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황석조 기자] 그 곳에 그들이 있었다.
1982년 출범 이후 34시즌. 연간 700만 관중의 한국 으뜸 프로리그로 자리 잡기까지 수많은 선수들이 KBO의 성장과 감동을 채웠다. 그들 중에는 역사와 기록은 기억하지만 많은 팬들이 깜빡 잊어버리고 만 이름들, 추억 속에 묻힌 레코드 홀더들이 있다.
야구를 기다리는 2월의 MK스포츠가 지금 그라운드의 ‘슈가맨’들을 소환해본다. (편집자 주)
↑ 이재주(사진)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대타로 가장 많은 홈런을 때려낸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사진=KIA 타이거즈 제공 |
④ KBO 최다 대타홈런 – 이재주
그는 팬들의 기억 속에 붙박이 주전은 아니었다. 경기 중후반, 혹은 승부처의 순간이 벌어질 때 간혹 나서는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그는 다른 어떤 선수보다 위협적이었다. 주로 대타로 타석에 섰어도 당시 투수들에게는 한방이 있던 타자로 기억에 남았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대타로 가장 많은 홈런을 때려낸 사나이. 이름 보다 별명으로 더 유명한 ‘재주리게스’ 이재주(42)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재주는 커리어 대부분의 시절을 백업멤버로 보냈다. 1992년 태평양 돌핀스에서 포수포지션으로 프로 무대에 데뷔해 그해 가능성을 인정받았지만 당시 주전포수 김동기에 가려져 그 이상 치고 올라가지 못했다. 그의 기나긴 대타인생의 시발점이었던 것. 태평양의 후신인 현대 유니콘스 시절에도 크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잠시 동안 공격형 포수로 주목받은 적이 있었지만 박경완을 보조하는 역할 이상을 부여받지는 못했다.
2002년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KIA로 팀을 옮긴 이재주. 그저 그런 백업선수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던 그는 KIA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특별한 선수로 재탄생했다. 이전까지 한 시즌 동안 30-60경기 출전하는데 그쳤던 이재주는 2003시즌 무려 103경기에 출전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데 성공했다. 2할8푼에 11홈런이라는 본인 최고성적을 기록하며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04시즌도 호성적을 이어간 이재주는 2006시즌 잠시나마 주전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는 등 야구인생에서 가장 좋은 전성기를 보냈다.
무엇보다 이재주는 대타의 사나이로 기억된다. 대부분의 선수생활을 백업멤버로 뛰었지만 가장 알토란같은 대타요원하면 바로 떠오르는 이가 이재주였다. 비장한 표정, 카리스마 넘치는 콧수염과 함께 타석에 등장했던 이재주는 경기의 흐름이 답답하게 이어질 때, 혹은 9회말 팀에게 황금 같은 기회가 주어질 때 타석에서 호쾌하고 큼지막한 한 방을 선사하며 팀을 구해낸 적이 많았다.
이재주는 2009년까지 선수로 활동하며 통산 82개 홈런을 때렸다. 그중 무려 20개가 바로 대타로 등장해서 쳐낸 홈런. 이재주는 한국 프로야구 사상 대타로서 가장 많은 홈런을 쳐낸 진귀하며 특별한 기록의 주인공으로 남게 됐다.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힌다. 과거 1964년부터 1984년까지 일본 프로야구 한큐 브레이브스에서 뛰었던 다카이 야스히로가 때린 27개 홈런이 역대 세계 대타홈런 랭킹 1위다. 2위는 지난 2011년까지 선수생활을 했던 워싱턴 내셔널스 소속 맷 스테어스의 23개다. 이재주의 기록은 이들 뒤를 이어 3위에 오를 만큼 분명 쉽지 않은 기록이 틀림없다.
최근에도 대타는 경기 중 흔히 ‘조커’라고 불리며 그 중요성이 줄지 않았다. 한화의 이성열-이종환, NC 조영훈 등이 대타로서 인상 깊은 활약을 선보이기도 했다. 물론 대타가 최종목표인 선수는 없다. 누구나 주전을 꿈꾼다. 하지만 대타라도 경기를 지배할 수 있다. 아직도 많은 팬들은 답답한 경기가 진행되는 순간, 대타로 등장했을 때는 그 누구보다 듬직했던 이재주같은 선수를 나오길 기대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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