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日 후쿠오카) 김원익 기자] ‘빅보이’ 이대호(32·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 4번타자는 마치 숙명과도 같았다. ‘조선의 4번타자’로 불리던 한국무대에서나, 일본 진출 3년 째 단 한 번도 놓치지 않고 있는 4번은 이대호에게 어떤 의미일까. 이대호는 영광보다 먼저 책임을 말했다. 뛸 수 있다면, 경쟁력을 유지하는 날까지 4번타자의 맡겨진 소임을 다하겠다는 것이 이대호의 각오였다. MK스포츠가 일본 현지에서 새로운 행보를 시작한 이대호를 만났다.
↑ 우승은 오랜 염원이다. 사진(日 후쿠오카)=한희재 기자 |
올해 이대호는 소프트뱅크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한국인 투수 김무영(29)과 함께 우승에 대한 각오를 다지고 있다. 우승에 대한 오랜 갈증만큼, 기대감이 크다.
이대호는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다. 선수들한테도 많이 얘기를 하는데 어떤 한 팀이 우승을 한다면 프런트, 선수, 코칭스태프가 모두 열심히 했기 때문에 우승이라는 결과가 나는 것이다. 선수라면 대충 어느 순위에 만족하려고 경기를 하지 않는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어 이대호는 “우승하려고, 1등을 하려고 야구를 하는 것이다. 개인은 우승 이후에 좋은 평가도 안 좋은 평가도 받을 수 있지만 보다 큰 축하와 기쁨 속에서 다 승화되는 것이 아니냐”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항상 우승만을 노리면서 운동을 했다. 준우승을 한다고 누가 인정해주지 않는다. 프로니까. 그러니 당연히 올해 목표는 우승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대호는 태극마크를 달고 2008베이징 올림픽, 2010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영광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프로 무대에선 단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했다. 소프트뱅크를 택한 이유 역시, 우승에 대한 열망이 크게 작용했다.
간절함에 대해 묻자 이대호는 “우승을 못해봤다니. 왜 그러시냐(웃음). 금메달이 두 개나 있다. 올림픽 금메달,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땄지 않나”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이내 진지한 목소리로 “우승하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다. 우승을 했을 때 전광판에 ‘우승’이라는 글씨가 뜨고 거기에 4번타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으면 어떤 기분일까 싶다. 이제 시작이니까 끝까지 열심히 해서 한 번 우승을 해보고 싶다”며 가슴속에 담겨져 있는 간절한 우승에 대한 열망을 내비쳤다.
↑ 4번은 운명이다. 사진(日 후쿠오카)=한희재 기자 |
4번은 내 운명
이대호는 일본 진출 이후 3년째인 올해까지 전 경기에 4번타자로 나서고 있다. 첫해였던 2012년에는 144경기 전 경기를 나섰고, 2013년에는 재계약과 관련해 이야기가 오갔던 마지막 3경기를 제외한 141경기에 모두 4번으로 출장했다. 올해 역시 마찬가지다. 소프트뱅크로 팀을 옮겨서도 팀의 16경기에 모두 출장해 부동의 4번타자로 나서고 있다. 아키야마 고지 소프트뱅크 감독은 그런 그에게 무한신뢰를 보내고 있다. 이런 이대호를 두고 일본 언론은 자주 ‘만족을 모르는, 책임감이 투철한, 굳건한’등의 표현을 주로 사용하며 부동의 4번타자로 인정하고 있다.
사실 조금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위치다. 더군다나 이대호는 외국인 선수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때도 있고, 예기치 못한 부상에 시달릴때도 있다. 이대호는 “내가 전 경기 출장을 목표로 하는 것은 4번이라서가 아니다. 나는 야구장에 오면 늘 경기에 나가고 싶다. 4번이나 5번이나 경기에 나가면 좋은 것이다. 4번 타순에 연연하지는 않는다. 결과를 내서 믿음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가능한 오랫동안 4번타자로 끝까지 남고 싶다는 목표도 내비쳤다.
