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은 한국 축구팬들에게 특별한 해다.
한국 축구팬들이라면 누구나 기억하고 있는 ‘도하의 기적.’ 그해 10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1994 미국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에서 한국은 이라크가 일본을 상대로 후반전 종료 직전 동점골을 성공시킨 덕분에 일본을 제치고 지역예선 최종전 마지막 순간 극적으로 1994 미국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는데 성공했다.
‘도하의 기적’을 쓴 1993년은 한국 축구에게 씁쓸한 추억을 안긴 해이기도 하다.
그해 5월 한국은 레바논과의 미국월드컵 최종예선 원정 경기에서 하석주의 결승골 덕분에 1대0 승리를 거뒀다. 승리를 거두고도 씁쓸한 추억이 된 이유는 22년 동안 이어진 ‘레바논 원정 경기 무승 징크스’ 때문. 이후 한국은 22년 동안 레바논과의 원정 경기에서 2무 1패에 그치며 ‘아시아의 호랑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지긋지긋한 ‘레바논 원정 징크스’를 깨기 위해 ‘슈틸리케호’가 출격한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8일 오후 11시(한국시간) 레바논을 상대로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원정 경기를 치른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33위 레바논은 객관적인 전력에서 57위 한국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통산 전적에서 7승 2무 1패로 압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993년 이후 22년 동안 치러진 홈경기에서 한국은 레바논을 상대로 4전 전승을 기록하며 강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험난한 ‘중동 원정’을 떠나면 한국은 레바논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2011년 11월 열린 원정 경기에서 한국은 1대2 패배를 당했고 당시 ‘레바논 참사’로 조광래 전 감독이 경질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2013년 6월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원정 경기에서는 0대1로 끌려가다가 경기 종료 직전 김치우의 극적인 동점골 덕분에 힘겨운 무승부를 거뒀다.
레바논 원정 경기가 어려운 이유는 울퉁불퉁한 잔디와 같은 열악한 인프라, 해발 600~700m 고지대에서의 경기 등 태극전사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외부 요인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 반정부 시위 탓에 FIFA가 안전을 보장하고 나서야 경기가 열릴 정도로 혼란스러운 정국 역시 원정팀에게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악조건 속에서도 슈틸리케 감독은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한국은 지난 3일 홈에서 열린 라오스와의 러시아월드컵 2차 예선 홈경기에서 8대0 대승을 거두며 컨디션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라오스전을 마친 뒤 슈틸리케 감독은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왜 지금 대표팀과 비교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한국은 지난 1년 동안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청용(27·크리스털팰리스) 역시 “레바논전이 진정한 시험대”라며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변수’는 손흥민(23·토트넘)이 뛰지 않는다는 점이다. 라오스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한국 공격 선봉을 맡은 손흥민은 레바논 원정을 떠나는 대신 국내에 남아 영국 취업 비자에 필요한 서류 작업을 끝낸 뒤 6일
손흥민이 빠지지만 구자철(26·아우크스부르크), 박주호(28·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등 라오스전을 뛰지 않은 유럽파들이 가세하면서 한국은 최상의 전력으로 레바논전에 임할 수 있게 됐다. 구자철은 “현재 역할에 최선을 다해 팀에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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