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승민 기자] 그 곳에 그들이 있었다.
1982년 출범 이후 34시즌. 연간 700만 관중의 한국 으뜸 프로리그로 자리 잡기까지 수많은 선수들이 KBO의 성장과 감동을 채웠다. 그들 중에는 역사와 기록은 기억하지만 많은 팬들이 깜빡 잊어버리고 만 이름들, 추억 속에 묻힌 레코드 홀더들이 있다.
야구를 기다리는 2월의 MK스포츠가 지금 그라운드의 ‘슈가맨’들을 소환해본다. (편집자 주)
↑ KBO의 ‘원조 대도’ 김일권은 리그 출범 이전에 이미 ‘국대’ 스타였다. 한국야구의 첫 세계무대 도전이었던 1975년 대륙간컵야구대회(캐나다)를 향해 출국하기 전 당시 대표팀 에이스 이선희(왼쪽)와 함께 찍힌 사진이다. 사진=MK스포츠DB(이선희 영남대코치 제공) |
그의 발은 진짜였다. 아무도 토를 달지 않을 ‘원조’. 이 리그가 가졌던 첫 번째 ‘대도’는 김일권(60)이다.
그는 프로야구 출범 이전부터 이름을 날렸던 국가대표팀 톱타자 출신이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대학야구의 ‘패권 경쟁’ 시절에 실업야구 상업은행에서 한양대로 스카우트됐던 스타 타자였다.
나가면 뛰는 ‘폭주 본능’에 관한한 김일권 이후 지금까지의 어떤 후배 스타들도 그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게 많은 야구인들의 증언이다. 펄떡거리는 그의 공격적인 베이스러닝은 수비팀들에게는 재앙, 타이거즈 팬들에게는 열광이었다.
김일권은 1986년 8월21일 광주 삼성전에서 406경기 만에 KBO 첫 통산 200도루를 달성했다. 그보다 빨리 200도루를 돌파한 타자는 10년 뒤인 1996년 5월30일 청주 한화전에서 340경기 만에 200도루를 채운 ‘바람의 아들’ 이종범(당시 해태) 뿐이다. 그러나 타격왕과 최다안타왕도 따냈던 ‘3할타자’ 이종범이 줄곧 4할대가 넘는 출루율을 갖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80년대 최고 타율이 0.278(1985년)에 불과한 김일권이 선수생활 내내 3할대 중반이 힘겨웠던 출루율로 406경기 만에 200도루를 뛴 것이 얼마나 부지런한 뜀박질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KBO는 이후 지난해까지 18명의 통산 200도루 타자를 배출했지만, 500경기 이내에 이 숫자를 넘어선 스타는 김일권과 이종범, 둘 뿐이다.
김일권은 태평양 시절이던 1989년 9월7일 친정팀 해태와의 인천경기에서 667경기 만에 역시 리그 처음으로 통산 300도루를 돌파했다. 통산도루 신기록은 21세기가 돼서야 더 오래 뛴 후배들의 차지가 됐다. 그가 해보지 못한 통산 400도루는 전준호(현대·2002년) 이종범(KIA·2003년) 정수근(롯데·2005년) 이대형(당시 KIA·2014년) 등 4명이 넘겼다.
↑ kt 이대형은 KIA에서 뛰던 지난 2014년 통산 400도루를 넘겼다. 지난해까지 445도루를 기록중인 이대형은 1,2년 내에 KBO 첫 통산 500도루의 새 역사를 써낼 수 있는 유력한 후보다. 사진=MK스포츠 DB |
LG로 이적한 1991시즌, 그의 프로 10시즌동안 처음이자 마지막 유일했던 한자리수 도루(58경기 8도루) 기록을 남긴 뒤 유니폼을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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