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천안) 김원익 기자] 하루만큼은 감독에서 선수로 돌아왔다. 우승에도 벅찬 감회를 미소 뒤에 조용히 감췄던 승부사도 그의 배구인생을 평생 응원한 가족들 앞에선 벅찬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현대캐피탈은 6일 천안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우리카드와의 2015-16 프로배구 V리그 시즌 최종전서 세트스코어 3-0으로 승리했다. 동시에 18연승을 거둔 현대캐피탈은 V리그 역대 최다연승 신기록도 작성, 배구 역사를 새로 썼다.
특히 이날 정규시즌 우승기념식도 함께 열렸다. 원정에서 달성한 우승이었기에 시즌 최종전 홈경기서 진행된 특별한 이벤트. 여기에 ‘깜짝 이벤트’가 더 있었다. 바로 지난 시즌 종료 후 선수에서 곧바로 감독으로 부임한 탓에 마지막 순간을 갖지 못한 한 위대한 선수의 은퇴식이었다. 주인공은 바로 최태웅 감독이었다.
![]() |
↑ 사진=김재현 기자 |
이벤트는 극비리에 진행됐다. 최 감독은 물론 언론에도 당일 경기 직전까지 내용이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구단 관계자는 “감독님이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극비리에 진행 됐다”면서 “경기 직후 18분의 특별한 순간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 종료 후 18연승과 리그 우승에 관한 기념식이 열렸다. 폭죽이 터졌고 18연승 기념 대형걸개가 코트에 떨어졌다. 환호하는 선수들과 함께 우승 트로피를 받아든 최 감독도 뿌듯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우승기념 행사가 끝나자 천안유관순체육관 화면에 기념 영상이 나왔다. 과거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 국가대표로서의 선수 최태웅의 이력이 소개됐다. 특히 림프암을 이겨내고 코트로 돌아온 이력도 소개돼 눈길을 끌었다.
깜짝 손님도 등장했다. 지난 2011-12 시즌 현대캐피탈의 라이트 공격수로 활약했던 달라스 수니아스(오르토나)의 깜짝 축전이었다. 개인 통산 10000세트 돌파 기록도 다뤄졌다. 그 순간만큼은 선수 최태웅으로 돌아가 은퇴식을 즐기는 명선수가 됐다.
![]() |
↑ 사진=김재현 기자 |
특히 남다를 수 밖에 없었던 우승에 대해 선수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 것. 최1997년 삼성 입단. 2010-11시즌 현대캐피탈로 이적해 올 시즌부터 감독이 됐다.
아마 시절 삼성에서 9번의 통합 우승을 했고, 프로에 접어든 이후에는 통합우승도 4회나 경험했다. 하지만 현대캐피탈로 이적한 이후에는 우승을 하지 못했다.
최태웅은 이어 “은퇴식은 뜻밖이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은퇴식을 할지 몰랐다. 저 은퇴 한 것 아닙니다. 저 감독 하고 있으니까 계속 응원해주시고 계속 승승장구하겠다. 감사하다”는 소감을 남겼다.
이어 유니폼 액자와 꽃다발, 선수단의 메시지가 담긴 캐리커처 액자를 전해 받았다. 담담하게 그 과정을 지켜보던 최 감독은 아버지 최만호 씨와 모친, 둘째 아들과 아내가 꽃다발을 들고 나타나자 닭똥같은 눈물을 쏟아냈다. 승부사 최 감독이 코트에서 흘린 최초의 눈물은 이날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줬다. 이후 부친과 가족들을 차례로 꼭 안은 최 감독은 팬들의 연호 속에 핸드프린팅 행사도 마쳤다.
은퇴식 종료 후 진행된 기자회견서 최 감독은 이 뜨거운 눈물의 의미를 설명했다. 최 감독은 “아버지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비디오카메라를 사오셔서 늘 경기하는 저의 모습을 찍어주셨고 지금까지도 많은 힘을 주셨다. 배구계에서도 아버지를 모르는 분이 없으실 정도다. 그 정도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저를 많이 도와주셨는데 나는 불효자다. 일만 좋아하고 집에는 잘 안들어가고 아들로선 못난 아들이어서 그래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 |
↑ 사진=김재현 기자 |
세터 최태웅의 마지막 토스에는 동료들이 함께 했다. 여오현이 리시브하면 최태웅이 토스하고 선수들이 때렸다.
가장 먼저 호흡을 맞춘 것은 문성민. 지난해까지 함께 선수로 뛰었던 문성민은 최태웅의 경쾌한 토스에 시원한 스파이크를 꽂아넣었다. 이후 문성민은 최 감독을 번쩍 안아 들었다.
이어 또 윤봉우 플레잉코치는 속공을 성공시켰다. 마지막으론 오레올 까메호가 등장했다. 오레올은 올린 토스가 맘에 들지 않는 듯 한 차례 멈칫하고 세터 최태웅을 바라보는 ‘쇼’로 그를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시원한 스파이크로 이날 대미를 장식했다.
최태웅 감독은 선수들과 함께 코트를 돌며 관중들에게 공을 던져줬고. 팬들은 응원문구가 적힌 비행기와 풍선으로 화답했다.
이후 인터뷰서 최 감독은 “마지막 직전 토스를 안받아줘서 기분이 조금 상했다”며 미소를 짓더니 “토스 3개 중에 마지막 것이 제일 잘 나갔다. 모르겠다. 잘해보려고 했는데 정신이 없었다. 마지막 토스는 후위 공격을 하고 싶었는데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올렸다”며 환하게 웃었다.
스피드배구를 앞세워 초유의 연승 기록과 정규리그 우승을 모두 달성한 ‘최갈량’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이 이날 하루만큼은 ‘명품세터’로 돌아갔다.
![]() |
↑ 사진=김재현 기자 |
![]() |
↑ 사진=김재현 기자 |
[one@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