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김영기(78) 한국농구연맹(KBL) 신임 총재가 1일 강남구 논현동 KBL센터에서 취임식을 갖고 프로농구 부흥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지난 2004년까지 KBL 제3대 총재를 지냈던 김영기 총재는 10년 만에 다시 프로농구의 부름을 받고 총재직을 맡았다. 경기인 출신인 김 총재는 ‘농구의 품질’을 강조했다. 김 총재는 “프로농구는 다시 한 번 팬들에게 열정 어린 사랑을 받는 종목으로 도약하느냐 아니면 현상 유지를 하느냐 하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며 “과거의 영광을 넘어 새로운 프로농구의 전성시대를 열도록 KBL을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 되어 저 높은 정상을 향해 한걸음 나아가자”고 밝혔다.
↑ 김영기 KBL 신임 총재. 사진=한희재 기자 |
배재고와 고려대를 졸업한 김 총재는 국가대표로 활약한 경기인 출신 총재로 1956년 멜버른올림픽과 1962년 자카르타아시안게임, 1964년 도쿄올림픽에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현역 은퇴 후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과 유고슬라비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남자 농구대표팀 감독을 맡아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세계선수권대회 9위의 성적을 냈다. 1984년 LA올림픽 한국선수단 총감독을 지내기도 했던 김영기 총재는 대한농구협회 이사와 부회장, 대한체육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또 김 총재는 KBL 전무이사와 부총재(1999~2002년)를 거쳤고, 2002년 11월부터 2004년 4월까지 KBL 제3대 총재를 지냈다. 2003년 12월21일 안양 SBS가 판정시비가 발단이 돼 전주 KCC전에서 몰수패를 당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했다.
<취임사 전문>
영원한 승부, 뜨거운 감동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여러분 속으로 뛰어든 지 벌써 열 여덟 해를 거듭했습니다. KBL은 일찍이 어느 나라 어느 종목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짧은 시간에 급성장을 거듭하여 한 때 우리 프로농구가 국내 최고인기 스포츠로 그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정점에 있던 KBL은 경기운영의 여러 가지 내적 요인으로 농구 품질을 향상시키는데 실패하는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잃어 갔습니다.
숨을 고르고 제2의 도약을 위해 더 높은 정상에 도전해야 할 때 우리의 마음은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불타는 정열은 식어갔고 소중한 우리 팬에 대한 성실함은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오만이 자리 잡았습니다.그 오만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열광하는 관중을 버리고 선수들은 경기 중 경기장을 떠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크고 작은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났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농구팬들이 프로농구에 등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그 원망과 탓을 구단은 KBL에 KBL은 지도자에 지도자는 심판에 심판은 선수에게 돌리려 했습니다.
이렇게 KBL은 흩어지고 분열되어 갔습니다. 저의 후임자이며 선임자인 김영수, 전육, 한선교 총재는 최고 인기를 되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오늘 저를 이 자리에 다시 불러주신 것은 이것을 해결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저는 여러분들께 초심의 자세로 기본에 충실하면 KBL이 다시 한 번 우뚝 설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우리 프로 농구는 다시 한 번 팬들에게 열정 어린 사랑을 받는 종목으로 도약하느냐 아니면 현상 유지를 하느냐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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