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프로야구 선수들이 비시즌 훈련할 곳을 잃었다. 자율훈련도 숨어서 눈치를 봐야 하는 황당한 상황. 눈을 번뜩이는 감시자들 때문이다.
프로야구 비활동기간 합동훈련이 또 도마 위에 올랐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가 총회에서 결의한 비활동기간 합동훈련 금지 방침을 어겼다는 보도 때문이다.
한 언론 매체는 15일 오전 넥센 히어로즈가 목동구장에서 합동훈련을 실시하고 있다고 보도해 논란을 일으켰다. 일부 코치들이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했다는 것. 이강철 수석코치와 홍원기 수비코치, 김하성, 윤석민 등이 포착됐다.
↑ 지난 1월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있는 넥센 히어로즈. 사진=MK스포츠 DB |
야구규약 139조에 따르면 ‘구단 또는 선수는 매년 12월1일부터 이듬해 1월31일까지 야구경기 또는 합동훈련을 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총재가 특별히 허가할 때·선수가 자유의사로 훈련하는 경우·전지훈련 관계로 선수들이 요청할 때에는 1월 중순 이후 합동훈련을 할 수 있다’는 예외규정도 있다.
올 시즌 종료 이후 선수협은 1군 선수 외에 2군 및 재활선수의 합동훈련도 금지했다. 비활동기간 합동훈련이 가능한 선수는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등록되지 않은 신인선수, 신고선수, 무적선수들이다.
넥센은 이번 논란에 대해 “자율훈련을 하는 선수들을 지나가다 본 코치들이 한 마디씩 한 것에 대한 오해”라고 설명했다. 염경엽 넥센 감독도 “사무실이 야구장에 있는데 출근을 하지 말라는 것인가. 우리는 자율훈련을 가장 잘 지키는 팀이다. 문제될 게 없다”라며 발끈했다.
넥센의 합동훈련 논란은 분명 오해의 소지가 있다. 코치가 지켜보는 가운데 선수들이 훈련을 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명백히 선수협에서 금지하고 있는 합동훈련의 요건을 갖췄다. 구단에서 강제적으로 합동훈련을 지시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도 고쳐 매지 마라’는 옛말이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논란이 될 수 있는 것은 합동훈련의 기준이다. 사실상 대부분의 구단 선수들은 야구장에 출근 도장을 찍고 있다. 강제성이 아닌 자율훈련을 위해서다. 코칭스태프도 야구장을 들락거린다.
그러나 스케줄에 따른 합동훈련은 아니다. 코칭스태프도 집에서 마냥 쉬지 않는다. 사무실이 있는 야구장에 들렀다가 선수가 보이면 한 마디씩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조언을 해줄 수도 있다. 선수와 코치가 만나 눈치를 보면서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는 것이 어불성설이다.
심지어 선수들 사이에서는 합동훈련의 기준을 명확히 숙지하고 있지도 않다. 선수마다 말이 다르다. 예를 들어 야구장에 나와서 자율훈련을 하는 것조차 기준이 모호하다. A선수는 “괜찮다”고 말하고, B선수는 “눈치가 보인다”고 말한다. 또 재활선수들도 마찬가지. 재활 중인 C선수는 “구단 숙소에서 머물며 재활을 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말하기도 한다.
더 안타까운 것은 훈련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환경 때문이다. 최근 지방에 사는 2군 소속 D선수는 자율훈련을 할 곳이 없어 모교를 방문했다. 추운 날씨에 고교 후배들과 함께 흙바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1군 진입을 위해서는 마냥 놀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들은 한 구단 고위관계자는 “그 선수와 직접 얘기를 나누고 정말 마음이 아팠다. 왜 모든 훈련시설을 갖춘 야구장이 있는데 부상 위험이 있는 운동장에서 훈련을 해야 하나. 구단에서 운영하는 시설의 낭비다. 안타까운 현실이다”라며 “그래도 그 선수는 의지라도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술이나 먹고 놀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답답해 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구단의 지시가 아닌 선수들의 자율훈련 의지를 꺾으면 안 되는 일 아닌가. 강제성이 없는 개인훈련에 자율적으로 오가던 코치의 조언도 못 듣는
프로는 자신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관리를 해야 하는 숙명을 갖고 있다. 그런데 구단의 감시가 아닌 제3자의 감시 때문에 훈련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선수협은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닫은 강경책이 아닌 유연한 해결책을 마련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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