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을 벗은 알파고는 무척 강했다.
흑은 이세돌 몫이었다. 딥마인드의 개발자이자 아마추어 6단인 아자황이 알파고를 대신해 돌을 가린 결과 이세돌 9단이 흑을 잡게 됐다. 중국 룰로 대국이 치러지는 탓에 덤이 7.5집(한국룰은 6.5집)이나 돼 부담이 될 수 있지만 흑을 잡은 이세돌로서는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점에서 전혀 기분 나쁘지 않다.
이세돌 9단이 첫 수로 우상귀 소목을 선택하자 알파고는 첫 수부터 뜸을 들였다. 화점에 백돌을 놓을 때까지 무려 1분30초가 걸렸다. 이세돌은 다음 수로 우하귀에 역시 소목을 택했고 알파고는 4번째 수를 좌하귀 화점을 차지하면서 양 화점 포석으로 대국을 시작했다. 예상했던 포석이었다. 알파고는 지난 10월 유럽 바둑 챔피언인 판후이 2단과의 대국에서도 5판 모두 첫 수를 화점에 놓았다. 반대로 이세돌은 정형화된 포석을 해서는 안된다는 주위의 지적에 따라 뻔한 포석을 피한 모습이었다.
흑 7은 변화를 주는 수다. ‘도발의 수’라 할만하다. 과연 알파고는 어떻게 반응할까. 그런데 장고가 없다. 지체 없이 백 8로 받는다. 백10에서 18로 갈라친 흐름이 괜찮았다. 흑 7 자리는 한가한 듯했다. 흑 19는 좀 무거운 느낌이 들었고 23은 조금 지나쳤다. 알파고는 백28로 끊어 공세를 취했다. 백 66 위쪽에 흑 두점을 잡고 흑77로 백 두점을 잡았다. 이때까지 형세는 알파고가 괜찮았다. 알파고가 상변에서 흑을 강하게 끊으며 거칠게 몰아붙일 때만해도 초반 공격의 주도권을 잡은 듯했다.
실수가 거의 없었던 알파고에게서 터무니 없는 수가 나왔다. ‘백80’은 ‘과연 여길 또 두나?’ 싶은 의아한 수였다. ‘패배의 길’로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수였다. 과연 어디서 실수가 나올까 하고 있을 때, 정말 예상하지 못한 수가 나온 것이다.
흑 81로 사방이 두터워졌다. 백이 주도하던 형세가 갑자기 확 바뀌었다. 흑 81은 공격의 시작이다. 이제 과연 알파고가 수습을 할 수 있나 시험대로 접어드는 형국이었다. 백이 86으로 끊었다.단순히 쉽게 사는 것은 백이 좋지 않아 보인다. 백이 괜찮은 그림이 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
흑 87에서 이세돌 생각이 조금 길어졌다. 고민스러운 장면은 아니다. 이제 서로 남은 시간은 1시간 7분(알파고), 그리고 1시간 6분(이세돌)으로 비슷하다.
흑 89는 기분 좋은 두드림이다. 흑은 점수를 올렸다고 봐야할 것이고, 백은 당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래쪽에서 흑집이 많이난다. 흑이 이제 비로소 ‘이기는 길’로 들어선 모양이다.
하지만 ‘백102’에 이창호 9단이 옆에서 거든다. “알파고가 참 잘 두는 것 같다. 흑이 낫지만 아직 백도 해볼만하다. 처음에는 흑이 좋지 않았다.”
언제든 다시 분위기가 바뀔 수도 있다는 얘기다. 백80으로 81에 두거나 좌상귀(4·3) 자리에 뒀어야 했다. 알파고가 아마도 이긴다고 판단해서 둔 수 같다.
백102로 흑 모양에 들어가 흔들기 시작했다. 흑이 잘 둔다면 그대로 결승선에 들어설 듯한 기세다. 타협한다면 긴 바둑으로 갈 것이다.
백 110은 ‘바꿔치기’를 노리는 수다. 흑 115까지 서로 석점 주고 받는 바꿔치기가 이뤄졌다. 백 흔들기를 흑이 잘 막은 것 같다. 백도 선수를 잡아 116으로 좌상귀를 집으로 만들었다. 형세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전세가 뒤바뀌기 시작했다. 백 124로 아래쪽 흑집이
[양재호 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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