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승민 기자] ‘우리는 매일 아침 뉴스를 본다. 그녀는 정말 예쁘다...’
도저히 불가능한 미션. 그러나 킬러들은 ‘그녀의 의뢰’라는 한마디 말에 위험천만한 작전에 나선다. 매일 아침, 그들에게 행복한 순간을 선물해줬던 ‘그녀’, 오영란 아나운서를 위해.
영화 ‘킬러들의 수다’ 속 뭉클한 순정에 어쩐지 공감했던 스포츠팬이라면,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들을 ‘여신’으로 부를 것 같다.
“여신이라뇨... 저는 장신이죠.”
KBSN스포츠 정인영 아나운서(29)는 오글거리는 호칭에 손사래를 친다. 유럽리그 축구를 얼추 3시즌째. 지난여름 브라질월드컵까지 다녀왔고, 프로야구도 3시즌을 뛰었다. ‘팔방미인’ 그녀는 이번 주말 세 번째 프로배구 V리그 시즌 개막을 맞는다. 지난 14일과 15일, V리그 미디어데이에 나선 훤칠한 배구 스타들 사이에서 176cm의 큰 키는 더욱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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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지켜보면 사뭇 차이가 느껴진다. 배구, 야구, 축구 선수들은 저마다 개성이 있다.
“배구 선수들에 비하면 야구 선수들은 좀 더 화려한 연예인 느낌이죠.”
국내 최고 인기 프로리그의 스타들인 만큼 야구장에는 당당한 자신감이 돋보이는 세련된 선수들이 많다.
“농구, 축구 선수들은 터프한 매력의 상남자들이 많아요. 아무래도 몸싸움이 많은 종목이라 그런지 호쾌하면서도 강인한 느낌의 스타들을 자주 볼 수 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무수한 아나운서 시험을 봤다. 도전과 낙방을 거듭하면서도 ‘오직 아나운서’ 만을 목표로 5년을 견뎠다. 그리고 기어이 손에 쥐었던 마이크.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날. 2011년 12월1일 용인 실내체육관에서 열렸던 KB대학농구리그 연세대와 경희대의 챔피언결정전 1차전이 정인영 아나운서의 데뷔 경기였다.
최초의 목표는 아니었지만 결국 스포츠 아나운서가 된 것은 행운이다.
“한살 터울 오빠가 워낙 야구를 좋아해서 야구장을 꽤 따라 다녔어요. 캐치볼을 강제 학습당하기도 했죠. 스포츠에 대한 친숙함이 일을 배우는데 큰 도움이 됐어요.”
여자 아나운서가 ‘꽃병풍’이 되는 것은 진지한 스포츠팬들이 못마땅해 하는 장면이기 이전에 그녀들 스스로가 가장 되고 싶지 않은 모습이다. 입사 후 석달 넘게 스포츠 교육을 받았다. 각 종목의 규칙집을 공부하고, 심판원들의 특강에도 참가했다. 지금은 ‘한솥밥 식구’들인 해설위원들이 가장 고마운 선생님들이다.
처음 배울 때 힘들었던 종목은 배구다. 여러 선수들의 움직임을 체크하면서 공의 스피드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끈질긴 수비와 아기자기한 조직력의 여자 선수들 경기를 집중적으로 보면서 플레이의 기본을 익혔다.
“일단 많은 경기를 봐요. 놓친 중계도 다시 보고, 정 시간이 없을 때는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에서 요약한 경기 장면들을 꼼꼼하게 챙기죠. 경기를 직접 보지 않고, 기사나 말로 전해 들어서 알게 된 내용으로는 일할 때 분명히 차이가 나더라고요.”
좋은 질문은 좋은 답변을 끌어낸다. 선수들과 인터뷰했던 내용을 다른 기사에서 발견할 때 기쁨이 크다. ‘팬들에게 흥미로운 포인트를 나도 잘 전달했다’는 뿌듯함이 든다.
특정 팀을 응원하지는 않지만, 특별한 인상을 받는 만남은 있다.
“야구장에서는 삼성 류중일 감독님을 뵐 때 대단한 분이라고 느낄 때가 많았어요. 이겨야 본전인 경기를 이기고, 남들이 쉽게 말하는 ‘우승이 당연한 시즌’에 진짜 우승을 해내는 게 결코 쉽지 않을 텐데... 항상 솔직하시면서도 배포도, 여유도, 그리고 최선도 느껴지더라고요.”
멋있는 신사 감독들이 많은 배구 코트도 정인영 아나운서가 늘 ‘승부의 한 수’를 배우는 곳이다. 위트와 유머감각은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이 으뜸”이라고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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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 꿈은 10년 후 ‘아침마당’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거에요.”
역시 ‘공중파 교양 MC’가 꿈? 각오했던 배신감을 맛보려는데 뜻밖의 포부를 내놓는다.
“10년 넘게 스포츠 현장을 달리고 있는 스포츠 아나운서로 초대받는 거죠.”
그때까지 경기장을 뛰고 싶단다. 이미 ‘아이러브베이스볼’과 ‘스페셜V’의 스튜디오 MC인 정 아나운서지만, 현장의 따끈따끈한 리포트를 여전히 가장 매력넘치고 보람있는 일로 믿는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그라운드에서 수훈선수 인터뷰를 하잖아요. 리모컨을 돌리지 않고 인터뷰를 기다리시는 분들은 아무래도 승리팀 팬들이 많겠죠? 누군가 가장 기쁘고 행복한 순간에 그 감격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역할이란 게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가끔 손글씨 팬레터를 받는다. ‘TV에서 누나를 볼 때 마다 기분이 좋다’고 해주는 학생 팬들이 가장 고맙다.
“좋은 시선을 받지 못할 때도 있어요. 서운하게만 여길 일이 아니죠. 더 많이 노력하고 발전해야한다는 의욕이 생겨요. 저희가 받는 평가는 결국 저희가 만들어가는 거니까요.”
10년 이상 일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고, 오래오래 살아남는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의 모델을 만드는 게 그녀의 과제다. 만만치 않을 그 길을 달려가는 ‘정인영 최고의 경쟁력’을 물었다.
“스포츠를 진
주말에 더 바쁜 탓에 친구들을 자주 만날 수 없는 게 가장 안타깝다. 그래서 평일 퇴근길 ‘속풀이’ 맥주 한 잔의 시원함이 소중하다고. 직업이 ‘여신’일 뿐, 참 인간적인 그녀다.
[사진=곽혜미 기자 / clsrn918@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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