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승민 기자] “나는 평생 보크 판정을 해본 적이 없다. 한 번도 그 룰을 이해한 적이 없기 때문에...”
역동적인 콜로 인기가 높았던 1970년대 AL의 심판원 론 루치아노는 보크에 대해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심판의 역습’이라는 책을 썼던 그는 현역시절 빅리그 선수들이 ‘최우수’ 평점을 줬던 명심판이기도 하다. 그러나 보크는 한 번도 적발하지 못했다는 고백.
그러니 잘 모르겠다고 실망하지 말자. 흔히 야구인의 눈도 놓칠 수 있는 게 보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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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화 탈보트가 10일 잠실 두산전에서 보크 판정에 글러브를 던지는 돌출 행동으로 퇴장당했다.사진(잠실)=김영구 기자 |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크 판정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보크의 필요성은 보크라는 룰이 없을 때의 ‘지옥 상황’을 상상하면 금세 이해가 된다.
재기발랄한 공격의 실마리, 다양한 베이스러닝의 출발점이어야 할 1루 베이스가 ‘주자들의 무덤’으로 돌변할 수 있다. 보크가 없다면, 투수들이 견제구로 주자를 아웃시킬 수 있는 더 기민하고 더 교묘한 동작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크는 야구라는 게임의 재미를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밸런스 패치’다. 3할을 치면 강타자라고 하는 투수와 타자의 승부는 기본적으로 투수에게 유리하다. 이 싸움을 견디고 출루한 주자들을 ‘무력한 횡사’로 부터 보호하고 다이내믹한 주루 기회를 지켜주는 최소한의 룰들이 있다. 인필드플라이나 보크가 그렇다.
체감상 보크는 메이저리그보다 한국야구가 더 꼼꼼히 본다. 아무래도 ‘종주국 야구’에 대한 경외심이 강해서인지 이 때문에 난해한 보크 판정이 나왔을 경우, KBO 심판원들을 빅리그의 기준과 비교하며 비판하는 팬들도 있다. 그러나 보크는 메이저리그보다 ‘스몰볼’이 주류인 한국이나 일본에서 더 엄격하게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보크 적용이 느슨해지면, 이를 이용할 수 있는 투수들의 기망 기술을 세밀하게 연구할 확률이 메이저리그 보다 동양 야구 스타일에서 훨씬 높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니까.
외인투수들이 보크 논란에 자주 휘말리는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태평양 건너에서 괜찮았던 버릇도 여기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 한화 탈보트는 10일 잠실 두산전에서의 보크 판정에 글러브를 내던지면서 화를 내다가 퇴장을 당했다. 한국야구에 이제쯤 충분히 적응했어야 할 경력인데도 보크 룰의 본질, KBO에 대한 이해가 아직도 충분하지 못해 실망을 줬다.
투수들이 보크 판정에 자주 억울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전혀 의도가 없었던 스스로의 결백에 지나치게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보크는 의도에 대한 판정이 아니라 동작에 대한 판정이다. 보이지도 않는 투수의 의도를 심판하는 룰이 아니라 주자가 오해할 수 있는 동작을 문제 삼는 룰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보크 판정에서는 ‘이 정도는 봐줘야 한다’는 투수의 항변보다 ‘문제가 될 수 있는 동작을 고치고 안정적인 투구 동작을 체득해야 한다’는 투
각팀의 세밀한 전력분석 기술이 날로 발전하면서 보크를 지금보다 더 깐깐하게 봐야한다는 현장의 목소리도 있다.
팬들에겐 보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힘든 보크. 그러나 엄격한 보크 판정을 유지해야 활발한 베이스러닝, 속도감 있는 수비의 다이내믹한 야구 경기를 즐길 수 있다.
[chicleo@mae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