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김원익 기자] 삼성 라이온즈의 원년 에이스이자 최초의 구원왕이었던 황규봉 전 삼성코치가 별세했다. 향년 64세. 비운의 천재로 불렸던 고인의 소식이 팬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고인은 18일 오전 6시30분 그간 투병하던 대장암을 이겨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발인은 20일 오전, 장지는 고향인 경북 성주의 선산으로 알려졌다.
지난 1987년부터 1989년까지 삼성에서 코치를 지낸 이후 야구계를 떠나 연락이 끊겼다. 황 전 코치가 오랜만에 전한 것은 불행히도 비보였다.
고인은 프로 원년의 삼성을 지킨 에이스였다. 또한 아마시절 최고의 투수였다. 고교 최고 투수였고, 대학 최고 투수였으며 실업 최고 투수이기도 했다. 프로 원년 다승 2위, 최초의 최우수구원상을 받은 이력조차 아마시절의 찬란한 이력과 비교하면 빛을 잃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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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의 원년 에이스 황규봉이 별세했다. 사진제공=장원우 전 주간야구 사진부장 |
그러나 곧 천재를 꽃피우지 못하게 한 시련이 닥쳤다. 고인은 최연소 국가대표로 1973년 필리핀 마닐라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 합류했다. 대회 전 한국팀 숙소에 화재가 났고 3층에 묵고 있었던 고인은 창문으로 뛰어내려 허리를 크게 다쳤다.
꼬박 2년이라는 치료 기간이 걸렸다. 외상만큼이나 다른 후유증도 심각했다. 고소공포증과 협심증에 시달렸다. 하지만 고인은 대학교 4학년이었던 1976년 기적같이 복귀해 이후 실업야구 한국화장품에서 에이스로 활약했다. 1977년 대학야구 4관왕이었던 연세대 1학년 故 최동원과 맞붙었던 경기는 오래도록 회자되는 명승부. 당시 황규봉은 6-4 승리를 이끌며 '신-구 에이스' 맞대결에서 최동원에게 ‘판정승’을 거두기도 했다.
이후 전성기를 구가하며 실업야구를 평정했던 황규봉은 다시 암흑기를 경험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일본 원정을 떠나던 중 고소공포증으로 쓰러진 것. 사고 후유증이 오래도록 그의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또 한 번 오뚝이처럼 재기한 황규봉은 1979년 실업야구 방어율왕에 올랐고, 1982년 삼성의 창단멤버로 프로야구에서도 활약했다. 첫 해 15승(2위)을 올렸고 19세이브포인트(11세이브+8구원승)로 원년 구원왕에도 올랐다. 1986년까지 짧은 프로 생활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프로에선 통산 154경기, 48승29패24세이브, 평균자책점 3.08의 성적을 남겼다. 은퇴 이
많은 야구인들은 황 전 코치를 ‘비운의 천재’로 추억한다. 고인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혔던 사고 후유증만 없었다면 더 화려한 꽃을 피울 수 있었던 에이스. 그런 그가 쓸쓸하게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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