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고척) 이상철 기자] 누구도 몰랐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올해의 신데렐라가 누구일지는. 27세의 ‘무명’ 투수는 감격적인 1군 데뷔를 넘어 잊지 못할 첫 승, 그리고 의미 있는 10승을 올렸다. 여기에 올스타 베스트12 선정까지.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신재영(넥센), 2016년 프로야구 KBO리그를 논할 때 절대 빠트릴 수 없는 이름이다. 일찌감치 신인왕을 예약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그만큼 강렬했다.
신재영은 지난 9일 고척 NC전을 끝으로 전반기를 마감했다. 10승(공동 2위)과 평균자책점 3.33(3위). 전반기 성적표는 ‘A+’로 훌륭했다.
남들보다 늦었으나 그도 꽃이었다. 그리고 화려하게 꽃피기 시작했다. 신재영은 자신의 전반기를 어떻게 돌아봤을까. 열심히 달린 끝에 잠시 ‘쉼표’를 찍은 신재영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야구인생까지도.
↑ 신재영은 프로 1군 첫 시즌에 10승과 함께 올스타 베스트에 선정됐다. 시즌의 절반을 돌았을 뿐인데. 사진(고척)=김영구 기자 |
지난 9일 NC전의 승리투수는 김상수. 5⅔이닝 3실점(2자책)의 신재영은 평균자책점만 0.01을 낮췄다. 넥센 타선은 그가 마운드를 내려간 뒤에야 폭발했다. 3번째 11승 사냥 실패. 3번 연속은 처음이다. 승수를 쌓지 못했으나 그는 열심히 했다. 그리고 잘했다. 그는 만족했다. 모두의 인정까지 받았기에.
“함께 운동했던 이들이 나보다 먼저 1군에 올라 뛰는 걸 보면서 부러웠다. 잘하라고 격려했지만, 난 1군에도 못 오른 채 4년을 2군에서 보냈다. 올해 처음으로 1군에서 뛰는데 사실 (개막 전만 해도)확신이 서지 않았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절실했다. 이제는 자리를 잡고 싶었다. 그렇게 임해 이렇게 좋은 성적을 거뒀다. 생각보다 훨씬 잘했다.”
신재영은 염경엽 감독의 구상에 선발투수 자원이다. 경찰에서 군 복무를 하면서 선발투수 수업을 받았다. 그러나 당장은 아니었다. 스프링캠프 때만 해도 신재영은 불펜 자원이었다. 피어밴드, 코엘로, 양훈, 조상우 등 4명이 확정된 가운데 5선발을 두고 복수의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였다.
그러나 조상우가 캠프 도중 불의의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면서 두 자리를 채워야 했다. 후보가 자연스레 늘었다. 신재영도 추가됐다. 시범경기까지 이어진 치열한 경쟁 끝에 박주현과 신재영이 낙점됐다. 신재영은 그 소식에 깜짝 놀랐다. 운이 좋았다고 했다. 시즌 중 몇 번 운도 따라줬다. 그 가운데 그 운을 놓지 않았다. 전반기를 마칠 때까지.
“올해 선발투수로 기회를 부여받았다. 내 야구인생에 있어 가장 큰 행운이다. 시범경기 호투(5경기 평균자책점 3.75)가 밑바탕이 된 것 같다. 자신감이 있었으나 두려움도 있었다. 선발투수로 못해서 2군에 내려갈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너무 힘든 2군에 다시는 가기 싫은데.”
“프로 데뷔전(4월 6일 대전 한화전)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긴장을 너무 많이 해 초반 난타를 당했다. 내가 감독이라면 ‘힘들겠다’라고 판단해 교체했을 것이다. 그런데 감독님께서 교체 없이 믿어주셨다. 그 고비를 넘겼기 때문에 지금까지 잘할 수 있었다. 한화전서 첫 승을 기록한 뒤 ‘할 수 있다’라는 확신이 섰다. 제구가 잘되는 공은 1군 타자도 쉽게 치기 어려우니까. 지난 6월 22일 고척 삼성전에서 10승을 올린 뒤 ‘해냈다’라는 성취감까지 들었다. 다소 얼떨떨했던 1승보다 더 기뻤던 10승의 순간이었다.”
만약 선발투수라는 행운이 신재영에게 찾아오지 않았다면. 중간투수로 1군 첫 시즌을 소화했다면 어땠을까. “잘 모르겠다. 쉽게 판단하기 어려우니까. 잘했을 수도 있고,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중간 정도는 해내지 않았을까.”
