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지난 7월 28일 한국축구를 이끌 새 외국인 감독을 찾던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충분한 시간과 굳건한 믿음을 약속했다. 그는 “누가 됐든 아시안컵에 대한 모든 책임을 물기에는 시간적으로 부족하다”라면서 아시안컵 성적 여하에 관계없이 2018 러시아월드컵까지 장기계약을 추진한다고 했다. 혹여 최악의 성적을 남기더라도 믿고 기다리며 전폭적인 힘을 실어주겠다는 의지였다.
그로부터 39일 뒤 독일 출신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공식 선임됐다. 묀헨글라드바흐와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면서 전차군단의 일원으로 월드컵 준우승 및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우승을 경험했다. 현역 시절에는 가장 빛나는 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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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부족한 시간에도 자신이 그린 그림대로 한국축구를 변화시켰다. 그래픽=이주영 기자 |
하지만 검증은 오래 거리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긴 해도 4개월이면 충분했다. 열정 가득한 슈틸리케 감독의 지도 아래 한국축구는 서서히 변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아시안컵 준우승,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정말 잘 싸웠다. 짧은 준비 시간 속에 최상의 전력을 갖추지 못하고도 참가한 걸 고려하면 최상의 성과를 올렸다.
무엇보다 그가 그린 그림대로 점차 팀이 발전하고 성장했다. 심혈을 기울인 수비 기초공사는 아시아 내 최고의 레벨로 올라섰다. 원팀을 꿈꿨지만 원팀이 되지 못했던 미완성팀도 상당히 다듬었다. 조별리그 호주전부터 펼친 태극전사의 희생정신과 투쟁심은 7개월 전 브라질에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없으면 스스로 만들었다. 슈틸리케호에서 태극전사는 새롭게 태어났다. 미운털이 제대로 박혓던 기성용(스완지 시티)과 김영권(광저우 헝다)는 이제 한국축구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선수가 됐다. 자리 잡지 못하던 김진현(세레소 오사카), 남태희(레퀴야), 박주호(마인츠), 장현수(광저우 부리), 한교원(전북)도 뿌리를 내렸다. 게다가 이정협(상주)이라는 ‘군데렐라’까지 탄생했다.
기상천외한 감독의 지략도 으뜸이었다. 11명이 아닌 23명의 힘으로 축구를 하는 그는 폭넓은 전술과 뛰어난 용병술로 주목을 받았다. 차두리(서울)를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조커로 기용한 전략이나 이라크의 측면을 무력화하기 위해 한교원(전북)과 이근호(엘 자이시)를 45분씩 번갈아 내세운 전략은 예상 외였다. 그리고 효과도 컸다. 호주, 우즈베키스탄, 이라크를 연파한 데에는 맞춤형 전술이 주효했다. 결승에서도 곽태휘(알 힐랄)을 최전방 공격수로 이동시켰는데 4분 만에 극적인 동점골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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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부족한 시간에도 자신이 그린 그림대로 한국축구를 변화시켰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
김기희의 평대로 능수능란한 전술을 운용하면서 원팀으로 최상의 경기력을 이끌어 낸 슈틸리케 감독이다. 특히, 부족한 준비시간에도 많은 걸 이뤄냈다. 모두의 기대 이상이었다. 첫 번째 시험 성적표는 ‘A’로 매우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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