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김원익 기자] 프로야구 원년이었던 1982년부터 꾸준히 이어져왔던 200이닝 이상을 소화하는 완투형 한국투수의 계보가 류현진(LA다저스) 이후로 대가 끊겼다. 벌써 6년째다. 선발 투수의 덕목, 그 꾸준함을 증명하는 대단한 기록인 200이닝 이상을 던질 수 있는 한국 투수는 어떻게 사라지게 됐을까.
▲ 사라진 한국 철완, 2007년 류현진 이후 6년째 대 끊겨
한국 프로야구 역대 200이닝 이상을 소화한 투수는 총 45명이었다. 1982년 노상수(롯데), 박철순(OB), 황규봉(삼성)이 최초. 이후 최동원(롯데, 1983~1987)과 정민태(현대, 1996~2000)가 5시즌 연속 200이닝 이상을 소화하며 철완을 과시했다. 가장 최근은 지난해 레다메스 리즈(LG)가 기록한 202⅔이닝이다. 2003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다섯 시즌은 200이닝 이상을 기록한 투수들이 없었다. 올해도 나오지 않을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 |
↑ 류현진 이후로 대가 끊긴 한국 투수의 200이닝 돌파는 과연 다시 나올 수 있을까. 사진=MK스포츠 DB |
2004년 리오스(KIA), 레스(두산)-2005년 리오스(두산)만이 이 기록을 달성했다. 이후 류현진(한화)이 2006년 혜성같이 나타나 201⅔이닝을 소화한 이후 2007년에는 211이닝을 던지며 2년 연속 이 고지를 밟았다.
하지만 이후 6년째 200이닝을 넘긴 한국 투수들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2012년 브랜든 나이트(넥센)가 200이닝 고지를 넘어서면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 연속 사라졌던 철완의 계보를 이었지만 토종투수의 자리는 아니었다.
▲ 기본기 실종? 선발 투수의 연성화?
한국은 현재 128경기 체제서 선발투수가 한 시즌 로테이션을 꾸준히 지켰을 경우 최대 31번 정도를 등판할 수 있는 구조다. 그것도 특별한 경우. 일반적으로 28~30경기를 소화하면 매우 훌륭하게 풀타임 로테이션을 지켰다고 볼 수 있다.
30경기를 가정해 매 경기 6이닝 이상씩을 소화해도 최대 180이닝이다. 실제로 이조차도 희박하다. 올해 다승과 최다 이닝, 승률, 탈삼진 등에서 1위를 노리고 있는 넥센의 앤디 밴 헤켄만이 유일하게 30경기에 나서 181이닝을 소화했다. 이처럼 한국야구에서 200이닝을 넘어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본격적인 투수 분업화가 진행되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는 더욱 그렇다. 선발 투수들은 6이닝을 소화하는 것이 최대 덕목으로 여기고 있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6이닝 이상을 3자책 이하로 막는 퀄리티스타트라는 새로운 지표가 선발투수의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로 여겨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경우 유독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선발투수들의 이닝 소화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 야구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9일 잠실 LG전을 앞두고 선동열 KIA 감독은 현재 메이저리그의 에이스인 클레이튼 커쇼의 이야기를 하던 중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선 감독은 “한국 투수들의 경우에 하체훈련을 많이 하는 메이저리그에 비해서 기초 훈련을 많이 하지 않는다”면서 “전반기에 비해서 후반기 힘이 떨어지는 투수들을 많이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하체훈련은 미국이나 일본의 많은 투수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매우 강조하는 대목이다. 선 감독은 “좋은 투구를 한다는 것은 결국 하체가 든든하게 바탕이 돼야 한다. 일본의 경우에도 정확한 자세와 밸런스로 공을 던지는 것을 강조한다. 그런데 한국은 요즘 그런 기본에 대한 훈련들을 많이 하지 않는 것 같다”면서 “예전에는 겨울 훈련량이 매우 많았고 이후 시즌을 들어가면 훈련량을 조절했었는데 요즘은 겨울 훈련을 많이 하지 않고 시즌 중에도 훈련량이 거의 달라지지 않는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바뀐 아마야구 환경도 영향이 있다고 봤다. 선 감독은 “예전 중고교 야구부의 경우에는 선배들의 지원과 장학금 등으로 운영됐기에 감독의 소신대로 팀 운영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학부모들의 회비로 팀을 운영한다”며 “그러다보니 학부모들의 외압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힘든 훈련은 적게 시키고 대회와 경기를 위한 준비만을 하고, 기초에 대해서는 점점 소홀해 지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비판 역시 현재 아마야구에서 느끼는 실질적인 고충이다.
이어 선 감독은 “물론 일본의 고교숫자가 5000개가 넘고 야구 인구 자체가 엄청나게 차이가 나기에 비교를 할 수는 없다”면서도 “일본에서는 매 해 10승을 하는 신인들이 나오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신인 투수들이 사라진지가 벌써 오래되지 않았나. 기본기 없이 세게 던지는 것만 생각하다보니 어린 투수들도 대부분 프로에 올때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며 개탄했다.
현역 시절 73구 완봉승의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던 명투수 출신의 임호균 본지 해설위원 또한 완투형 투수의 실종으로 기본기 부족과 마음가짐을 꼽는다. 임 위원은 “웨이트트레이닝의 발달과 변종 구종 등의 도입으로 투수들의 기본 하드웨어와 공을 던지는 기술 자체는 늘었다. 하지만 기본기나 밸런스는 오히려 퇴보한 것이 사실”이라며 하체운동 등의 중요성을 등한시하는 현재 투수들의 경향을 꼬집었다.
이어 임 위원은 “선발 투수들의 마음가짐도 문제다. 선발 투수를 보호해야하는 것도 맞지만 기본적으로 스스로는 완투 혹은 완봉을 해서 경기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마운드에 오를 필요가 있다”며 “하지만 요즘은 투수들이 5이닝에서 6이닝을 소화하면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해서 교체를 원하거나 더그아웃을 쳐다보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기본적인 마음가짐이 약해졌다”고 봤다.
물론 200이닝 이상을 소화할 수 있는 완투형 투수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기본기 부족과 달라진 투수들의 마음가짐만을 원인으로 꼽을 수는 없다. 하지만 여러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도 한국 야구계가 귀담아 들을만한 부분이다.
200이닝 투수의 실종의 의미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투수들의 전반적인 기량이나 수준이 과거
내년 프로야구는 10구단 144경기 체제로 치러지기에 토종 200이닝 투수가 나올 가능성이 충분하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완투형 투수들을 다시 볼 수 있을지는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one@mae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