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사랑한 야구선수" 호세 페르난데스…보트사고로 사망
↑ 보트사고로 사망/사진=연합뉴스 |
2008년, 16살의 호세 페르난데스는 '망명 보트'에서 뛰어내렸습니다.
물에 빠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죽을 힘을 다해 어머니를 건져 올린 페르난데스는 여동생과 함께 멕시코에 도착했습니다.
페르난데스는 4번의 시도 끝에 망명에 성공했습니다.
앞선 3차례의 시도는 모두 좌절됐고 그의 가족은 꽤 오래 감옥 생활을 했습니다.
페르난데스는 망명 실패 후 감옥에 갇혔던 시기를 떠올리며 "우리는 정말 동물 취급을 당했다"고 털어놨습니다.
목숨을 건 네 번째 시도는, 성공이었다. 그렇게 페르난데스의 '아메리칸 드림'이 시작했고, 메이저리그에서 손꼽는 에이스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25일, 24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망명 보트에서도 살아남은 그였지만, 보트 사고는 페르난데스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정상을 향해 달리던 페르난데스의 걸음도 멈췄습니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마이애미 말린스 에이스 페르난데스는 마이애미 비치에서 보트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짧지만, 강렬한 삶이었습니다.
1992년 쿠바 산타클라라에서 태어난 페르난데스는 어릴 때부터 유망주로 꼽혔고, 계부 라몬 히메네스의 도움으로 쿠바 정상급 투수 코치 올란도 차이니의 지도도 받았습니다.
미국 망명 후, 고교 리그에서 페르난데스는 13승 1패 평균자책점 2.35의 압도적인 성적을 냈습니다. 노히트 노런도 두 차례나 달성했습니다.
2011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전체 14위로 마이애미에 지명된 페르난데스는 최고 시속 159㎞의 빠른 공과 커브를 앞세워 2시즌 만에 마이너리그 무대를 평정했습니다.
2013년 4월 8일, 뉴욕 메츠를 상대로 페르난데스는 감격스러운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승리를 챙기지 못했지만 5이닝을 3피안타 1실점 8탈삼진으로 막았습니다.
그해 5월 5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경기에서 7이닝 1피안타 무실점 완벽한 투구로 메이저리그 첫 승을 거둔 페르난데스는 12승 6패 평균자책점 2.19의 놀라운 성적을 거둬 내셔널리그 신인왕에 올랐습니다. 당시 류현진(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이 페르난데스와 신인왕 경쟁을 펼쳐 국내 팬도 페르난데스의 이름이 익숙합니다.
신인왕 수상식이 열린 2013년 11월, 페르난데스는 시상식에 나타난 할머니 올가의 모습에 눈물을 쏟았습니다.
2008년 망명할 때 함께 쿠바를 떠나지 못한 올가는 5년 뒤, 손자가 가장 빛나는 날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페르난데스는 이후 오른 팔꿈치 부상과 수술로 고전했습니다. 2014년 4승(2패), 2015년 6승(1패)을 거뒀습니다.
재활을 마친 올해에는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페르난데스는 16승 8패 평균자책점 2.86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로 올라섰습니다.
하지만 그의 기록은 여기서 멈췄습니다.
페르난데스는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내년 1월에 아버지가 된다. 약혼녀 카를라 멘도사가 내 아이를 가졌다"고 글을 올리며 기뻐했습니다. 그는 아이가 태어나는 모습도 볼 수 없습니다.
메이저리그에는 페르난데스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26일 열릴 예정이던 마이애미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경기를 취소했습니다.
돈 매팅리 마이애미 감독은 선수단과 함께 기자 회견을 열고 "페르난데스와 함께 한 시간은 즐거움의 연속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선수들은 SNS에 페르난데스 추모글을 올렸고, 팬들은 말린스 파크를 찾아 헌화했습니다.
MLB닷컴은 "페르난데스는 모두가 사랑한 야구 선수였다"고 떠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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