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안준철 기자] 2014년 5월2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서울고와 용마고의 제68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은 투수전이라는 예상이 빗나갔다. 당시 서울고는 최원태(현 넥센)를, 용마고는 김민우(현 한화)를 선발로 내세우며 고교 에이스 맞대결이 성사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1-1로 양 팀이 팽팽히 맞서던 2회말 1사 만루에서 서울고 톱타자 홍승우의 우중간 싹쓸이 3루타로 승부가 가려졌다. 이날의 결승타였다. 3타점 싹쓸이 3루타 외에도 내야안타와 타점 하나를 추가한 홍승우의 활약에 힘입어 서울고는 11-3으로 우승트로피를 차지했다. 이 해 홍승우는 타율 0.429를 기록하며 서울고를 전국대회 2관왕으로 이끈 주역 중 하나였다. 당연히 프로나 대학야구 무대에 진출해 맹활약을 꿈꿀만한 유망주였다.
그러나 홍승우(19)는 지난 2년반 동안 무적선수였다. 아마야구 ‘입시비리’ 스캔들의 중심에 선뒤 고교 ‘4할타자’는 야구판의 아웃사이더가 됐다. 고3 때 6개 대학에 원서를 냈다가 3곳에서 탈락했고, 나머지 학교로부터는 입학포기 압박을 받았다. 그나마 입학한 서울 유명사립대에서는 야구부 활동을 할 수 없다고 통보해 다시 재수를 했다. 재수시절에도 야구부가 있는 또 다른 유명 사립대에 탈락했다. 홍승우는 부당한 현실에 대해 목소리를 냈고, 내부고발자가 된 그를 향한 아마야구계의 시선은 싸늘했다. 그리고 서서히 잊히는 듯 했다.
그런 그가 지난 16일 발표한 서울대 체육교육과 수시모집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직 입학 전이지만, 서울대 야구부 종무식에 참석해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 ‘MK스포츠’는 22일 홍승우를 만났다. 홍승우는 “이제 즐기면서 야구하고 싶다”며 서울대 합격의 소감을 대신했다.
↑ 지난 22일 MK스포츠와 만난 홍승우. 2년 동안 무적(無籍)이었던 그는 이제 서울대라는 보금자리를 찾았다. 사진=이승민 기자 |
▶ 축하한다. 운동선수 출신으로 3수를 해서 서울대에 가게 됐다. 쉽지 않았을 텐데 그 동안 고생이 많았겠다.
“감사하다. 사실 공부를 많이 하지는 못했다. 지난해 입시에서 떨어지고 나서는 미국에 유학가서 야구를 하려고 했다. 여름에는 미국으로 가서 트라이아웃에도 참가했다. 하지만 병역이 해결되지 않아 비자가 나오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어서, 수능을 80일 남기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운이 좋았다.”
▶ 운동만 하던 입장에서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다.
“용기라기보다는 내가 다시 야구를 하는 방법이 서울대 입학뿐이었다. 지난해에도 서울대에 원서를 넣고, 다른 사립대를 지원했는데 모두 떨어졌다. 특기자로 선수를 선발하는 대학에는 내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올해는 서울대만 지원했다. 작년에 재수를 마음먹게 됐을 때는 ‘나를 무너뜨린 사람들에게 공부로도 대학을 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게 목표가 됐고, 절박했기 때문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고3시절인 2014년 서울고 2관왕의 주역이다. 호타준족 타자로 평가가 좋았다.
“프로에서도 많이 눈여겨보셨다. 스카우트 분들께서 학교에 오셔서 영상도 많이 찍어가고 그러셨다. 당연히 프로에 갈 줄 알았고, 내심 상위라운드에 뽑힐 수도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하지만 드래프트에서 나는 선택되지 못했다. 그때부터 학교와의 싸움이 시작됐다.”
▶학교와의 싸움이라? 입시 문제와 관련된 얘기인가?
“그렇다. 처음에는 당시 감독님이 신고선수로라도 프로에 가라고 하셨다. 하지만 신고선수는 미래가 너무 불확실해서 대학을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지방에 있는 학교를 가라고 하셨다. 나는 수도권 대학에 가고 싶었다. 또 ‘내가 가고 싶은 대학에 못가나’라는 생각이 들어, 직접 원서를 넣었다. 여섯 군데 학교 중 세 군데에 합격했는데, 선수는 안된다고 하더라. 나 때문에 미리 들어오기로 한 선수가 입학이 안 될 수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 중 한 학교는 야구선수로 등록시켜준다고 해서 입학했는데, 말이 바뀌었다. 동계훈련에도 가지 못했고, 협회에 선수등록이 안됐다. 그래서 한 학기 다니고, 재수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사실들이 알려져, 경찰의 입시비리 수사가 시작됐다. 어떻게 보면 내부고발자다. 그런 점에서 괴로웠을 것 같기도 하다.
