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김원익 기자] 구속은 가장 좋을 때보다 무려 시속 15km 정도 줄었다. 하지만 어디 ‘칠테면 쳐보라’는 마음으로 배짱있게 던졌다. 스피드건에 찍히지 않는 이 패기가 SK의 신예 잠수함 투수 박민호의 첫 승 비결이었다. 야구를 향한 열정도 신인답지 않게 진국이다.
박민호는 9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2014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5⅔이닝 동안 7피안타(1피홈런) 1탈삼진 2실점으로 호투, 팀의 9-3 승리를 견인하며 데뷔 첫 승을 거뒀다. 시즌 3번째 등판만에 얻은 성과. 올 시즌 SK선발 중에 유일하게 기회를 얻어 첫 선발승을 올렸다. 그럼에도 만족을 모르는 박민호다. 9일 승리 직후 만난 박민호의 상기된 얼굴에는 기쁨이 고스란히 들나 있었다.
↑ 박민호의 구속은 가장 좋았을때보다 뚝 떨어져있다. 하지만 지금의 열정이라면 곧 구속을 회복하거나, 구속 대신 다른 성장을 이뤄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듯 하다. 사진=김재현 기자 |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부모님이다. 박민호는 “첫 번째 선발이 광주 KIA전이었는데 부모님이 원정에 직접 응원을 오셨다. 그런데 그날 부진해서 속상했다. 오늘 부모님이 다시 오신 문학에서 이렇게 첫 승을 거둬서 설욕한 것 같은 기분도 있어 더 기쁘다”고 했다.
야구를 하면서 부터 오매불망 기다렸던 프로 첫 승이지만 납득할만한 투구로 이뤄내고 싶기도 했던 경험이기도 했다. ‘운으로 첫 승을 하는 건 요행인 것 같다’고 말해왔던 박민호였다. 결국 첫 승을 달성하자, 박민호는 “부족한 부분이 많이 나왔다. 보완할 점이 많다”며 고개를 저었다.
10일 경기 전 다시 만난 박민호는 여전히 아쉬움이 많이 남은 모습이었다. 박민호는 “구속이 많이 떨어졌다”며 전날 내용이 완벽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2014 신인드래프트 2차 3라운드 33순위로 SK에 지명된 박민호는 프로에 입단하면서 팔 높이를 스리쿼터 정도까지 올려 최고 145km 정도의 공을 던졌다.
그런데 9일 경기서는 최고 구속이 132km에 불과(?)했고 평균 구속은 120km 후반대에 머물렀다. 최고와 비교하면 무려 15km 이상의 폭락이다. 9일 경기 후 박민호는 “팔 높이를 낮추면서 제구를 가다듬는데 중점을 뒀다. 구속이 많이 떨어졌는데 일단은 제구력이 먼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박민호는 “팔을 낮춘 것이 예전 폼으로 돌아간 것인데 스피드를 내면서 힘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아직은 확실한 감을 잡은 것이 아니다”라며 “그래서 오늘 경기 중에도 부족한 점이 많았다”며 본인의 투구에 대해서 좀처럼 만족하지 못했다.
현역 시절 명 잠수함 투수였던 조웅천 투수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알을 깨고 있다. 구속이 떨어진 현재는 과도기인 셈. 9일 박민호는 김주찬에게 선두타자 홈런을 맞는 등 경기 초반 불안했다. 하지만 이후 위기를 이겨내고 6회 2사까지 마운드를 지켰다.
‘홈런을 맞고 불안하지 않았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박민호는 “김주찬 선배가 홈런을 쳐서 그라운드를 도는 동안 시간이 있으니까 로진백 한 번 다시 만지고 ‘1점 페널티 KIA에 주고 시작하는걸로 생각하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그냥 던졌다”고 했다.
특히 이날 박민호는 단 1개의 볼넷도 내주지 않고 정면승부로 KIA 타자들에 맞섰다. 박민호는 “132km 볼이지만 쳐볼테면 쳐보라는 마음으로 던졌다”며 이날 든든한 배짱을 가지고 던졌던 것이 위기를 벗어난 비결 중 하나였다고 밝혔다.
박민호가 이틀 동안 여러 취재진을 만나 밝힌 목표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이었다.
박민호는 “당장 후반기만 해도 어디서 던질지 모른다. 선발로 나올지 구원으로 나올지 1군에서 던질지 모르는 일이다. 1군에서 끝까지 던지고 싶다”고 했다. 또 “보완할 점을 많이 느끼고 있다. 점점 더 발전하고 싶다”고 했다.
‘스프링캠프 최고의 발견’ 이후 엔트리에도 승선했지만 단 하루만에 퓨처스리그로 내려갔다. 이후 긴 담금질. 그 기간 박민호는 1군에서 뛸 수 있는 프로가 되기 위
메이저리그 전설의 300승 투수 톰 글래빈은 “야구를 위한 나의 열정은 스피드건에 찍히지 않는다”고 했다. 스스로를 깨우치고 채찍질하는 열정을 유지할 수 있다면 지금의 구속은 중요하지 않다. 야구팬들이 주목해봐도 좋을 또 한 명의 신인이 등장한 것 같다.
[one@mae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