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23일 호주의 캔버라 스타디움 관중석에는 ‘매의 눈’으로 지켜보는 독일 노신사가 있었다. 경기시간이 길어질수록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는 활짝 웃으며 발길을 시드니로 돌렸다.
캔버라 극장의 승자는 이라크였다. 그러나 진짜 승자는 한국이었다. 준결승에 선착해 상대를 기다리던 한국으로선 힘을 다 뺀 이라크를 보니 흐뭇할 따름이다. 한 가지도 아닌 세 가지 요인이 슈틸리케호를 춤추게 했다.
먼저 부담스런 상대를 피했다. 이란은 설욕하고 싶은 상대지만 가장 피하고 싶은 상대이기도 하다. 한국은 최근 이란전 3연패였다. 경기장 안팎으로 시끄러운 일이 적지 않았으며 감독과 선수들 사이의 앙금도 많았다.
게다가 아시안컵에서 6회 연속 이란을 만나는 게 꺼림칙했다. 온힘을 쏟느라 그 후유증으로 다음 경기를 그르쳤다. 55년 만에 우승 기회를 눈앞에 두고 이란을 만나는 건 썩 좋은 일이 아니다. 설욕이야, 월드컵 예선이나 평가전을 통해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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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사진)는 이란을 꺾고 2015 AFC 아시안컵 준결승에 진출했다. 그러나 출혈이 너무 컸다. 사진(호주 캔버라)=AFPBBNews=News1 |
한국은 우즈베키스탄과 120분 사투를 벌였다. 준결승까지 준비기간이 하루 더 주어졌다고 하나 기성용(스완지 시티), 손흥민(레버쿠젠) 등 주축 선수들이 근육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체력 소모가 컸다.
이라크는 한국보다 더 치열한 경기를 펼쳤다. 수적 우세를 살리지 못하고 90분 내 승부를 내지 못했다. 연장에서도 두 차례 리드를 잡았으나 세트피스를 못 막아 잇달아 실점했다. 이란의 저력이 빛났지만 이라크의 급격한 체력 저하 탓이 컸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제대로 그라운드를 뛰기도 힘들어햇다.
마지막으로 이라크의 전력 손실이다. 이라크는 아시안컵 준결승 진출 티켓 획득에 따른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에이스’를 잃었다. 2007년 대회 우승의 주역인 유누스 마흐무드가 있지만 실질적인 중심축은 미드필더 야세르 카심(스윈던 타운)이었다. 기성용처럼 조타수로서 이라크의 공격 실마리를 풀어줬다. 때론 해결사 역할도 했는데, 요르단과 조별리그 1차전 결승골을 넣었다. 이란전에서도 2-2
그 핵을 잃은 이라크다. 카심은 이란전에서 후반 23분 경고를 받았다. 요르단전에 이은 이번 대회 두 번째 경고다. 경고 누적에 따른 출전정지 징계로 준결승 한국전에 뛸 수 없게 됐다. 가뜩이나 무뎌진 이라크의 창은 카심의 빈자리로 더욱 무뎌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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