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日 니시노미야) 안준철 기자] 오승환(32·한신 타이거즈)이 ‘끝판대장’이라는 수식어를 들을 수 있는 이유는 마무리 투수이기 때문이다. 그는 2005년 단국대를 졸업하고 삼성에 입단하면서부터 마무리 투수의 운명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가 최고의 ‘소방수’로 평가 받는 데는 다른 이유가 숨어있다. 바로 숱한 시련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팔꿈치 수술을 받고 힘든 재활에 매진했던 그는 프로입단 후 클로저로서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 그러나 2009년과 2010년 어깨와 팔꿈치 부상으로 다시 좌절을 맛봐야 했다. 당시 그는 “이대로 무너지면 평범한 선수로 끝난다”며 자신을 채찍질 했고, 결국 2011년 자신이 세운 한 시즌 아시아 최다 세이브 기록(47개)과 타이기록을 세우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 이제 일본 무대에 선을 보인지도 한달째. 오승환은 10경기에 나가 1승 5세이브 평균자책점 2.70을 기록 중이다. 시작은 불안했지만 서서히 일본에서도 끝판대장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진(日 니시노미야)=천정환 기자 |
▲ 변화구, 새로운 무대 위한 ‘변화’
오승환이 일본에 진출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조언이 바로 변화구 장착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주로 직구와 슬라이더로 타자를 상대했다. 하지만 일본타자들이 전반적으로 배트를 짧게 잡고 커트를 하기 때문에 떨어지는 변화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실제로 오승환은 첫 등판이었던 지난달 29일 도쿄돔 요미우리전에서 첫 세이브를 신고했지만 투구수가 무려 32개까지 치솟았다. 특히 마지막으로 상대한 하시모토 이타루는 커트 끝에 15구 승부까지 끌고 가며 오승환을 괴롭혔다. 또 3일 교세라돔 주니치전에서도 오승환은 직구가 가운데로 몰리며 안타 2개를 허용 일본 진출 후 첫 실점을 기록했고, 9일 고시엔 요코하마전에서는 세이브를 올렸지만 안타 3개를 맞으며 2실점하며 불안감을 노출하기도 했다. 이때마다 일본 현지에서는 오승환의 변화구에 대해 문제 삼았다.
그러나 오승환은 느긋했다. 겨울 내내 갈고 닦은 변화구를 조금씩 풀어놓기 시작했다. 바로 시범경기에서도 관계자들을 놀라게 한 커브와 스플리터, 투심이 바로 오승환의 신무기였다. 효과도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투심은 한국에서도 간간히 던졌지만 직구의 위력을 더 배가시키고 있고, 간간히 던지는 커브와 스플리터에 상대 타자들이 놀라는 장면도 나오고 있다. 오승환은 “변화구에 대한 조언은 나도 여실히 느끼는 부분이라 감사하다”며 “새로운 무대에 도전하는 입장에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너무 조바심 내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 오승환이 자신의 전매특허인 돌직구를 뿌리고 있다. 이제 고시엔구장을 찾는 한신팬들에게 오승환의 돌직구는 또 다른 볼거리다. 사진(日 니시노미야)=천정환 기자 |
▲ 돌직구란…오승환의 ‘정체성’
변화구 승부가 늘었다고 해서 오승환의 ‘돌직구’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150km가 넘는 직구를 힘차게 던지고 있다. 그러나 일본타자들의 방망이에 맞아나가며 한국에서와 같은 압도적인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급기야 2세이브째를 거둬던 지난 9일 고시엔 요코하마전에서는 3안타를 맞으며 2실점하자 ‘스포츠호치’는 오승환의 돌직구에 위압감이 없었다고 혹평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오승환은 자신의 직구를 버리지 않았다. 변화구 비중을 늘렸음에도 직구는 꾸준히 던지고 있다. 오히려 최근 6경기 연속 무실점히며 직구가 더욱 위력적이라는 평가다. 일본 취재진도 “점점 압도적이다”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오승환의 돌직구는 좀 독특하다. 그는 레슬링선수보다 좋은 악력을 이용해서 공을 손바닥으로 감싸지 않고 엄지와 검지, 중지만으로 공을 찍어잡는다. 엄지도 90도 각도로 구부려 공을 받치는 형태다. 오승환에게 돌직구의 비결을 묻자 “나도 잘 모르겠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은 돌직구는 오승환에게 프라이드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는 “마무리 투수로서 느린공을 던지는 건 부담이 된다. 똑같이 안타를 맞아도 느리게 던졌다가 맞으면 기분이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 장점은 분명히 ‘무엇이다’라고 나와 있다. 장점을 살리면서 변화를 줘야지 변화에만 집중한다면 장점(돌직구)가 빛을 잃을 수 있다. 그러면 이도저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분명 ‘돌직구’는 오승환을 대변하는, 그리고 오승환을 잘 설명하는 오승환의 정체성이었다.
↑ 고시엔구장 계단을 오르면서 훈련 중인 오승환. 마무리투수로서 언제든지 나갈 수 있게 준비하고 있다. 사진(日 니시노미야)=천정환 기자 |
▲ 마무리 투수?…이젠 당연히 해야 할 일
단국대 시절 오승환과 배터리를 이뤘던 단짝 친구인 송산 스포츠인텔리전스(오승환의 에이전시) 팀장은 “(오)승환이는 마무리 투수로 타고난 성격”이라고 말했다. 묵직한 돌직구로 마운드에서 타자들을 윽박지를 수 있는 것도 오승환의 큰 장점이지만 마운드 위에서 표정변화 없이 자기 공을 묵묵히 던지는 모습을 가리킨 것이다. 일본에서도 오승환의 무표정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한국에서처럼 ‘돌부처(石佛)’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마무리 투수의 생활은 고되다. 경기 상황에 따라 등판할 수도 있고, 몸만 풀다가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선발진이 약한 한신은 불펜을 가동해 승리를 챙기는 경우가 많아 오승환은 항시 대기해야 한다. 천하의 오승환이라고 해도 심리적으로나 체력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들 수 있는 여건이다. 그러나 오승환은 “언제든지 마운드에 올라갈 수 있게 컨디션 조절을 하는 것은 불펜의 의무”라며 “등판간격 때문에 부진하다는 얘기는 결국 핑계 밖에는 되지 않는다”며 잘라 말했다.
그렇다면 마무리 투수 9년차인 오승환만의 컨디션 조절법이 있을 법했다. 경기 중간에 쪽잠을 자는 것도 널리 알려진 오승환의 컨디션 관리법이다. 하지만 오승환은 “러닝하고 캐치볼을 하는 등 큰 측면에서는 비슷비슷하지만 그 때 몸 상태에 따라 다르다”며 “남들처럼 루틴이 있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5분 대기조처럼 박빙의 상황에서 팀 승리를 지키기 위해 항상 준비해야 하지만 오승환이 9회
“경기를 마무리 짓는 일은 이제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진다.”
일본에서는 한국에서처럼 종소리가 울리지 않지만 오승환은 자신의 새로운 등장곡 ‘OH(오)’와 함께 나타나 힘차게 돌직구를 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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