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승민 기자] 독일 사람이다. 프랑스 파리정치대학에서 정치와 국제법을 공부하다가 서울로 온 교환학생이다. 지금 고려대학교에서 미디어학과와 경영학과의 수업을 듣고 있다.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는 물론,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까지 동아시아 3국의 말을 꽉 잡고 있다.
두산의 첫 외국인 치어리더 파울라 에삼(21)의 프로필은 예상과 크게 다르다. 무엇보다 ‘축구의 유럽’에서 왔다니 야구를 본 적은 있는 걸까.
“유럽에 있을 땐 볼 수 있는 야구 경기가 거의 없었어요. 경기가 많이 열리고 볼 기회가 생긴다면, 유럽 사람들도 틀림없이 야구를 좋아할 텐데요.”
야구에 대한 ‘접근권’이 없었다고 항변. 그러니까 지난해 여름 한국에 오기 전까진 야구를 잘 몰랐던 것이 맞다.
↑ 두산의 첫 외국인 치어리더 파울라가 2015KBO 잠실개막전의 식전 행사 리허설에 참가하고 있다. 사진(잠실)=천정환 기자 |
“모든 사람의 목소리가 하나가 되고, 함께 숨을 쉬고, 가슴이 쿵쾅쿵쾅 울리는 순간에 감동했어요. 독일에서 축구 경기를 많이 보러 갔지만,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입실렌티 체이홉’이 키워낸 단체응원 매니아는 지난겨울 우연히 발견한 모집공고에 이끌려 두산의 치어팀에 들어왔다. 본격적으로 연습한지 아직 채 한 달이 안됐다. 편도염으로 입원치레를 하면서 다른 팀원들 보다 연습기간이 훨씬 짧았다.
“빨리 선배님들처럼 하고 싶어요. 아직 부족한 게 많아서 마음이 급해요.”
노래도 ‘좀 하고’, 춤도 ‘꽤 춘다’며 두루 자신감이 넘치는 그녀지만, 오직 응원 실력만 아직 큰소리를 못 친다. 계속되는 덤블링 연습으로 등에 파스까지 붙인 파울라는 시즌 개막을 코앞에 두고 맹훈중이다. 이번 주말 NC와의 2015시즌 잠실 개막전에서 드디어 고대하던 데뷔 무대를 치를 전망이다.
스스로는 욕심처럼 딱딱 맞추지 못하는 단체 안무와 동작에 조바심을 태우지만, 두산 치어팀 박정희 단장은 “워낙 느낌이 좋고 흥이 많은 친구라 프리 댄스가 장기”라고 칭찬해준다. 짜릿한 승부의 순간, 두산 팬들과 하나 되어 누구보다 신나게 경기를 즐길 치어리더 파울라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다른 나라 사람들과 만날 때 언어를 모르면 아무래도 진솔하게 마음을 나누는 대화가 어렵더라고요. 영어로는 한국 사람들과 친해지기 힘들었는데, 이제 한국말을 하면서 진짜 친구가 많이 생겼어요.”
소통을 위해 말을 배우다가 ‘6개국어 능력자’가 된 파울라는 지금 7명의 친구와 ‘셰어하우스’ 생활을 하고 있다. 4명의 다국적 친구들과 4명의 한국인 친구들이 부대끼며 지낸다. 그중엔 물론 없으면 섭섭할 두산 베어스 팬도 있다. 파울라의 새로운 도전에 함께 기뻐하며 시즌 개막을 기다리고 있다.
그녀에게 한국은 ‘곱창 빼고는 다 맛있는’ 나라다. 그녀에게 서울은 ‘버스 타는 것 빼고는 다 편한’ 도시다. 한국에 와서 가장 억울한 것은 ‘잃어버린 스무 살’이다.
“작년에 쾰른에서 비행기를 탈 때는 열아홉 살이었거든요. 서울에 왔더니 여기서 저는 스물한 살인 거예요. 제 스무 살은 어디로 갔죠? 한국 나이 너무 속상해요.”
이제 하루만 기다리면 된다. 그녀가 기다리던 2015시즌, 잠실구장 스탠드의 모두를 열정의 스무 살로 만들어줄 야구가 온다.
[사진(잠실)=천정환 기자 / jh1000@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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