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이제 10경기 밖에 치르지 않았다. 144경기의 대장정에서 6.9%의 일정만 소화했다. 하지만 눈에 톡톡 튀는 건 분명하다. 이정후(19·넥센)는 2017 프로야구 KBO리그 개막 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물 중 1명이다.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슈퍼스타였던 이종범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그의 별명조차 ‘바람의 손자’로 불리고 있다. ‘바람의 아들’이 별명이었던 아버지의 영향 탓이 크다.
단순히 ‘스타 2세’ 때문만은 아니다. 스스로 잘 하고 있다. 타율 0.455 15안타의 시범경기 성적표는 운이 좋았기 때문이 아니다. 이정후는 ‘현재’ 넥센의 주전 외야수로 뛰고 있다. 실력으로 기회를 잡았다.
무엇보다 신선하다. 새 얼굴에 대한 목마름은 늘 큰데, 이슈를 끄는 이유 중 하나는 이제 갓 고교를 졸업한 ‘신인’이기 때문이다. 특히, 야수다. 초고교급으로 불렸던 유망주가 입단 첫 해부터 1군 무대를 평정하기는커녕 왕성하게 활동하는 것조차 어려워진 KBO리그의 현주소다. 이정후의 활약은 단번엔 눈길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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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KBO리그에서 고졸 신인 야수가 입단 첫 해부터 두각을 보였던 적은 드물었다. 때문에 이정후의 등장은 신선하다. 사진=옥영화 기자 |
올해 개막 엔트리에 등록된 신인 5명 중 고졸은 이정후와 홍현빈(kt), 장지훈(삼성) 등 3명이다. 2주가 채 안 지난 사이 1군에 남아있는 이는 이정후 밖에 없다.
2⅓이닝 5탈삼진 무실점의 장지훈은 오른 팔꿈치 수술을 할 예정이며, 홍현빈은 2군에서 실전 경험을 쌓는다. 김진욱 kt 감독은 “안타를 치지 못하는 것 보다 (자신 있게)제 스윙을 하지 못한다. 부담감을 느끼는 것 같다”라며 수원의 기둥으로 성장하는데 편안한 분위기 조성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홍현빈의 1군 성적은 5타수 무안타였다.
고졸 신인이 첫 해부터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다. 오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비율은 점차 줄었다. 류현진(LA 다저스) 같이 데뷔와 함께 KBO리그를 평정하는 신인은 등장하지 않고 있다. 특급까지는 아니더라도 KBO리그 상위 레벨에 준하는 기량을 첫 해부터 보여준 이도 거의 없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선수의 기량이다. 야구계는 전반적으로 과거에 비해 아마추어야구의 수준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한다. 층이 얇아졌다. 야구를 비롯해 축구, 농구, 배구 등 다른 스포츠종목도 유망주 품귀 현상이 있다. 학부모가 자녀를 운동선수로 키우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도 영향을 끼친다.
체격은 좋아졌다. 그렇지만 당장 프로 무대에 뛰기 위해서는 부족한 게 많다. 한 야구 관계자는 “기본기, 파워, 스피드 등 여러 가지가 딸린다. 프로 입문 후 새로 다시 운동을 배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마추어야구의 현실을 꼬집었다. 이기는 야구에 초점을 두는 고교야구의 스타일 변화다.
그는 “아마추어에서는 빠른 선수를 추구한다. 공을 맞히는 걸 중요시 여긴다. 우투좌타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선수들도 나무배트를 쓰면서 스윙의 과감성이 떨어진다. 배트 스피드, 파워 등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경기 위주로 운영되니 기본기가 많이 약하다”라고 전했다.
수준이 향상된 KBO리그의 벽도 높아졌다. 곧바로 뛰어들어 기량을 뽐낼 정도로 선배들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메이저리그 출신이 하나둘씩 늘어난 외국인선수도 TV로 보던 것과 다르다.
한 현장 지도자는 “고졸 신인은 아직 준비가 덜 돼 있다.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한다. 몸도 성인이 아니라 완성되지 않아 1시즌을 풀타임으로 뛰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한 선수도 “프로에서 만나는 외국인투수는 고교 시절 상대한 투수와 급이 다르다. 게다가 힘에서 밀리니 당해낼 재간이 없다”라고 설명했다.
구단도 단기가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으로 선수를 육성한다. 구단은 지명과 함께 선수 개개인에 대한 계획을 짠다. 기간은 천차만별이나 고졸 신인을 즉시 전력으로 쓰겠다고 여기는 구단은 거의 없다. 최근 신인상을 수상한 중고 신인도 이 같은 계획 아래 성장했다.
특히, 야구계 관계자들은 야수가 투수보다 성장하기 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한 스카우트는 “야수 중 잠재력이 큰 자원이 상대적으로 투수 보다 풍족하지 않다”고 했다.