↑ 신재영은 프로야구선수가 되기 위해 4년을 기다렸다. 그리고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기까지 4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사진(고척)=김영구 기자 |
8세의 신재영은 야구의 야자도 몰랐다. 그저 뛰는 걸 좋아했다. 삼촌의 손에 끌려 야구부에 들어갔다. 운동을 하려면 선택지는 없었다. 학교에는 야구부과 핸드볼부뿐이었다. 핸드볼부는 여자팀만 있었다. 야구를 시작했지만 3일 만에 포기하고 싶었다. 보고 싶지 않은 ‘나쁜 행동’을 아이의 눈으로 목격했다. 집에 일찍 들어온 신재영을 나무란 건 아버지였다. 신재영은 다시 야구부로 향했다. 그리고 그게 그의 운명이었다.
“너무 일찍 시작해서 그런가. 야구에 질렸던 때도 있었다. 프로야구선수로서 성공하라고 말씀하시진 않았으나 부모님께서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그것 때문에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혹독한 훈련에도 견딜 수 있었다. 그리고 야구에 조금씩 흥미를 가졌다. 휴식일에도 혼자 야구를 했다. 야구를 하는 게 즐거웠다. 야구장(대전)까지 찾아가 야구도 관전했다. 중학교에 진학한 뒤 프로야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신재영은 내야수였다. 타격과 수비가 즐거웠다. 초등학교 시절 4연타석 홈런을 쳤던 그의 꿈 중 하나가 홈런왕이었다. 투수는 생각조차 안 했다. 그러나 중학교 2학년 때 야구부에 투수 자원이 부족했다. 특출한 재능을 가진 투수가 없었다고.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던지기라도 하는 신재영은 포지션이 ‘강제적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것 또한 그의 운명이었다.
“지역 내 주요 경기(3판 2선승제)가 있었다. 첫 경기에 나갔는데, 1회에만 10실점을 했다. 안타를 계속 맞았다. 충격이 컸다. 투수를 하기도 싫었다. 그래서 짜증이 나 사이드암으로 던졌는데 훨씬 나았다. 누가 따로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팔을 좀 더 내리라는 조언대로 하니 좋은 느낌이 왔다. 그 뒤 두 판을 내리 이겼다. 그때부터 나도 투수를 하는 게 재밌어졌다.”
신재영은 고등학교 졸업 후 프로에 진출하고 싶었다. 신고선수라도 자신을 불러주는 팀으로. 하지만 그를 찾는 팀은 없었다. 실망감이 컸다. 그래도 야구를 계속할 거라면, 선택지는 하나였다. 대학교 진학. 나쁘지 않았다. 실력이 향상됐고 경험도 쌓았다. 그리고 국가대표(2009년 야구월드컵)도 됐다. 물론, 그는 야구월드컵에 가서 살만 찌고 왔다고 푸념하지만(지금의 체형이 그때 잡힌 거라고).
“4년 만에 다시 신인 드래프트에 나섰다. 이번에는 반드시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런데 기대보다 낮은 8라운드(69순위)에 NC의 지명을 받았다. 부모님 반응도 그렇게 좋아하시지 않았다. 그래도 신생팀이고 어차피 순번에 관계없이 경쟁하는 것이니 개의치 않아했다. 가서 열심히 했다. 그런데 잘 안 됐다. 대학 시절 너무 공을 많이 던져 어깨 통증도 있었다. 프로 첫 해부터 난 뒤처졌다.”
신재영은 2012년 2군 4경기(4이닝)에 뛴 게 전부였다. 이듬해 NC는 KBO리그에 입성했다. 하지만 신재영의 자리는 없었다. 2군에 머물러있던 그는 트레이드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그의 야구인생이 뒤바뀐 순간이었다. 넥센과 NC는 신재영이 포함된 2대3 트레이드를 했다.
“의아했다. 2군 경기를 하려고 선수단 버스에 몸을 실었는데, ‘내려’라고 하시더라. ‘잘리는 거냐’고 물었더니, ‘트레이드가 됐다’고 하시더라. 다들 한 것도 없는데 왜 가냐고 하는데 나도 얼떨떨했다. 그렇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강진에 가니 넥센의 분위기가 좋더라. 그래서 빠르게 적응했다. 많이 배워 그 해 2군 성적도 괜찮았다. 이 때문에 경찰에 갈 수 있는 기회까지 주어졌다.”
모든 게 늦었다. 프로 입단은 4년의 기다림이 필요했다. 그리고 1군 승격까지 또 4년이 걸렸다. 프로야구선수지만 힘든 시절이었다. 야구를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야구는 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특기’다. 포기하긴 일렀다. 그의 운명까지. “경찰까지 포함해 2군만 4년 생활을 했다. 많이 힘들어 야구하기 싫은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야구를 안 한다면 할 게 뭐가 있을까. 야구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잘 버텨왔다.”
