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새내기다. 하지만 ‘핫 피플’이다. 프로 1군 경기를 정식 데뷔하기 전부터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졌다. 언론은 앞을 다퉈 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지난 3월 31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 LG 트윈스-넥센 히어로즈전에 앞서 진행된 중계방송사 인터뷰에서 마이크를 잡은 것도 그였다. 넥센 선수단 내 2017시즌 KBO리그 공식 인터뷰 1호였다.
2017 신인 1차 지명 받은 이정후(19). ‘바람의 손자’로 불린 그는 다른 입단 동기 신인선수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아버지가 ‘바람의 아들’ 이종범(47)이라는 후광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실력으로 자신을 향한 인식을 바꾸고 있다. 이종범의 아들이 아닌 프로야구선수 이정후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좀 칠 줄 아네’라던 주위 시선도 달라졌다. 신인선수라는 색안경도 사라졌다.
신인선수가 아닌 기존 프로선수 같이 바라본다는 장정석 감독(44)은 “타격은 사이클이라는 게 있다. 지금같이 계속 잘 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도 정말 잘하고 있어 기특하다. 내 기분까지 좋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이정후는 프로야구 시범경기에서 많은 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남다른 타격 재능에 더 눈길을 끌었다. 사진=김재현 기자 |
이정후는 시범경기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2경기에 출전해 타율 0.455 15안타 4타점 9득점을 기록했다. 마지막 시범경기에서 1타석만 서면서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했지만 장외 타격왕이었다. 안타도 15개로 공동 1위. 출루율 0.486으로 OPS가 1.092에 이르렀다.
각종 타격 부문 상위권이다. 각 팀마다 100% 전력을 쏟지 않는 시범경기지만 프로 경험이 전혀 없는 고졸신인의 국내 무대 첫 선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적표다. 이정후를 본 이들은 하나같이 “고졸선수 답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야수조 맏형인 이택근(37)은 이정후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택근은 “2003년 프로 데뷔 이래 지켜봤던 고졸 야수 중 최고인 것 같다. 타석에서 투수와 싸움을 상당히 잘 하는데, 고졸선수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라고 평했다.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참가로 시범경기를 통해 이정후를 처음 본 서건창(28)도 “‘잘 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직접 두 눈으로 보고 깜짝 놀랐다. 스스로 실력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이야기했다.
이정후의 시범경기 출전은 넥센의 큰 그림이었다. 신인 2차 1라운드(전체 7순위)의 김혜성(19)과 함께 마무리훈련부터 선배들을 따라 운동했다. 넥센의 미래를 책임질 두 유망주에게 프로 세계의 경험을 쌓기 위함이었다.
마무리훈련 중 실시한 50m 달리기에서 최하위를 기록하며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했던 이정후는 4개월 후 쟁쟁한 선배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정후에게 눈길이 모아지는 건 그의 타격 재능 때문이다. 시범경기 기록에 드러나듯, 잘 친다. 투수의 공을 정확히 배트에 맞힌다. 발사각도 좋으니 타구의 질이 좋다. 콘택트는 웬만한 선수보다 낫다는 평가다.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의 룸메이트였던 김웅빈(21)은 “주관이 뚜렷한 후배다. 정말 잘 때려서 솔직히 부러울 때가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정후의 타격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인정을 받았다. 안타 생산보다 타구의 질에 집중했던 이정후는 또래 사이에서 톡톡 튀었다. 지난해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한 김혜성은 “(이)정후는 그냥 잘 치는 수준이 아니다. 콘택트가 뛰어난 데다 힘을 타구에 잘 전달한다. 볼 때마다 놀랬다. 따라하려 해도 난 할 수가 없었다”라고 회상했다.
강병식 타격코치(40)는 이정후의 콘택트, 선구안, 대범함을 높이 봤다. 강 코치는 “스무 살답지 않게 대범하다. 자기만의 존을 갖고 있다. 그 존에 온지 않는 공을 치지 않는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타석에 서도 실행에 옮기는데 차이가 있다. 이정후는 그걸 해낸다”라고 말했다.
↑ 이정후는 야구에 대한 욕심이 많다. 완벽해지고 싶은 게 그의 바람이다. 사진=김재현 기자 |
코칭스태프의 후한 평가는 타격 때문만이 아니다. 코칭스태프는 이정후의 진중한 자세를 더 높이 평가한다. 야구에 대한 욕심이 많다. 적극적이면서 완벽을 추구한다.
이지풍 트레이닝코치(39)가 지켜본 결과, 이정후는 ‘스펀지’다. 알려주는 걸 빠르게 흡수한다. 이 코치는 “자질도 있지만 자세가 남다르다. 뭔가를 배울 때 눈빛부터가 다르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이해력이 뛰어나다. 배우면 바로 실천에 옮기는 게 대단하다”라고 말했다.
한 예로 이 코치는 마무리훈련 직후 이정후에게 체중을 85kg까지 늘릴 경우 스프링캠프 멤버로 적극 추천하겠다고 미션을 줬다. 진짜일리 없다. 일종의 당근으로 동기부여 차원이었다.
마무리훈련을 떠나기 전 체중이 73~4kg이었던 이정후는 82kg까지 증량했다. 짧은 기간 몸을 키운다는 게 쉽지 않다. 개막전 당일 이정후의 체중은 79kg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으로 단계를 밟아간다.
아마추어와 다른 프로의 훈련에 이정후는 새로 눈을 떴다. 하나하나가 재미있다. 야구를 더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는다. 이정후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 지금 당장 (계획한 만큼)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조금씩 키워가려고 한다”라면서 천천히 한 걸음을 내딛는다.
