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는 관용구는 고육책의 다른 표현이라 봐도 무방하다. 기본적으로 ‘아쉽지만’이라는 감정이 담겨 있다. 하지만 황선홍 감독의 포항이 펼치고 있는 고육책은 느낌이 다르다. 올 시즌 포항은 어느 정도 “이가 없어 잇몸으로”라는 심경으로 시즌을 준비했고 그렇게 소화하고 있다. 실상 지난해부터 이어진 흐름이다.
구단 사정상 외국인 선수를 단 1명도 쓸 수 없고 FA 선수들과의 재계약도 실패하면서 또 누수가 생겼다. 지난 시즌 우승에 상응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투자는 당연해야했으나 외려 현상유지도 버거웠다. 이런 상황 속에서 황선홍 감독은 다른 팀들에 비해 신인급 선수들을 많이 기용하고 있다. 이가 없기에 잇몸에게 시선을 돌린 것인데, 결과는 전혀 아쉽지가 않다. 잇몸인 줄 알았는데 모조리 ‘건치’였다.
↑ 황선홍 감독은 다른 팀들에 비해 신인급 선수들을 많이 기용하고 있다. 이가 없기에 잇몸에게 시선을 돌린 것인데, 결과는 전혀 아쉽지가 않다. 잇몸인 줄 알았는데 모조리 ‘건치’였다. 사진= MK스포츠 DB |
분명 기대 이상의 성적이다. 그리고 그런 기대 이상의 행보는 ‘잇몸’으로 여겼던 이들이 기대 이상의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기에 가능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승대다. 지난해 데뷔, 이제 겨우 프로 2년차에 불과한 김승대는 일약 포항의 핵심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했다. 아니, 기록상으로는 에이스에 가깝다.
김승대는 벌써 10골을 터뜨렸다. 정규리그에서 6골, ACL에서 4골이다. 황선홍 감독은 “솔직히 기대 이상의 활약이다. 아직 역습 상황에서의 골 장면이 더 많고, 밀집된 상황을 뚫고 골을 터뜨리는 능력을 키워야하지만 분명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말로 박수를 아까지 않았다.
실상 주전도 보장받지 못했던 선수다. 스스로 “그저 열심히만 하자는 생각으로 지난해를 보냈다. 올해도 이렇게 주전으로 나갈지 몰랐다”고 말할 정도로 아직은 내부경쟁이 우선인 신인급 선수다. 하지만 리그 전체 모든 선수들과의 경쟁에서도 앞서 나가고 있다. 현재 그는 K리그 클래식 득점선두다.
김승대는 마치 이명주를 보는듯하다. 일종의 ‘좋은 예’인 셈이다. 2012년 신인왕 출신의 이명주는 지난해 김신욱과 MVP 경쟁을 펼쳤을 만큼 ‘소포모어 징크스’를 비껴갔다. 포항이 지난 시즌 ‘더블’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이명주의 공이 지대했다. 올해도 ‘못 말리는’ 수준이다.
스틸타카라 불리는 포항의 아기자기하고 정확한 패스축구의 시작은 이명주이고 끝도 이명주다. 정규리그 8경기가 끝났는데 도움이 벌써 6개다. 스스로 3골을 넣기도 했다. 경고누적으로 출전치 못했던 지난 20일 포항과의 9라운드 이전까지, 2~8R까지 7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를 올리면서 도무치 부진을 모르고 있다. 3년차 이명주 그리고 2년차 김승대의 뒤를 따르는 1년차 새내기도 있다. 포항 화수분 축구의 바통을 잇는 손준호가 주인공이다.
ACL 16강 진출을 확정짓던 오사카전 승리의 ‘보이는 주역’이 이명주와 김승대였다면 손준호는 ‘보이지 않는 영웅’이었다. 전반 40분 미나미노 타쿠미로부터 거친 태클을 유도해 퇴장 시켰고 불안한 리드를 지키던 후반 20분, 김승대에게 완벽한 패스를 연결해 승리의 쐐기를 박게 한 이가 손준호다. 이명주의 로빙패스를 정확히 트래핑한 손준호가 김승대에게 연결해 골을 터뜨리던 모습은, 포항 유스의 힘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그간 빛을 보지 못했던 늦깎이 유창현도 자신의 몫을 하고 있으며 2012년 AFC U-19 선수권에서 주목을 받았던 문창진 역시 올 시즌 발전된 기량으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허전해 보이던 ‘포항’이라는 상자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보물들이 계속 나오는 형국이다.
지난 20일 이명주가 경고누적으로 출전치 못했던 서울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린 김승대는 “포항은 한 두 명에 좌우되는 팀이 아니다. 누가 없다고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고, 누군가의 공백을 채워줄 능력들도 갖추고 있다”면서 “누군가의 공백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다. 다른 선수가 그만큼 할 수 있다는 신뢰가 있다”는 말로 잇몸이 건치가 되는 배경을 설명했다. 외국인 선수 부재에 대해서도 “위축되거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없으면, 있는 선수들로 하
이가 몇몇 빠져 제대로 음식물을 소화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건강한 치아들이 안에서 새로 나온 형국이다. 임플란트를 택하지 않았던 치과의사 황선홍 감독의 선택은 옳았다. 결과가 크게 중요치 않은 23일 부리람과의 ACL 최종전에서 ‘황선홍 치과’의 힘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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