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1차 테스트는 끝났다. 23명의 태극전사 가운데 22명이 뛰었고, 울리 슈틸리케 감독(60)의 흰 도화지에도 그림이 그려졌다. 누구는 좋게, 누구는 좋지 않게 쓰였을 것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선수 평가를 최대한 아꼈지만 ‘희비’는 분명 있었다.
슈틸리케호 1기에서 가장 활짝 웃은 건 남태희(23·레퀴야)와 김민우(24·사간 도스)였다. 2014 브라질월드컵 예비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끝내 브라질행 비행기를 타지 못했던 둘은 그 울분을 슈틸리케호에서 모두 털어냈다.
남태희와 김민우는 지난 10일 파라과이전에서 나란히 골을 터뜨리며 슈틸리케 감독에게 첫 승을 선물했다. 개인적으로도 A매치 데뷔골이라 의미가 남달랐다.
↑ 김민우는 슈틸리케호 첫 골의 주인공이었다. 왼쪽 미드필더와 왼쪽 수비수로 뛰면서 멀티 플레이어로서 능력도 검증 받았다. 사진(천안)=김영구 기자 |
그리고 둘은 슈틸리케 감독을 흡족하게 했다. 남태희는 전반 46분 기막힌 전진 패스로 동점골의 시발점 역할을 했다. 남태희의 패스는 손흥민(22·레버쿠젠)을 거쳐 이동국(35·전북)의 골로 연결됐다. 김민우도 멀티 플레이어 자질을 발휘하면서 전반 42분 크로스바를 때리는 강력한 슈팅을 날렸다. 코스타리카의 파울로 완초페 감독대행(38)은 김민우를 가장 인상적인 선수로 꼽았다.
기성용과 이청용도 슈틸리케호에서 주가를 드높였다. 기성용은 170분으로 태극전사 가운데 가장 많은 출전시간(2위 143분의 남태희-3위 141분의 김민우)을 소화했다. 주장 완장을 차면서 슈틸리케 감독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의 현역 시절 포지션과 같은 기성용은 전술적 구심점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코스타리카전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전진 배치되기도 했다.
파라과이전에서 45분만 뛰고도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이청용은 코스타리카전에서도 현란한 드리블 돌파와 창의적인 패스로 공격에 힘을 실어줬다. 브라질월드컵 및 9월 A매치 2연전 부진을 말끔히 씻었다. 예의 이청용으로 돌아왔음을 널리 알렸다.
김진현(27·세레소 오사카)과 장현수(23·광저우 부리)도 눈도장을 찍었다. 슈틸리케 감독이 공식 기자회견에서 공개적으로 칭찬한 선수는 2명인데 바로 김진현과 장현수였다.
김진현은 파라과이전에서 신들린 선방을 펼치며 무실점 승리에 기여했다. 경쟁자인 김승규(24·울산)가 코스타리카전에서 3실점을 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장현수도 중앙 수비수가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합격점을 받으며 기성용의 새 파트너 후보로 떠올랐다.
파라과이전에서 최전방 공격수로 뛰면서 유기적인 스위칭 플레이를 펼친 조영철(25·카타르SC)도 한 번 더 부름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다음에는 대체 발탁의 행운 없이도 실력으로 뽑힐 터다.
반면, 슈틸리케 감독의 눈도장을 찍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가장 체면을 구긴 선수는 수비수 김영권(25·광저우 에버그란데)이다. 중앙 수비수로 유일하게 2경기를 뛰었다. 파라과이전은 경기 종료 직전이라 평가대상이 아니다.
↑ 한국은 코스타리카전에서 1-3으로 패했다. 김영권(가운데)은 대량 실점의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후반 2분 실수도 치명적이었다. 사진(상암)=김영구 기자 |
이명주(24·알 아인)와 박종우(23·광저우 부리)도 입지를 다지지 못했다. 파라과이전에서 나란히 교체 출전했던 이명주와 박종우는 코스타리카전에서 보다 많은 출전시간이 주어질 줄 알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의 부름은 없었다. 벤치만 달궜다. 이명주는 13분, 박종우는 10분을 뛴 게 다였다.
출전시간 부족보다 더 쓰라린 건 경쟁자의 활약이다. 이명주의 자리에 선 남태희는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한 발 앞서 나갔다. 박종우 또한 한국영(24·카타르SC) 외 장현수라는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코스타리카전에서 후반 21분 남태희를 빼면서 한국영을 교체 투입했다. 그리고 더 이상 중원에 변화를 주지 않았다. 이명주와 박종우가 옵션에서 뒤로 밀려있다는 것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지션은 중앙 수비와 중앙 미드필더다”라며 변화가 가장 없을 수 있다는 걸 시사했다. 이명주와 박종우로선 분발이 필요하다.
김승대(23·포항)는 유일하게 경기를 뛰지 못했다. 부상 등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앞서 슈틸리케 감독은 공겪수 부족에 따른 발탁이라고 설명했다.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잘 했지만 이른 호출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코스타리카전에서 팽팽한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슈틸리케 감독은 이동국 카드를 고집했다. ‘전문 스트라이커’로서 이동국이 더 믿음직하다는 이야기다.
박주호도 아쉬움을 남겼다. 슈틸리케호에서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그의 출전시간은 15분이 전부였다. 다비드 라미레스(21·사프리사)의 태클에 걸려 오른 발목을
염좌로 인대 손상이나 골절 등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분간 경기 출전도 어렵다. 회복 속도가 더디고 정상 컨디션을 찾지 못한다면, 내달 중동 원정 합류에 빨간불이 켜질지 모른다. 슈틸리케 감독은 소속팀의 경기 출전이 선발 기준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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