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그라운드의 여우’ 신태용이 ‘정식 감독’이 됐다. 잠시 국가대표팀 감독대행 자격을 맡기도 했지만, 지난 2012년 말 성남 일화를 떠난 뒤 그의 직함은 해설위원과 국가대표팀 코치였다.
그는 ‘난 놈’으로 불렸다. 지난 2009년 처음으로 감독으로 부임한 뒤 ‘친정팀’ 성남에서 화려한 꽃을 피웠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2010년)와 FA컵(2011년) 우승, K리그(2009년) 및 FA컵(2009년) 준우승을 일궜다. 초보 감독이 3년간 이뤄낸 성과는 눈부셨다.
하지만 감독으로서 마지막 시즌은 행복하지 않았다. 당초 기대는 컸다. 성남은 프리시즌 윤빛가람, 요반치치, 한상운, 이현호, 황재원을 영입하며 전력을 강화했다. 개막 전 참가한 아시아챌린지컵에서는 광저우 푸리(중국), 시미즈 S펄스(일본)를 상대로 무려 10골을 터뜨렸다. 성남의 화끈한 공격은 ‘닥공(닥치고 공격)’의 전북과 비교됐고, ‘신공(신나게 공격)’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그 해 7월에는 외국인선수의 물갈이 속에 레이나, 자엘, 하밀, 변성환을 보강했다.
↑ 신태용 감독은 2012년 성남 일화에서 신공을 완성시키지 못했다.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추에 도전하는 신태용 감독은 못 다 이룬 신공을 완성시켜 꿈을 이루겠다는 각오다. 사진=곽혜미 기자 |
화끈함도 없었다. 47골로 경기당 평균 1.07득점에 그쳤다. 이마저도 상주 상무의 보이콧에 따른 기권패(0-2) 처리에 따른 효과를 봤다. 두 번의 상주의 기권패를 제외한 42경기에서 43골만을 기록했다. 그 가운데 3골 이상 올린 건 3경기뿐이었다. 무득점 경기가 무려 16번이었다. 분명 신나는 공격이 아니었다.
그렇게 기대를 모았던 신공은 성남에서 미완성으로 끝났다. 하지만 다시 꽃을 피울 기회를 얻었다. 이광종 감독의 뒤를 이어 올림픽대표팀을 맡은 신태용 감독은 ‘신공’을 이식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9일 취임 기자회견을 가진 신태용 감독은 자신의 축구를 특별히 정의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가 그리고 싶은 그림은 신공과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신태용 감독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창의적인 축구를 펼치는 팀을 만들려 한다. 즐겁고 이기는 축구를 펼치겠다”라며 슈틸리케호보다 화끈한 공격축구를 약속했다. 이어 그는 “무실점은 하되 1골만 넣어도 이기는 게 아니라 2,3골을 넣어 크게 이기도록 하겠다”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내달 열리는 AFC U-23 챔피언십 예선을 통과한 뒤 본격적
갑작스레 지휘봉을 잡았다. 1%의 생각도 없었는데 운명처럼 리우로 향하는 태극호의 선장이 됐다. 신태용 감독은 “믿어달라”라는 말을 몇 차례 강조했다. 그리고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을 자신했다. 신공의 완성과 함께 평탄지 않을 길을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rok1954@mae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