이정후는 야구를 잘 하고 싶은 의지가 강하다. 고교 1학년 때부터 매일 밤 200번의 스윙 연습을 했다. 어느 날 잘 치다가 못 치게 되자, ‘이렇게 야구를 하면 안 된다’라고 스스로를 채찍질 했다. 그 노력은 보상 받았다. 배트 스피드가 빨라지면서 타격이 훨씬 좋아졌다. 자신감도 쌓였고 자신만의 타격이 정립됐다.
이정후가 넥센 입단 후 야간 스윙 연습을 한 것은 딱 1번이었다. 오랫동안 길들인 습관을 프로 입문 후 버렸다. “무작정 많이 하는 것보다 연습할 때 집중하는 게 더 좋다”는 코칭스태프의 조언을 따랐다. 규칙적인 생활과 함께 휴식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 코치는 “(이)정후가 방향을 잘 잡아가고 있다”라며 흐뭇해했다.
이정후는 자칭 완벽남이다. 야구에 관해서는 완벽해지고 싶어 한다. 코칭스태프를 찾아가 적극적으로 묻기도 한다. 강 코치는 “얼마 전 (이)정후가 찾아와 타격 시 하체에 관해 묻더라. 그래서 ‘지금은 괜찮다’라고 해줬다. 젊은 나이에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할 수는 없다. 나쁜 게 많지도 않아 괜찮으니 하던 대로 하라고 일러줬다. 지금도 (자신만의 타격을)잘 정립해뒀다”라고 했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는다. 이정후는 “고칠 때까지 시도하는 스타일이다. 지금도 고칠 게 많다. 특히 타격과 관련해 하나하나 신경을 많이 쓴다. 오른 팔꿈치를 쓰는 경향이 있고, 힘도 길러야 한다”라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 이정후의 KBO리그 데뷔전은 짧았다. 1번의 공격과 1번의 수비만 있었다. 그 가운데 존재감을 보였다. 사진=김재현 기자 |
지난 3월 20일 김혜성이 시범경기를 완주하지 못하고 2군으로 가면서 이정후는 신인 중 유일하게 1군 선수단에 남았다. 김혜성은 절친한 친구에게 “너는 (2군이 있는)화성에 오지 마”라며 응원했다. 두 신인의 만남은 당분간 성사되지 않는다. 이정후는 27명의 개막전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신중하되 어려운 고민은 아니었다. 시범경기를 마치기 전 이정후의 개막 엔트리 등록은 사실상 결정됐다. 장 감독은 “누구나 본 대로 좋지 않은가. 옥석을 가리고 있는데, (이정후가)계속 잘하고 있다면 당연히 써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설명했다.
이정후는 얼떨떨한 반응이다. 시즌 개막부터 1군 무대에서 뛸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 이정후는 “내가 상상했던 2017년 봄과 다르다. 2군에서 경험을 쌓을 줄 알았다. 여기까지 달려온 것도 대단한데 개막전 엔트리까지 뽑혀 감사할 따름이다”라고 했다.
개막 경기 시작시간은 오후 7시. 이정후에겐 첫 야간경기다. 이에 맞춰 생활리듬도 늦췄다. 오전 11시에 일어나 오후 1시 야구장에 도착했다. 개막전이자 데뷔전이다. 그는 “경기를 뛰어봐야 어떤 느낌일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분명 신이 날 것 같다”라며 웃었다.
이정후는 개막전 선발 명단에 빠졌다. 대니 돈(좌익수), 고종욱(중견수), 이택근(우익수)가 선발 출전했다. 당장 주전을 꿰차긴 힘들다. 장 감독은 “백업 외야수로 활용하겠다”라고 했다.
장 감독은 경기 전 이정후를 대타로 기용할 의사를 피력했다. 이정후는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왔다. 그가 그려왔던 프로 첫 타석은 ‘정상 스윙’이다. 이정후는 “아웃되더라도 정확하게 때리고 싶다. (안타 등)결과보다 타구의 질이 중요하다. 중견수 뜬공이어도 잘 맞혔다면 아쉬울 게 없다”라고 말했다.
장 감독의 공언대로 이정후는 대타로 기용됐다. 팀이 1-2로 뒤진 8회말 2타수 무안타의 포수 박동원을 대신해 타석에 섰다. 이정후는 이동현(34)의 초구에 반응했다. 다소 빗맞은 타구는 외야의 묘한 코스로 날아갔다. 행운의 안타가 될 것 같았으나 우익수 채은성(27)이 슬라이딩 캐치했다.
결정적인 순간 기대감을 심어주고 싶다는 이정후, KBO리그 데뷔전에서는 공격이 아닌 수비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9회초 외야 깊숙하게 날아가는 채은성의 타구를 빠르게 달려가 잡았다. 고척스카이돔에 자리한 8013명의 관중은 “이정후”를 연호했다.
이정후는 아마추어 시절 내야수로 뛴 시간이 더 많았다. 그렇다고 외야수로 자질이 부족한 건 아니다. 홍원기 수비코치(44)는 “재미있는 친구다. 외야 수비도 나쁘지 않다”라고 평했다.
이정후는 이날 경기 전 오규택 주루코치(44)의 지도 아래 홀로 외야 수비 훈련을 했다. 앞으로 매일 할 예정이다. 오 코치는 “외야 수비 경험이 적을 뿐 떨어지는 게 아니다. 내야와 외야 수비는 다르다. 송구, 포구 등 틀을 만들어야 한다. 빠르게 이해하는 만큼 금방 좋아질 것 같다”라고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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