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승민 전문기자] 떠날 때부터 다시 돌아올 것을 알았다.
한 시즌 만에 LG로 컴백한 차명석 수석코치(45)는 밝고 활기차다. 스스로에게 약속했던 현장 복귀의 의지를 올해가 끝나기 전에 이뤄냈다.
“아직 현장에서 더 많이 배워야 하고, 더 많이 뛰어야죠.”
지난겨울, 끝내 유니폼을 벗게 했던 건강은 말끔히 회복한 상태.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으로 마이크 앞에 서는 동안, 팬들의 뜨거운 응원과 사랑을 받으며 두둑한 재충전도 했다.
“스마트폰도 쓸 줄 모르고, 인터넷도 잘 볼 줄 몰라서 사실 많이 모릅니다.”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던 ‘차명석 어록’이나 ‘차해설’에 관한 팬들의 글은 직접 본 적이 거의 없다. 주변에서 뽑아 보여주거나 말을 해줘서 아는 정도. 어느 언론사의 야구 해설위원 인기도 조사에서 1위를 했다는 기사에 싱글벙글 크게 기뻐했던 것이 팬 사랑을 직접 확인한 뿌듯한 기억이다.
↑ 다시 현장으로 돌아온 차명석 코치는 LG의 밝은 미래를 확신하고 있다. |
야구인 중 단연 책을 많이 읽는 축으로 잘 알려진 차코치는 야구 중계와 보도 프로그램 이외에는 TV도 거의 보지 않는다. 약속시간에는 늘 30분 이상 일찍 나간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책을 읽는 30분이 그에게는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처음 코치 일을 시작했을 때죠. 막연히 답답한데 야구 말고 다른 데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 책을 잡았습니다.”
초기 독서법은 ‘맨땅에 헤딩’이었던 것 같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고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10년 이상 책 읽는 버릇을 들인 차코치는 이제 요령 있고 스마트한 독서가다. 흥미로운 책도 잘 고르고, 주제도 쏙쏙 잘 소화한다. 야구와 전혀 관련이 없는 책을 많이 읽는 이유는 복합적인 논리 회로와 미래에 대한 비전, 넓은 사고 능력의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
“닥쳐서 반응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죠. 조직은 비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망이 있고, 대비가 있어야 하죠. 그러기 위해선 멀리보고 상황을 다르게 읽는 관찰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야구에 대한 공부만큼이나 경영, 경제, 철학에 대한 공부가 도움이 되더라고요.”
말은 사실 선수 때부터 잘했다. 그때도 별명이 ‘변호사’였으니까. 딱히 책의 덕은 아닐 듯한데.
“저 노력 많이 하는데요. 보도 프로그램을 보는 이유는 뉴스를 알기 위해서도 있지만, 설득력 있게 말하는 분들의 화법을 보고 배울 수 있기 때문이죠.”
왜 그렇게 말을 잘하는 게 중요할까.
“전달력은 야구 해설가에게도 중요하지만, 코치에게도 소중합니다. 선수들은 납득할 수 있는 가르침에 반응하거든요.”
↑ 차명석 코치는 책을 읽으면서 기억할만한 구절을 깨알같이 메모한 수첩과, 매일매일의 일상을 적은 다이어리를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
“나를 바꾸는 게 재미있을까요? 남을 바꾸는 게 재미있을까요?”
남들은 고민 할 수도 있는 선택지라는 것에 깜짝 놀란다. 그는 단연 ‘남을 바꾸는 일이 훨씬 더 재미있다’고 말한다. 코치 일을 정말 좋아한다.
차코치는 LG의 전력에 확신이 있다.
“내년에는 더 잘할 겁니다.”
젊은 선수들의 소위 ‘풀’이 좋다는 말은 LG와 퓨처스리그를 치른 다른 팀 벤치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다. 차코치는 여기에 더해 ‘알을 깨고 나온, 한 단계 진화한 선수단’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2002년 한국시리즈 이후 LG는 짧지 않은 침체기를 겪었다. ‘내려갈 팀’이라는 비아냥을 받기도 했다. 그때 LG 선수들이 얻은 가장 큰 지병은 ‘우린 안된다’는 부정적 자기암시였다.
“일부 언론과 (안티)팬들이 만든 프레임에 자기도 모르는 새 중독이 되는 거죠. 선수들에게 그런 얘기를 가장 많이 했습니다. 남들이 만든, 그리고 스스로를 가둔, ‘프레임으로부터 벗어나자’고요.”
LG는 지난해 페넌트레이스 2위를 차지하며 팀 평균자책점 1위(3.72)를 했다. 2003년(3.98) 이후 10년만의 3점대 팀 평균자책점이었다. 투수코치였던 차코치도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온전히 제 덕은 결코 아닙니다. 저로선 그저 고맙고 자랑스러운 일이죠.”
이제 차코치는 LG를 ‘되는 팀’으로 본다. 침체기를 딛고 일어서 본 경험 끝에 탄탄한 기초체력을 다진 선수들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LG의 터널에 대한 꽤 널리 회자되는 은유,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에는 반대한다.
“LG는 분명히 얻은 게 있습니다. 선수들이 앞으로 많이 보여줄 꺼에요.”
보여줄 게 많다는 LG의 ‘젊은 피’들을 이끌고 차코치는 이 가을 일본 미야자키 교육리그로 떠난다. 감독자 회의
참, 지난주 차코치가 약속 장소에서 읽고 있던 책은 그리스 철학가 크세노폰의 고전 ‘키로파에디아’였다. 이미 지금 손에 쥐고 있는 책은 아니겠지만. 그는 일주일에 세권 이상 새 책을 읽는다.[chicleo@mae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