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김원익 기자] 태양을 다시 붙잡았다.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의 선택은 지난 3년간 여러 실패를 남긴 선동열 감독과의 재계약이었다. 이미 아련해진 석양의 노을빛에 아직 빠져있는 결정인지. 해가 다시 찬란하게 떠오르기 전 미약한 빛무리, 여명의 순간인지는 결과가 증명할 터다. 하지만 KIA의 지난 3년의 과거, 그리고 현재, 앞으로의 2년이라는 미래를 두루 고려하면 재신임이 명분과 실리를 모두 고려한 결정인지는 의문이 있다.
▲ KIA의 역대 가장 초라했던 3년, 현실에 눈 감았나?
KIA는 19일 “선동열 감독과 2년간 총액 10억6000만원(계약금 3억원, 연봉 3억8000만원)에 재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2011년 말 부임하면서 KIA와 3년 계약을 맺었던 선 감독은 이로써 2년의 기회를 더 얻게 됐다.
↑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KIA 타이거즈의 선택은 선동열 감독의 재신임었다. 사진=MK스포츠 DB |
애정이 많은 만큼 더 민감하고 갈대처럼 흔들리는 것이 팬심이다. 하지만 이들의 당혹스러움, 그 감정을 넘은 분노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선 감독의 재계약 이후 각오에 그 답이 있다. 계약 직후 선 감독은 “무엇보다 지난 3년간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해 타이거즈를 응원해 주신 많은 팬들에게 죄송하다”며 “재신임 해 준 구단에 감사하며,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백업 육성과 수비 강화 등 기초가 튼튼한 팀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선 감독의 말대로 최근 3년간 KIA의 성적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 타이거즈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뚜렷한 성적은 커녕 역대 가장 쓰렸던 3년에 가까웠다. KIA는 2012년 62승65패6무(0.488)로 5위에 그쳤다. 2013시즌에는 51승74패3무(0.408)를 기록, 8위라는 더한 수모를 경험했다. 선 감독의 이전 3년 계약 마지막 해였던 올해도 54승74패(0.422)를 기록하며 8위에 머물렀다. 올해는 특히 시즌 후반기 15승 31패(승률 0.326)으로 무너지며 막바지까지 한화 이글스와 부끄러운 탈꼴찌 경쟁을 했다. 선 감독이 3년 간 KIA서 기록한 성적은 167승213패9무, 승률 4할3푼9리다.
특히 기대가 컸던 KIA만의, 그리고 선 감독만의 색깔도 결국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2012년과 2013년은 그래도 ‘선발야구’라는 뼈대가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선수들의 노쇠와 줄부상, 이적 등으로 형체가 사라졌다. 올해 ‘마운드 야구’의 색채감은 명보다 암이 짙었다(평균자책점 5.82, 8위). 타격 역시 마찬가지. 빛 좋은 개살구에 가까웠던 팀 타율(0.288)에 한참 모자라는 662득점(8위)의 생산력에 허덕였다.
여러 전력 요소들의 변동을 감안하더라도 2011년 승률 5할2푼6리를 기록한 팀이 점차 하락세(2012년 0.488->2013년 0.408) 혹은 큰 반등 없는 저점(2014년 0.422)에서 머물렀음에도 다시 2년의 기회를 제공받은 점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진실은 기초가 탄탄하지 못한 팀이었다는 2년 계약 이후 자아성찰이 들어맞았던 3년이었다.
▲ 리빌딩 필요한 KIA, 다시 GO? 갈팡질팡 행보
올 겨울 KIA는 내야수 안치홍, 김선빈이 군입대를 하고 에이스 양현종도 해외진출을 앞두고 있다. 현재 마운드의 주축도 호흡을 길게 가져가며 청사진을 그릴 수 있는 선수들이 많지 않다. 내년 시즌 특별한 전력 보강 요소도 없다. 결국 포지션 전반에 가능성 있는 선수들을 기용해 리빌딩을 해야할 시점인 셈이다.
물론 프로스포츠에 진정한 리빌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올 시즌 KIA를 두고 많은 현장의 지도자들은 “해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복합적인 문제가 산적해 있다”는 평가를 내린 경우가 많았다. 몇 가지 문제점을 채워 넣어 당장 4강에 도전할만한 팀을 만들기 쉽지 않다는 것이 올해의 KIA를 바라보는 냉정한 현장의 결론이었다.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리빌딩이라는 이름의 새 판 짜기가 필요한 상황. KIA가 김선빈과 안치홍의 동시 입대를 허용한데 이어 양현종의 해외 이적까지 고려하고 있는 이유 또한 그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 감독의 재신임은 더욱 당혹스러운 결정이다. 선 감독은 2004년 삼성 라이온즈 수석코치로 부임한 이후 이듬해 삼성 사령탑에 올라 2005년과 2006년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우승을 달성하며 승승장구했다. 그 과정에서 현재 삼성 명가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기여했다는 평도 받고 있다.
그렇지만 선 감독이 젊은 선수들을 육성하고, 소통하는 면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 또한 적지 않았다. 물론 변화도 있었다. 고압적이고 다소 딱딱했던 기존의 스타일을 바꿔나갔다. 지난 스프링캠프에는 선수들에게 ‘10승, 20홀드, 100이닝, 3할, 20홈런’ 등의 구체적인 기대치를 농담 섞어 전하며 힘을 북돋워 주기도 했다. 격려보다는 냉정한 평가가 주를 이뤘던 KIA 부임 초기에 비하면 달라진 모습. 여러모로 선수들과 소통하려 애를 쓰는 노력에 선 감독이 예전에 비해 부드러워졌다는 평이 부쩍 늘어났다.
하지만 이 변화와 리빌딩은 별개의 문제다. 지난 3년의 과정을 돌이켜봐도 그렇다. 선 감독의 체제하에 뚜렷하게 성장한 젊은선수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는 비단 선 감독만을 탓할 부분은 아니다. 선 감독과 코칭스태프, 프런트, 선수 등 선수단 전원의 복합적인 문제다. 그렇지만 선 감독의 뚜렷한 세대교체의 성과가 없다는 객관적 진실이 가려지지도 않는다.
애초에 선 감독이 명문 삼성의 사령탑에서 내려와 고향팀의 지휘봉을 잡았을 당시 그의 역할은 ‘우승 청부사’였다. 현재 천명한 ‘기초를 만드는 감독’은 아니었다.
KIA는 내년, 올 시즌보다 더 힘든 시기를 겪을 가능성도 있다. 전력 약화가 뚜렷하다. 그런 ‘고난의 과정’과 ‘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스타플레이어 출신’의 선 감독 간
이미 후반기 선 감독의 재신임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의사결정의 주체가 현장의 의견보다는 고위층의 의견이 주였다는 점에서 그간 KIA의 행보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 핵심이다. KIA가 호남야구의 상징을 살리기 위해 독이 든 성배를 다시 들었고, 그로 인해 구단운영의 방향을 잃어버렸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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