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이 메이저대회 마지막 조에서 경기하는 것 같은 압박감이 들었다. 정말 (내 생애) 가장 힘든 경기였다.”
116년만의 올림픽 골프 여자 경기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금의환향’한 박인비(28·KB금융그룹)는 부상 당한 손가락 통증 보다 압박감이 더 힘들었다고 했다.
어둠이 짙게 내린 23일 새벽 인천국제공항에 마중 나온 박병준(84) 옹은 손녀를 뜨겁게 끌어 안고 “고생했다. 고생했다...”를 되뇌였다. 손녀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자랑스러움과 안쓰러움이 교차하는 모습이다. 손녀가 직접 걸어준 금메달을 목에 건 할아버지는 “이제는 내 손녀가 대한민국의 딸이 됐다”고 감격해 하면서 또다시 눈물을 쏟았다. 할아버지는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 입으로 들어가는 것도 모르는 듯 감격에 젖었다.
그의 표현대로 압박감이 컸던 만큼 금메달을 땄을 때 감정은 어느 대회 우승보다 특별했다. 박인비는 “그동안은 나를 위해 경기할 때가 많았지만 이번에는 나라를 대표해서 경기를 했다. 마지막 18번 홀에서 들은 애국가는 그 어떤 노래보다 최고였다”고 감격해 했다.
마지막 홀 퍼팅 후 ‘만세 포즈’가 인상 깊었다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아무래도 고생한 순간들이 많이 떠올랐던 것 같다. 내 한계에 도전한다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했고 제 자신이 굉장히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보통 때보다 큰 세리머니가 나왔던 것 같다”고 밝혔다.
손가락 부상에 대해선 “한달 동안 연습에 집중하느라 재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며 “하지만 경기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 통증이 많이 느껴지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올해 자주 컷오프되고 기권하면서 부진에 빠졌던 박인비는 올림픽이 열리기 한달 전에야 출전을 결심했지만 샷 점검차 출전한 삼다수 마스터스에서 컷오프되면서 우려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한달 간 스윙 교정과 올림픽 코스와 비슷한 곳에서 샷 연습을 하며 준비했고 보란듯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인비는 삼다수 대회까지 했던 손가락 테이핑도 떼 버렸다. 이유는 테이핑을 한 채 경기를 하면 예리한 부분이 떨어져서다. 통증이 느껴지더라도 1주일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해 테이핑을 뗐다는 것이다.
이번 주 박인비는 5위로 떨어졌던 세계랭킹을 4위로 끌어 올렸다. 골프팬으로서는 부활의 샷을 날린 박인비가 언제 다시 골프 무대에 복귀해 ‘금빛 샷’을 보여줄까 궁금할 것이다.
박인비는 “아직까지 다른 큰 장기적인 목표는 없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컨디션 회복”이라고 밝히고 “복귀 시기는 경과를 보면서 정해야 할 것 같지만 에비앙 챔피언십에 나가고 싶다”고 했다. 4개 메이저대회 우승과 이번 올림픽 금메달로 ‘골든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이룬 박인비는 에비앙 챔피언십이 메이저로 승격된 이후에는 우승이 없어 늘 아쉬움이 남는 대회가 되고 있다. 그가 우승못한 마지막 메이저인 셈이다.
“도쿄 올림픽 출전을 장담하지는 못하지만 그때까지도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면 2연패는 좋은 목표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올림픽 2연패 도전에 대한 가능성을
남편 남기협 씨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남편은 이번에도 다시 용기를 낼 수 있게 했다. 내게는 가장 중요한 스윙코치이자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더 멀리 나아갈 수 있고 계속 성장할 수 있는 버팀목인 것 같다. 그런 남편이 있어 행복하다.”
[오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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