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KBO 윈터미팅 발전포럼에서 리그의 타고투저 현상에 대한 발제를 부탁받고 처음에는 조금 막막했다. 너무 방대한 영역이라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내게도 흥미진진한 주제였기 때문에 고민 끝에 발제를 맡기로 결심했다. 용기를 낸 데에는 탁월한 자료 분석 능력을 갖춘 스포츠투아이 데이터 분석팀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든든함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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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시즌 이후 4년 연속 KBO의 홈런-타점왕을 독차지했던 박병호(미네소타)는 리그 타자들의 공격적인 성향, 몸쪽 공에 대한 대처를 바꾸어놓은 ‘트렌드세터’였다고 생각된다. 사진=MK스포츠 DB |
‘타고투저’ 시즌과 ‘투고타저’ 시즌을 가르는 어느 정도 객관적인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신동윤 한국야구학회 데이터분과장은 경기당 팀 득점 4.5점을 기준으로 제시한 바 있다. 리그 통산 경기당 팀 득점(4.517점)을 고려한 기준이다. 그렇다고 경기당 팀 득점이 4.4점이면 ‘투고’, 4.6점부터 ‘타고’라고 말하기엔 석연찮아서 역대 시즌의 기록을 비교해봤다.
경기당 팀 득점이 낮았던 하위 25% 시즌의 평균 경기당 팀 득점은 4.1점이었고, 경기당 팀 득점이 높았던 상위 25% 시즌의 평균 경기당 팀 득점은 4.8점이었다. 전자 그룹은 상대적으로 ‘투고타저’ 시즌, 후자 그룹은 ‘타고투저’ 시즌으로 봐도 될 것 같다.
2014년부터 2015, 2016년까지 최근 3시즌은 모두 후자 그룹에 속하는 ‘타고투저’ 시즌이었다. 2010년 이후 시즌 중에 전자그룹(투고타저)에 속했던 해는 7명의 ERA 3.00 이하 투수가 나왔던 2012시즌이 유일하다.
최근 3년 동안 계속된 ‘타고투저’의 원인에 대해 많은 분석이 나온다. 대형 신인투수가 귀해졌고, 투수들의 기량이 정체됐다는 근본적인 걱정이 많다. 불펜진의 과부하와 수비실책의 증가, 엄격한 스트라이크존이 배경으로 꼽히기도 한다. 전력분석팀의 현미경 투구분석과 배트의 발전도 타자들의 기술 향상을 도왔다. 삼성 이승엽은 “외국인타자들의 가세가 국내 타자들의 성장에 기여했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웨이트트레이닝과 체계적인 몸관리를 통해 타자들의 파워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도 관찰된다.
이 모든 원인들이 지속적인 ‘타고투저’ 시즌의 복합적인 배경이 됐을 것이다. 다만 나는 그중에서도 타자들의 변화와 성장, 그리고 그 원인을 찾아보고 싶었다. 타자들은 어떻게 투수들의 성장을 압도하면서 ‘타고투저’의 시대를 열었을까. 세 가지 가설을 세워봤다.
첫째는 몸쪽 코스에 대한 대처로 대표되는 타격 기술의 발전이다. 강력하고 빠른 몸통 회전으로 몸쪽 공을 받아쳐 안타와 홈런을 만들어냈던 2012시즌의 박병호가 트렌드의 선구자가 됐고, 많은 타자들이 그를 벤치마킹하면서 전체 타자들의 기술적 성장이 이루어졌다는 가정이다.
둘째는 스윙 궤적의 대세적인 변화다. 투수의 투구 궤적을 맞받아치는 슬라이트업 스윙이 대세가 되면서 타자들의 정타 확률이 높아졌
세째는 타자들의 평균적인 파워의 증가다. 근육량을 늘린 타자들의 파워가 향상되면서 평균적인 타구속도와 비거리가 상승했고 그 결과 장타율 등의 지표가 좋아지면서 타선의 득점력이 높아졌다는 가정이다. <②편에 계속> (SBS스포츠 프로야구 해설위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