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승민 기자] 그들은 한때 ‘X세대’로 불렸다. 자유로움과 개성, 감각적인 트렌디함으로 이전 세대와는 뚜렷하게 차별적인 젊음을 뽐냈던 세기말의 신인류. 1990년대에 찬란한 20대를 달린 그들은 한국 프로야구의 역동적인 성장기를 이끌었던 세대이기도 하다.
어느새 그들이 KBO 리더십의 주류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이 김한수 감독(45)을 선임하고 넥센이 장정석 감독(43)을 선택했던 가을을 지나 12월의 첫 날, LG는 트윈스 선수단 출신 첫 프런트 수장인 송구홍 신임 단장(48)의 임명을 발표했다. 참신한 발탁 인사의 주인공이 된 이들은 모두 1990년대에 프로에 입단했던 ‘X세대 선수’ 출신들이다.
↑ 1990년 이후 프로에 입단했던 ‘X세대 선수’ 출신들이 현장과 프런트의 수장으로 잇달아 발탁되고 있다. 왼쪽부터 송구홍 LG 신임 단장, 김한수 삼성 신임 감독, 장정석 넥센 신임 감독. 이어 지난해 사령탑 데뷔 후 한국시리즈를 2연패한 김태형 두산 감독, 1970년 이후 출생한 첫 KBO 감독인 조원우 롯데 감독, ‘X세대’ 1호 감독 데뷔였던 김기태 |
두 감독의 첫 임기까지만 해도 소수 ‘소장파’ 느낌이었지만, 지난해 롯데에서 1970년 이후 출생한 첫 KBO 사령탑인 조원우 감독(45)이 데뷔하고 두산에서 김태형 감독(49)이 벤치 첫 해 한국시리즈 우승 위업을 달성하면서 ‘X세대 리더십’은 대세의 시작을 알렸다. 이제 김한수 감독, 장정석 감독의 합류로 2017시즌에는 10개 구단의 절반인 5개 구단 사령탑이 1990년 이후 프로에 입단했던 선수 출신으로 채워졌다.
이들은 프로야구 출범 초기인 1980년대에 프로 선수 생활을 했던 KBO 출신 1세대 지도자들과 뚜렷한 차이점을 보인다. 1세대 지도자들은 대부분 화려한 선수 시절을 보낸 슈퍼스타 출신들이었다.
현역 시절 ‘국보투수’로 불렸던 선동열 전 삼성-KIA 감독(53)은 규정이닝을 채운 ‘0점대 ERA’ 시즌만 세 차례를 기록한 KBO의 전설이고, 김성한 전 KIA 감독(58)은 3차례 홈런왕, 두 차례 타점왕을 차지했던 타이거즈 최전성기의 강타자다. 리그 최초의 ‘스타 포수’ 이만수 전 SK 감독(58)은 1983년부터 3년 연속 홈런-타점 타이틀을 싹쓸이했고 김시진 전 넥센-롯데 감독(58)은 두 차례 20승 이상 다승왕에 올랐다. 이순철 전 LG 감독(55)은 3차례 도루왕, 두 차례 득점왕을 따냈던 막강 타이거즈의 대체불가 외야수였다.
김재박 전 현대-LG 감독(62)과 김용희 전 롯데-삼성-SK 감독(61)의 ‘톱스타 본색’은 아마야구에서 KBO 출범 초기까지 이어졌고, 경북고 시절 잠실구장 1호 홈런을 작성했던 류중일 전 삼성 감독(53)은 김재박-류중일-이종범으로 이어지는 KBO 스타 유격수의 계보를 장식했다. 한대화 전 한화 감독(56)은 골든글러브를 8차례 수상했던 전설의 ‘해결사’다.
이에 비해 ‘X세대 리더십’의 프론티어들 중에는 상대적으로 ‘슈퍼스타’ 출신이 적다. 타이틀 홀더는 김기태 감독(타격, 출루율, 홈런, 장타율) 뿐이다. 그를 비롯해 3루수 부문에서 여섯 시즌동안 골든글러브를 독차지했던 김한수 감독과 90년대 LG ‘스타군단’의 원조 ‘허슬러’ 송구홍 단장까지 세 명 만이 황금장갑 수상자 출신이다. 이들을 제외한 X세대 감독들은 각 팀의 스타플레이어라기보다는 견고한 활약의 주전 선수 혹은 백업 선수로서 커리어의 대부분을 채웠다.
꼭 톱스타 출신이 아니더라도 착실한 코치, 부지런한 프런트로 지도 역량과 행정 경험을 쌓은 이후 참신한 ‘뉴 리더’로 발탁되고 있는 트렌드는 시대가 원하는 리더십의 변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뛰어난 재능의 리더가 주도적인 통솔권으로 팀을 이끌던 스타일은 과거만큼 인기가 높지 않다. 다양한 개성의 21세기 젊은 선수들을 상대하는 데는 유연하게 소통하고 유쾌하게 반응하는 리더십이 선호되는 추세다. 이름값만으로 ‘령’이 서는 시절도 지났다. 팬들도 선수들도 꾸준히 연구하는 실력파 지도자들을 알아본다. 슈퍼스타 출신이 아닌 지도자들도 장점을 어필할 수 있는 여지가 늘어난 셈이다.
새로운 리더십의 다채로운 컬러는 세대의 구성과도 관련이 있다. KBO의 선수층이 얇고 구단 수가 적었던 1980년대에는 리그의 ‘슈퍼스타 의존도’가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KBO의 성장과 발전, 구단과 선수층의 확대가 이루어진 1990년대에는 개성이 강하고 자기주장이 뚜렷한 ‘X세대’ 선수들이 등장하면서 스타도 많아지고 인기 선수의 유형도 다양해졌다. 톱스타 출신이 아니어도 이런저런 내공을 쌓을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아졌다.
아직 야구판에는 70대 노감독들의 카리스마 리더십 역시 건재하다. 김성근 감독이 한화를 이끌고 있고 ‘국대 히어로’ 김인식 감독은 2017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도 대표팀 벤치를 지킨다. KBO 감독 통산 최다승의 ‘명장’ 김응용 감독은 지난
40대 수장들은 어느새 이들과 겨루는 ‘대세 그룹’으로 떠올랐다. 화려하고 강력했던 선배 지도자들과는 다른 유형의, 스마트한 개성과 발랄한 생동감으로 KBO를 풍성하게 할 젊은 리더십이 기대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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