팬은 허정협을 향해 ‘갓정협’이라고 표현한다. 이를 전해들은 허정협은 마냥 부담스럽지도 싫지 않다는 반응이다. 당장 그렇게 불러달라며 떠들고 다니기는 민망스럽다. 아직은 1군 한 자리를 꿰차기 위해
허정협은 25일 경기를 마친 후 수훈선수로 선정돼 1루측 단상에 올라갔다. 3번째다. 그렇게 한 차례씩 늘려간다면 그가 원하는 ‘그 멋진 별명’을 불릴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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