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은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흑역사’로 기록된다. 1994년 5위, 1995년 5위, 1996년 6위. 삼성이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건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1993년 한국시리즈에서 해태 타이거즈에 패한 뒤 삼성은 무기력해졌다. 1986년, 1987년에 이어 한국시리즈에서 해태에 무릎을 꿇은 것만 세 번째이니 선수들은 물론 구단 전체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선진야구기법 도입 등 팀 성적을 올리기 위한 온갖 처방을 했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반면 해태는 삼성의 절반도 안 되는 팀 운영비를 쓰면서 우승을 밥 먹듯 해대니 당시 프로야구는 돈 쓰는 구단이 바보 취급받던 시절이었다. 실제 삼성 구단 관계자가 자신들의 적극적인 투자에 대해 자랑삼아 설명하다 해태 구단 관계자로부터 “우승도 못하는 주제에 입 닥쳐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였다.
↑ 20년전 "흑역사"의 삼성 라이온즈가 지금의 천하무적으로 재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2013년 한국시리즈 3연패를 달성한 삼성 선수단. 사진=MK스포츠 DB |
2000년은 삼성 야구 역사에 전환점이 된 해다. 삼성이 선택한 마지막 카드. 그것은 바로 ‘해태 야구의 이식’이었다. 이는 삼성 야구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신필렬 사장, 김재하 단장의 손에서 이뤄졌다. ‘신필렬-김재하 조합’은 그 동안의 삼성을 송두리째 바꿨다. 제일주의, 자존심 같은 거추장스런 짐은 모두 내려놓았다.
이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김응용 모셔오기였다. 주변의 강한 반대에 부딪쳤지만 우승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특히 보수적인 대구민심은 반감으로 들끓었지만 김재하 단장은 “해태가 버린 구정물이라도 마시고 싶은 심정”이라고 당시 절실했던 상황을 나타냈다.
그 다음 ‘신필렬-김재하 콤비’가 공언한 내용은 ‘현장은 현장에게’였다. 다시 말해 선수단 내부 문제는 전적으로 감독을 위시한 코칭스태프에게 맡긴다는 내용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때 까지만 해도 삼성의 ‘현장 간섭’은 도를 넘었던 것이 사실이다.
신필렬 사장과 김재하 단장은 바깥에서 들려오는 이러쿵저러쿵 말들에 대해서 귀를 닫았다. 다른 구단 사장들이 “천하의 삼성이 김응용 감독 한 명에게 끌려 다녀서야 말이 되느냐”고 조롱했지만 신 사장은 “나는 야구를 모른다”는 한 마디로 일축했다.
삼성은 마침내 2002년 그 토록 갈구하던 ‘딱 한 번만 우승’에 성공한다. 그 뒤로 삼성은 다시 변신한다. 곳곳에 흩어져 있던 삼성 출신들을 하나둘 불러 모았다. 김성래 김용국 김현욱 김태한 강기웅 등이 벗어놨던 친정 유니폼을 다시 입었다. 비록 선수시절엔 ‘우승 못한 죄’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지만 야구 엘리트로서의 자부심마저 버린 것은 아니었다.
삼성이 ‘해태야구 이식’에서 배운 점은 ‘질서’였다. 선후배간의 질서, 코칭스태프와 선수간의 질서를 삼성 특유의 체계적인 육성 시스템과 접목시켰다.
2014년 삼성을 보는 야구인들
20년 전 삼성이 헤맸던 깜깜한 터널. 삼성이 걸어온 길을 다른 구단이라고 못할 건 없다.
[MK스포츠 편집국장 dhkim@mae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