고졸 신인 투수보다 고졸 신인 야수를 쉽게 보기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포지션의 특성 차이다. 야수는 한정된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반면, 투수는 협업이 필요하다. 한 프로 감독은 “투수는 절대 혼자 잘 할 수가 없다. 각각의 역할을 나눠 맡는다. 또한 구속, 제구 등으로 타자와 승부를 벌일 수 있다. 하지만 야수는 뛸 기회가 한정돼 있다. (고졸 신인은)힘이 약해 (기존 선수와)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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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KBO리그에서 고졸 신인 야수가 입단 첫 해부터 두각을 보였던 적은 드물었다. 때문에 이정후의 등장은 신선하다. 사진=옥영화 기자 |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단연 두드러지는 신인이다. 이 같은 페이스를 이어갈 수 있다면, 신인상을 충분히 노릴 수 있다. 한 야구인은 “현재 이만큼 임팩트를 남긴 신인이 없다. 지금까지 퍼포먼스로는 이정후가 (신인상 자격 조건 대상자 중)톱이다”라고 했다.
이정후의 신인상 여부에 벌써부터 관심을 끄는 건 ‘희소성’도 한 이유다. 고졸 야수가 입단 첫 해 신인상을 수상한 것은 2001년의 김태균(한화)이 마지막이다. 그만큼 귀한 이력이 됐다. 그 이후 투수(15명 중 9명·60%)가 주를 이뤘던 데다 대다수 중고신인이었다. 2007년의 임태훈 이후 고졸 신인이 입단 선배를 제치고 신인상 트로피를 손에 쥔 적은 없다.
넥센에는 과거 타이틀 프로젝트가 있었다. 염경엽 전 감독은 성취감에 따른 선수의 성장과 맞물려 개인 타이틀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코칭스태프는 꾸준하게 기회를 부여했고, 선수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자 노력했다. 그러면서 넥센은 개인 타이틀 수상자를 여러 명 배출했다.
그렇다면 넥센은 올해 이정후 신인상 만들기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을까. 신인상 후보 자격은 당해 시즌을 제외한 최근 5년간 투수 30이닝 및 야수 60타석 이내다. 이정후는 12일 현재 39번 타석에 섰다. 부상 등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이정후는 올해 60타석을 채운다. 그렇다면 신인상에 도전할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다.
장정석 감독은 “지금 (신인상으로 만들려고)이정후를 밀어주는 일은 없다”라며 분명히 선을 그었다. 이정후가 선발로 뛰는 이유에 대한 장 감독의 설명은 간단명료하다. 잘 하고 있으니까 쓰는 것이다.
잘 친다. 이정후는 12일 현재 타율 0.297 2홈런 7타점 11득점을 기록했다. 넥센이 지난 7일 두산전 이후 5연승을 달린 데에는 타선의 톱니바퀴가 잘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 한 축이 2번타자 이정후다.
이택근은 “2003년 프로 데뷔 이래 지켜봤던 고졸 야수 중 최고인 것 같다. 타석에서 투수와 싸움을 상당히 잘 하는데, 고졸선수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라고 평했다.
좋은 선수가 나오려면, 구단이 잘 뽑고 코칭스태프가 잘 키우고 선수가 잘 해야 한다. 선수의 기량 외에도 여러 가지가 중요하다. 운도 그 중 하나다.
이정후는 운이 좋았다. ‘기회의 땅’ 넥센에 왔다. 고교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넥센은 신인에게 기회를 준다. 넥센이 창단 이래 지명한 선수 중 1번이라도 1군에 호출된 비율은 24.1%에 이른다. 4명 중 1명꼴이다. 10개 구단 중 가장 높다. 몇몇 구단은 같은 기간 비율이 한 자릿수다.
때가 맞았다. 김하성이 대체 선수로 발탁돼 스프링캠프에 합류할 수 없었다. 이정후는 당초 포지션이 내야수였다. 시범경기 동안 임병욱이 팔꿈치 통증으로 제외되면서 이정후에게 기회가 돌아갈 수 있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부담 없이 자신 있게 자신만의 스윙을 하고 있다.
시즌은 길다. 일직선은 없다. 누구나 오르락내리락 곡선을 그린다. 이정후에게도 슬럼프가 올 것이다. 프로의 세계는 이번이 처음이다. 상대에게 더 정밀하게 분석될 테고, 타이트한 일정에 더위까지 찾아오면 체력적으로 힘들 수도 있다.
2016년 신인상의 신재영도 조언했다. 신재영은 “꾸준하게 했던 게 수상 비결이었다. 그렇기 위해선 슬럼프를 최대한 짧게 가
이정후는 개인 타이틀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에게는 먼 미래의 이야기다. 아직까지는 꿈꿨던 1군 경기를 뛴다는 것만으로 재미있고 즐겁다. 그 행복만 누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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