“당시 ‘한국에서는 앞으로 다시 야구하기 힘들 것이다’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스스로도 ‘야구를 하지 못하게 된다’라는 두려움이 컸다. 그러나 무엇보다 친구들과 관계가 멀어진 게 마음이 좋지 않다. 초·중·고 함께 야구를 했던 친구가 나 때문에 피해를 봤다는 얘기도 했다. 물론 친구들을 이해하려 했다. 내가 야구계에서는 이단아니까. 하지만 얘기가 안 통할 것 같으니 연락도 안하게 됐고, 나도 마음을 닫았던 것 같다(쓴웃음).”
▶공부하는 과정도 만만치는 않았을 것 같다.
“학습능력은 초등학교 6학년에서 멈춰있었다. 4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친구 따라서 리틀야구를 시작했는데, 아버지가 평균 90점은 나와야 계속 운동을 시켜준다고 하셔서 초등학교 때는 운동과 공부를 같이 했다. 그러나 중학교 이후부터는 공부를 거의 안해 힘들었다. 아버지가 논술학원을 하시기에 국어는 아버지한테 직접 배우고, 수학과 영어는 따로 과외를 받았다. 오래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1시간마다 책상에서 일어나야 했다. 나중에는 적응이 되면서 책상 앞에서 오래 책을 볼 수 있게 됐다.”
↑ 서울고 시절 홍승우. 홍승우는 "3루타를 동기생 중 가장 많이 쳤다"며 자기 자신을 PR했다. 사진처럼 홍승우는 3루에 안착하는 장면이 익숙한 중장거리형 선수였다. 사진=홍승우 제공 |
▶입시 준비를 하면서 야구는 자주 봤나?
“학원 수업 듣느라 자주는 못봤다. 학원에서 돌아오는 늦은 시간에는 주로 한화 이글스 경기만 남아 있어서, 한화 경기를 가장 많이 봤다. 야구를 시작했을 때 SK를 좋아했는데, 당시 김성근 감독님이 계시던 시절이라, 그 생각도 많이 났다. 사실 야구 경기를 보고 있으면, ‘나보다 못하던 친구들도 프로에서 뛰는데 나는 왜 지명을 못 받았을까’ 원망도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저 친구는 지명받을만한 장점이 있겠구나’라고 상황을 인정하게 됐다. 이제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문제다.”
▶올해는 준비기간도 짧았는데, 어떻게 입시를 준비했나?
“자신 있는 과목 위주로 공부했다. 사실 공부량은 지난해에 비해 적었다. 하지만 작년에 한 번 해봐서 그렇게 긴장은 되지 않았다. 작년 수능 때는 너무 긴장해서 시험지가 젖을 정도로 손에 땀이 났었다.”
▶올해 입시에는 서울대에만 지원한 것으로 들었다. 만약 이번에 합격하지 못했다면, 앞으로 진로를 어떻게 하려고 했나?
“군대에 가려고 했다. 이후 군대에 다녀와서 다시 대학 입시나 유학을 준비하려 했다.”
▶합격해서 다행이다. 인생에서 가장 좋을 때가 대학 합격증 받고 나서 입학 전까지의 기간이라고 주장하는데, 가장 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
“경기에 나가고 싶다. 실전에 나가서 뛴 지도 벌써 2년이 넘었다. 운동을 게을리 하지는 않았다. 올해 미국 진출 준비를 하면서 모교인 서울고에서 가서 같이 훈련도 했고, 트라이아웃에서도 미국 투수들 공을 쳐보기도 했다. 그래도 실전에 대한 갈증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서울대 야구부에서 활약을 기대해도 좋을까. 홍승우 선수까지 가세하면 덕수고 출신 이정호와 함께 전력이 많이 좋아질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기대는 된다. 군 복무 중인 (이)정호 형이 내년 중반 이후 전역하면 괜찮을 것 같다. 안그래도 합격자 발표 다음날(17일)에 야구부 종무식을 했는데, 그 때 오라고 하셔서 야구부 선배들과 인사했다. 동계훈련부터 참가하라고 하시고, 등번호도 23번으로 정했다. 야구 시작할 때 번호인데, 비어 있길래 23번을 쓴다고 말씀드렸다.”
▶이제 서울대 이후의 진로도 설정을 해야 할 것 같다. 혹시 서울대 출신 최초의 프로야구 선수를 도전할 생각은 없나?
“지금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처지가 못된다. 프로 도전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20대 초반이 가장 근력이 발달할 시기인데, 나는 상대적으로 운동을 덜해서 걱정이다. 운동능력 면에서 남들보다 뒤쳐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프로 입단을 준비하기에 서울대가 여건이 부족한 것도 인정해야 한다. 서울대는 수업도 많이 신경 써야 할 것 같다. 입학한뒤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해보고 천천히 마음을 결정할 생각이다.”
▶어쨌든 내년부터는 그라운드에 돌아온다.
“그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든다. 마음 편히 야구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꼭 야구선수로서 뿐만이 아니더라도,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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