↑ 신재영은 에이스라는 칭호를 받기 어렵다고 했다. 훗날 더 실력을 키운 뒤 받겠다고 했다. 사진(고척)=김영구 기자 |
사복을 입은 신재영을 야구장 밖에서 알아보는 이는 극소수라 한다. 그러나 유니폼을 입은 신재영을 야구장 안에서 알아보는 이는 대다수다. 그리고 실력도 인정받으면서 인기도 나날이 상승 중이다.
올스타 팬 투표에서 나눔 올스타 선발투수 부문 당당 1위다. 64만2996표를 획득했다. 히어로즈의 올스타 베스트 투수 1호. 그리고 그는 프로야구선수라면 누구나 갖고 싶은 ‘별들의 잔치’ 초대장을 받았다. 신재영은 오는 16일 고척돔에서 열리는 올스타전에 선발투수로 등장한다. 13년 전의 ‘배트보이’가.
“어려서부터 대전구장으로 자주 놀러가 프로야구 경기를 봤다. 그러다 2003년 대전구장에서 올스타전이 열렸는데, 중학교 2학년이던 내가 배트보이를 했다. 가까이서 선수들을 보면서 참 신기했다. 그러면서 ‘나도 언젠가 올스타전에 뛰고 싶다’라는 꿈을 키웠는데, 이렇게 이루게 됐다. 기사로 그 소식을 접하고 정말 기뻤다. 첫 출전이니 (MVP, 퍼포먼스 등보다)참가에 의미를 두겠다. 선배들이 시키면 뭐라도 하겠지만. 참, 팬 투표에서 베스트로 선발된 넥센 소속 3명 중 2등이다. (박)동원이는 못 이겼지만, (김)하성이를 이긴 것으로 만족하겠다.(웃음)”
신재영은 뭐든지 불러주는 게 좋다고 했다. 신데렐라라는 표현이 싫지 않다는 것. 하지만 에이스라는 표현에는 난색한 표정이다. 자신은 ‘현재’ 5선발이니까. 그가 걸어온 길은 짧다. 앞으로 걸어갈 길이 훨씬 길다. 그리고 그 길을 걸을수록 점점 성장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하고, 하려고 노력 중이다. 최근 3번의 도전 중 1경기 4피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1군의 첫 걸음을 뗀 그에겐 배움의 연속이다. 무엇보다 그에 대한 기대치부터 달라졌다.
“전반기를 잘 마쳤다. 과정인데 지금까지 괜찮고 좋다. 그러나 여전히 배울 게 많다. 구속이 빠르지 않아 밸런스, 투구 패턴, 멘탈 등이 중요하다. 컨디션에 관계없이 밸런스도 일정해야 한다. 매번 좋을 수 없는데, 안 좋을 때에도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
“5이닝 2실점을 기록할 경우, 예전에는 잘했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이제는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잘 해서 높아진 기대치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부응하고 싶다. ‘신인이 저 정도면 잘 한 거다’ 같은 말을 듣고 싶지 않다. 자리를 잡고 더 열심히 잘해야 한다.”
신재영에게 손혁 투수코치는 아버지 같은 존재다(손 코치는 형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했지만). 잘 따른다. 손 코치의 조언을 빠트리지 않으며 노트에 적어 반복적으로 학습하고 있다. 최근 속구로 인코스로 공을 던질 때 두렵기도 했다. 몰리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불쑥 들기도 했다. 이 이야기를 했다가 손 코치에게 혼이 났다고. “맞을 때는 어떻게 던져도 맞는다. 그러니 자신 있게 공을 던지는 게 중요하다.” 손 코치의 조언 아래 신재영은 또 하나를 배우며 성장 중이다.
“예의 있고 꾸준한 선수가 되는 게 내 꿈이다. 1년만 반짝 할 거면 안 하는 게 낫다. 준비한 걸 하나씩 해나간다면 올해보다 내년, 내년보다 내후년에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에이스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가 아니다. 그러나 훗날에는 에이스라는 말을 꼭 듣고 싶다.”
신재영은 현재 다승 공동 2위, 평균자책점 3위다. 선두와 큰 차이가 없어 타이틀 경쟁도 가능하다. 물론, 그는 기록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리고 갈 길이 멀다. 전반기를 마쳤으나 후반기가 남아있다. 또한, 팀도 꿈꾸고 그도 꿈꾸는 포스트시즌 무대도 있다. 그래도 올해 이루고 싶은 목표는 있다. 개인 타이틀은 아니다.
“초반 무볼넷 기록(30⅔이닝)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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