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승민 기자] 지난해 프로야구 시상식장을 장식했던 최고의 한마디는 MVP 서건창(넥센)의 ‘백척간두진일보’였다. 비록 수많은 사람들의 ‘일제히 검색’ 시간이 필요했지만, 한 박자 늦은 깨달음에도 진한 감동을 맛보게 했던 서건창 만의 ‘스토리’를 담은 수상소감이었다.
8일 골든글러브 시상식을 마지막으로 2015시즌 한국프로야구의 각종 시상식들이 막을 내렸다. 호쾌하고 솔직한 소감들이 쏟아졌던 올해, 마지막 히트 소감은 ‘대리수상자’ 김용국 코치(삼성)의 ‘꿈의 대화’였다.
꿈결 같았던 2015시즌의 주인공들이 영광의 순간에 남긴 말들을 되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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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의 최고 라이벌이었던 테임즈(NC)와 박병호(미네소타)는 서로를 치켜세우는 찬사와 덕담으로 그들이 함께했던 마지막 시상식을 즐겼다. 사진=김영구 기자 |
기록 제조기들의 ‘레전드 매치’였던 테임즈(NC)와 박병호(미네소타)의 최고 선수 경쟁은 지난달 24일 KBO시상식에서 테임즈가 MVP를 차지하면서 일찌감치 대세가 갈렸다.
“전날 잠을 잘 못 잤다”며 확신 대신 긴장감을 고백했던 테임즈는 “박병호는 능력이 많은 선수라 메이저리그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덕담을 던졌다. MVP 트로피를 놓쳤지만, “지난해보다 좋은 결과를 낸 것에 만족한다”는 성숙한 소감을 들려준 박병호는 “전국 1등이 전교 1등도 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1루수 골든글러브 역시 테임즈의 수상을 예견했다.
지난 2년간 서로에게 최고의 경쟁자가 되어주었던 두 타자는 그들이 함께 한 마지막 시상식을 훈훈한 우정으로 채웠다.
6년 만에 맡은 국가대표팀을 ‘프리미어12’ 초대 챔프로 이끈 김인식 감독은 이 겨울 특별상과 공로상의 단골 수상자였다. 지난 4일 ‘한국프로야구 은퇴선수의 날’에서 특별공로상을 받은 뒤 “야구 선배들이 있기에 오늘이 있다. 야구 선수들은 특별하지 않지만 때로는 특별해진다. 후배들은 스스로 관리하면서 선배들이 만든 업적을 이어가길 바란다”는 선물 같은 소감을 남겼다.
▲ '떠나는 그대'
‘대구사나이’ 박석민(NC)은 울컥하고 말았다. 2년 연속 3루수 부문 수상자로 호명된 8일의 골든글러브 시상식장에서 ‘NC 박석민’으로 마이크 앞에 선 그는 올시즌 ‘골든글러브 3루수’의 진짜 주인이었던 삼성과 삼성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삼성’을 말할 때마다 울먹울먹하느라 창원시에 환영 걸개그림까지 걸어준 NC팬들에 대한 인사는 시상식이 끝난 후 불 꺼진 카메라 앞에서 챙기고 만 안타까움이 있다.
비슷한 처지였던 유한준(kt)은 생애 첫 골든글러브(외야수)의 떨리는 감격 속에서도 “늘 아낌없이 응원해주셨던 넥센 팬들”과 “저만의 야구색깔을 입혀주신 염경엽 감독님께” 감사한 뒤, “새로운 야구인생을 출발하는 kt에서 내년에도 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각오까지 꼼꼼하게 챙겨 차분하게 ‘균형미’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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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 박석민은 ‘NC 박석민’으로 시상대에 선 골든글러브 식장에서 친정팀 ‘삼성’을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사진=천정환 기자 |
시즌 내내 김하성(넥센)과 불꽃 튀는 신인왕 경쟁으로 관심을 모았지만, 막상 연말의 신인상 트로피를 모조리 쓸어 담으며 ‘완승’한 구자욱(삼성)은 번번이 패기 넘치는 소감으로 호감도를 높였다. 7일의 카스포인트어워즈 시상식장에서는 “다른 선수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좋다”고 100% 솔직한 ‘싹쓸이’의 기쁨을 표현.
내숭 없는 솔직함에 관한한 두산은 과연 챔피언 팀이다.
김현수는 지난 2일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대상의 영예를 거머쥔 뒤, “제가 최고가 아닌 것 같은데 이런 상을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같은 날, 감독상을 수상한 김태형 감독은 “10대 감독 자리에 탁월한 선택을 해준 두산”에 감사를 돌리는 유머러스하고 호쾌한 소감으로 박수를 받았다.
FA 김현수는 시상식 때마다 진로 관련 질문을 받았는데, 두루뭉술한 회피나 정답같은 각오 대신 순박한 근황 토크를 들려줬다. 2일에는 “어느 팀에서든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지만, 7일의 카스포인트어워즈 시상식장에서는 “어제 에이전트가 출국했다. (미국) 진출을 앞두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조건이 안 되면 한국에 남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8일의 골든글러브 시상식장에서도 “에이전트랑 통화해 봤는데 좀 더 기다리라고하더라”며 소탈하게 현황을 보고했다.
8일 골든포토상을 수상한 유희관은 상을 준 사진기자들에게 “앞으로 더 멋있는 포즈와 세리모니로 협조하겠다”는 약속과 맞바꿔 “공을 던지는 순간의 이상한 사진이나 몸매 사진은 좀 가려서 올려주시는 센스”를 부탁해 특유의 말솜씨와 칼 같은 ‘흥정감각’을 뽐냈다.
▲ ‘꿈에 본 그대’
돌아온 ‘전설의 입담’, 삼성 김용국 코치는 올해 골든글러브 시상식의 가장 재미있는 수상소감을 만들어냈다. “11년 선수생활 동안 후보만 해보다가 상을 받으러 처음 올라왔다”는 김코치는 나바로를 대신해 2루수 황금장갑을 품에 안았다. “그냥 내려가려다가 사회자가 시켜서” 마이크 앞에 섰다는 김코치는 “사흘 전 나바로가 꿈에 나타나 미리 소감을 들어뒀다”며 조목조목 나바로의 심경을 전했다.
“상을 준 기자들과 꾸준히 기용해준 류중일 감독에게 감사하고 코칭스태프들은 사랑한다고 했다. 고맙다는 선수 이름이 여럿이었는데 그 중 ‘승짱’(이승엽)과 (박)석민이 있었다.”
‘진담인 듯 농담인 듯 진담 같은’ 나바로의 소감을 술술 전달한 그는 “꿈에서 그러더라”며 너스레를 떨어 좌중의 폭소와 박수를 받았다. 현실에서는 “나바로가 한국어를 못하고, 나는 스페인어를 못해 많이 말할 수 없다”는 김코치가 꿈속에서 주고받은 ‘풍성한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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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산 김현수가 지난 2일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한 후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사진=옥영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