야구를 시작한지 이제 수십년이 지났다. 철모르던 시절의 열정은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책임감과 경기에 대한 간절함은 더 늘었다.
“나이 들어서 기량이 떨어지고, 또 언제 아파서 경기에 나가지 못하고 4번을 칠 수 없게 될지 모른다. 선수라면 분명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부담감은 야구 선수로 당연히 겪어야 되는 것이고, 좋은 선수라면 4번의 중압감을 이겨내고 쳐야 한다. 그래도 나는 4번타자니까, 어지간하면 뼈가 부서지지 않는 한 경기에 나가려고 한다. 전 경기에 출장하는 것은 목표가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
후지이 야쓰오 타격코치는 이런 이대호에 두고 아래와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한 적이 있다.
“보통 외국인 선수들은 개인이나 팀이 부진하더라도 경기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대체적으로 개인주의적인 편이다. 그런데 이대호는 팀이 좋지 않을 때나 자신이 좋지 않을 때 많은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다. 이대호는 보통의 외국인 선수들과 분명히 다르다.”
↑ 4번은 책임감으로 먼저 다가왔다. 사진(日 도코로자와)=한희재 기자 |
이제는 야구를 즐겁게 하고 싶다
소프트뱅크 이적 이후 여러모로 마음의 부담을 덜었다. 약체팀이었던 오릭스 버팔로스 시절보다 더 즐기는 야구를 하겠다는 생각이다. 이대호는 “아무래도 올해는 재미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도 중계를 많이 해주더라. 소프트뱅크는 한국에서 롯데에 있을 때처럼 공격야구를 하는 팀이다보니 나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야구를 보는 것이 더 재밌어지지 않을까 싶다”며 활짝 웃었다.
이제 어떤 야구를 하고 싶어졌을까. 그토록 좋아하는 야구이기에, 내가 더 즐거운 야구를 하고 싶어졌다.
“어렸을 때는 야구를 무조건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는데 이제는 즐기면서 하고 싶다. 너무 성적을 생각하다보니까 내 자신이 너무 힘들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지난해 슬럼프도 있었다. 올 해는 즐기려고 한다. 홈런을 못 칠 때도 있고 칠 때도 있는데 하루 결과에 따라서 인상 쓰고 일희일비하지 않고 좋아하는 야구 즐기면서 하고 싶다.”
지난 2년간 이대호는 최약체 오릭스의 타선을 이끌며 팀 성적과 자신의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상당했다. 지난해 현지 취재 당시에도 맹활약을 펼치고도 팀이 패배 때문에 늘 웃지 못했던 이대호였다. 개인 성적 또한 팬들의 기대치가 큰 만큼 그의 부담도 컸다.
↑ 올해는 즐기면서 야구를 하려고 한다. 사진(日 후쿠오카)=한희재 기자 |
아무래도 국내팬들의 관심은 예전 이승엽, 박찬호, 임창용 등이 활약했던 당시에 비해 현재 메이저리그에 더 쏠려 있는 것이 사실이다. 팬들의 사랑에 큰 힘을 얻는 선수들의 입장에서는 줄어든 관심이 서운할 수도 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당연한 부분이다. 거기는 세계 최고의 리그고 나도 (추)신수와 (류)현진이를 응원하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팬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물론 조금은 서운한 점도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뛰는 경기를 무조건 많이 봐주세요’하고 팬들에게 강요할 수도 없지는 않나(웃음) 나는 내 자리에서 열심히 하는 것이다. (추)신수나 (류)현진이나 나처럼 외국에 나가 있는 선수들을 팬들이 많이 응원해주시면 정말 큰 힘이 된다. 일본야구를 좋아하는 팬들도 있을 것이며 나를 응원해주는 팬들이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또 일본 현지에 소프트뱅크를 응원하는 많은 팬들이 있다. 그 분들을 위해서 더 열심히 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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