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교통사고로 선수생명이 오갔다. 부상은 심각했다. 운동선수로는 치명적인 고관절 탈구에 발목을 심하게 다쳐 수차례 수술대에 올랐다. 오른쪽 발목 신경은 아직 제대로 돌아오지도 않았다.
이 선수의 종목은 농구다. 운동능력을 가장 필요로 하는 가드 포지션이다. 전문의들은 사고 당시 부상 상태를 보고 “운동선수로서 생명은 끝났다”고 진단을 내렸다.
사고 1년 만에 코트로 돌아왔다. 시즌 개막과 함께 백업으로 코트를 밟더니 선발 라인업에도 포함됐다. 엄청난 심리적 고통과 재활 과정을 거쳐 다시 뛰기 시작했다.
프로농구 김민구(23·전주 KCC)가 보여준 인간 승리의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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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선수생명이 위태로웠던 전주 KCC 가드 김민구가 기적 같은 재활을 마치고 코트로 돌아왔다. 사진=곽혜미 기자 |
김민구는 단순 교통사고가 아니었다. 지난해 6월 국가대표 합숙훈련 도중 외박을 받은 새벽 음주운전으로 신호등을 들이 받는 사고를 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전도유망한 선수에게 비난의 화살이 꽂히는 동시에 농구계에서는 동정표가 숨어 있었다. 심각한 부상 상태 때문에 안타까운 시선도 적지 않았다.
대한농구협회와 한국농구연맹(KBL)은 곧바로 징계를 내리지 않았다. 프로농구 비시즌 기간이었지만, 선수생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애매한 상황이었던 탓도 있다. 결국 김민구의 징계는 차일피일 미뤄졌다.
김민구는 징계 없이 지난달 프로-아마 최강전에 출전했다. 음주운전 교통사고 이후 처음 공식경기에 모습을 드러낸 것. 당시 발목에 보조기를 끼고 뛰었다. 경기력만 놓고 보면 다른 선수들과 차이를 느끼기 힘들었다.
비난이 쏟아졌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KCC 구단은 뒤늦게 공식사과 성명을 냈고, 김민구도 팬들 앞에 사죄했다.
프로농구 개막을 앞두고 KBL은 김민구의 징계를 내렸다. KBL은 김민구에게 경고 및 사회봉사 120시간 솜방망이 징계에 그쳤다. 징계 시점도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프로농구 선수들이 승부조작과 불법 스포츠도박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뒤 기한부 출전 보류 처분을 내린 날 끼어 넣었다.
덕분에 김민구는 올 시즌 경기 출전에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KCC의 구단 자체 징계도 없었다. 시즌 내 사회봉사 120시간을 이수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김민구는 아직 1시간도 이수하지 않았다.
시즌 개막 전 추승균 KCC 감독은 “김민구가 경기에 뛸 정도의 몸이 아니다. 올 시즌 출전은 힘들 것”이라고 했고, KCC 구단 관계자도 “김민구는 연습경기에서 5분 안팎으로 뛰었지만, 올 시즌 프로 경기에 뛸 수준의 경기력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김민구는 버젓이 뛰고 있다. 김민구는 지난 12일 서울 SK와 개막전에서 교체 투입돼 보란 듯이 뛰었다. 김민구는 개막 이후 4경기 모두 엔트리에 포함됐고, 이 가운데 3경기를 뛰었다. 심지어 지난 19일 오리온전에서는 선발 출장했다.
추 감독의 “선수가 없다”는 하소연은 핑계에 불과하다. 팬들은 그저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다. KBL은 여전히 음주운전 관련 징계 규정을 정립하지 못했다. KCC는 김민구 출전 관련 규정에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에 당당하다.
일각에서는 “앞으로 음주운전을 한 선수는 경고와 사회봉사 처분만 받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진심어린 반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처사 때문이다.
프로농구는 온갖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농구 팬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은 행정도 늘 도마 위에 올랐다. KBL과 KCC는 여론을 또 무시하고 ‘마이웨이’를 선언한 모양새다. 타 종목과 비교하면 한심한 작태다.
김민구는 지난 1년간 속죄하는 마음으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받았다.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이겨냈다. 여전히 완벽한 몸 상태가 아니다. 앞으로 완벽해질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자신과 끊임없이 싸우면서 농구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KBL과 KCC는 손바닥으로 하늘만 가린 채 이 어린 선수에게 속죄의 기회조차 박탈해 버렸다. 김영기 KBL 총재는 전임 총재 시절 일어난 사건을 매듭짓지 못한 어설픈 행정 탓만 하고 있다. 그 사이 김민구는 또 한 번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죽어가고 있다. 이미 늦었다. 지금이라도 KCC 구단은 바로 잡아야 한다.
[min@mae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