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오는 18일 쿠이아바의 아레나 판타나우에서 열릴 2014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H조 한국-러시아전. 한국이 가장 경계했던 ‘러시아 킬러’가 그 무대에 설 수 없게 됐다.
러시아의 ‘주장’ 로만 시로코프(33·크라스노다르)가 아킬레스 부상 회복이 더뎌지면서 월드컵대표팀 최종 명단에서 제외됐다. 파비오 카펠로 감독은 7일 오전(한국시간) 모로코와 평가전을 마친 후 시로코프의 탈락을 공식 발표했다.
러시아의 12년 만에 월드컵 진출을 이끌면서 개인적으로도 첫 월드컵 출전의 꿈을 키웠는데, 물거품이 됐다. 33세의 나이를 고려하면, 4년 뒤 자국에서 열릴 월드컵 출전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다. 시로코프로선 우울한 하루였을 터다. 하지만 한국으로선 분명 기뻐해야 할 하루였다.
↑ 러시아의 주장인 시로코프는 킬러 자질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는 브라질행 비행기에 오르지 못했고, 러시아는 구심점을 잃었다. 사진 제공=TOPIC/Splash News |
주장 완장을 차고 있는 시로코프는 러시아의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주장으로서 ‘원 팀’으로 잘 이끌었다. 카펠로 감독의 신뢰가 두꺼운 건 당연. 4-3-3 포메이션에서 중원의 키를 쥐고 있으며 경기 조율 능력이 탁월하다.
게다가 2선 침투 능력도 뛰어나 적극적인 공격 가담과 함께 전문 공격수 못지않게 ‘골 냄새’도 잘 맡는 킬러였다. A매치 12골(41경기)로 케르자코프(81경기 25골)에 이어 브라질월드컵 예비 명단에 오른 30명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골을 기록했다.
브라질월드컵 지역 예선에서도 3골을 넣으며 팀 내 득점 공동 3위였다. 특히, 그의 골은 영양가 만점이었는데, 아제르바이잔전(홈 1-0 승 / 원정 1-1 무)에서 모두 골을 넣었다. 시로코프의 골이 없었다면, 러시아의 월드컵 본선 직행은 불가능했다.
시로코프의 무서움은 지난해 11월 UAE(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에서 가진 평가전에서도 잘 드러났다. 풀타임을 뛴 시로코프는 전반 12분 예리한 크로스로 파이도르 스몰로프(안지)의 골을 도왔다. 골키퍼 정성룡(수원)의 판단 미스가 있었으나 시로코프의 찬스 메이킹 능력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단순히 득점 장면에서 뿐만 아니라 러시아가 한국보다 중원에서 우위를 점하며 후반 몰아칠 수 있었던 데에는 시로코프의 활약이 절대적으로 컸다.
그런 시로코프가 빠졌다. 물론, 러시아는 특정 한 선수에 의존하지 않는다. 카펠로 감독의 스타일상 잘 다듬어진 조직력을 바탕으로 팀을 꾸린다. 그러나 시로코프는 예외다. 그저 같은 선수 한 명일뿐이라고 표현하기 어렵다. 시로코프는 카펠로 감독의 전술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잘 이행하는 선수였다. 구심점을 잃었고 전술적으로도 큰 타격이다.
러시아는 ‘플랜B’가 불가피해졌다. 시로코프 중심의 전술에 칼을 들어야 한다. 데니스 글루샤코프(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이고르 데니소프(디나모 모스크바), 빅토르 파이줄린(제니트), 알란 자고에프(CSKA 모스크바)
홍명보호로선 예의주시했던 ‘눈엣가시’ 하나가 사라졌다. 여전히 러시아는 강하나, 시로코프의 부상 낙마로 그 강인함이 약해진 건 자명하다. 러시아전에 맞춰 미국 마이애미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태극전사들에게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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