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군산) 이승민 기자] 1991년 프로야구 신인왕을 다퉜던 11승의 고졸 루키. 1992년 우승팀 롯데의 마운드 한축을 담당했던 좌완.
그러나 20여 년이 훌쩍 지난 24일, KBO총재배 직장인 야구대회 결승전에 출전한 그는 2회 첫 타석에 안타를 치고 달려 나가자마자 허벅지 근육통으로 절뚝절뚝 그라운드를 내려오고 만 ‘마음만 박남정’이었다.
이번 대회 출전한 16개 직장인팀 선수들 중 단연 돋보이는 프로 6시즌 경력의 ‘스타 선출’이었던 세종공업 김태형(42)은 그렇게 다소 허무한 활약으로 대회를 마쳤다. 업무상 출장 중이었던 16강전, 8강전은 아예 참가하지 못했고 준결승에서는 1이닝 투구, 결승전은 2회 조기 부상 아웃이다.
↑ 제1회 KBO총장배 직장인야구대회에 출전한 세종공업의 김태형은 1990년대 롯데에서 6시즌을 뛰었던 투수 출신이다. 사진(군산)=이승민 기자 |
팀의 준우승이 못내 아쉽지만, ‘승부보다 즐기는 야구’를 말하는 팀의 주축 선수답게 경기 후 만난 김태형은 싱글벙글이다.
부산상고 출신으로 1991년 롯데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했던 김태형은 6시즌 통산 21승(22패)의 프로 성적을 남겼다. 1997년 이적한 한화에서 프로 생활을 마감했다.
“프로를 그만둘 때 너무 마음이 힘들어서 야구는 다시 못할 줄 알았어요. 1999년에 세종공업이 야구팀을 만들었다고 소개를 받아서 입사하면서 다시 인연이 됐습니다.”
자동차부품 배기계 전문업체인 울산의 세종공업에서 벌써 근속 15년째인 직장인이다. 주중에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일을 하고 주말에는 유니폼을 입는다.
사회인야구는 ‘선출’의 투수 출전을 대부분 제한하고 있어 30대에는 주로 야수로만 경기를 뛰었다. 마흔을 넘긴 시니어가 되면서 이제 ‘일반인’ 분류가 돼 간간히 마운드에 오른다.
LG 양상문 감독이 기억하는 투수 김태형은 “머리가 좋고 컨트롤이 빼어났던 기교파 투수”다. 김태형은 “코치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오래 야구를 못해서 죄송했다”고 아쉬운 표정.
20대에 은퇴했으니 그리 긴 프로 생활을 하지 못했다. “부상이 있기도 했지만, 일단 공이 좋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해 당시 많은 노력을 했다. 끝내 잘 되지 않았고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고 한탄하면서 야구를 포기했다.
마흔이 넘은 지금, 20대의 자신을 돌아보며 김태형이 느끼는 가장 큰 반성은 “세상을 배웠다”고 믿었던 그때의 ‘착각’이다.
“노력해도 안되는 게 있더라고 말하고 다녔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끝까지 노력한 게 아니었던 거에요.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게 진실이었는데, 저는 끝까지 가보지 않고 포기를 먼저 했습니다.”
결과보다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과정에서 후회가 남는 프로 생활. 울산에서 짬짬이 야구를 가르치는 아이들과 후배들에게 김태형은 이제 “될 때까지
당당한 직장인 야구 선수로서 이번 직장인 야구대회가 몹시 반갑다. “많은 직장팀들이 회사의 든든한 응원 속에 자리잡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일은 할만한지 물었다. 가끔은 잘되고, 가끔은 힘들고, 때론 보람 있고, 때론 스트레스도 받는단다. 역시 직장 생활은 어디나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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