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 ‘위기’라는 단어가 팽배한 K리그에 오랜만에 산뜻한 소식이 찾아들었다. 4월14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새로운 프로축구단이 창단을 선언했다. 주체는 이랜드그룹. 연 매출 10조원에 이르는 적잖은 규모의 기업이 축구판에 뛰어들겠다는 선언을 한 의미 있는 날이다.
이랜드그룹은 14일 창단발표를 겸한 기자회견에서 올해(2014년) 안으로 창단 작업을 완료하고 2015시즌부터 리그(K리그 챌린지)에 참가, 빠른 시일 내에 K리그 클래식으로의 승격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러모로 포부가 상당히 크다. ‘No.1 인구 프로축구단’이라는 슬로건에 맞게 최고의 인기 구단을 만드는 게 지향점이라고 밝혔다.
그렇다고 성적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란다. 성적에 대한 목표치도 상당히 높다. 이랜드축구단은 “2016년까지 평균관중 1만명, 오는 2018년까지 2만5천명 그리고 2020년까지 평균관중 4만명을 만들겠다”면서 “궁극적으로 K리그 클래식 우승과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도전할 것”이라는 뜻을 전했다. 이랜드 관계자는 “팬들이 많이 찾기 위해서는 결국 성적이 나야한다”는 말로 인기와 안정된 운영뿐 아니라 성적까지 노린다는 야망을 숨기지 않았다.
결국 ‘3마리 토끼’를 모두 노리고 있는 셈이다. 성적과 인기, 이익까지 모두 손에 잡겠다는 엄청난 포부다. 이는 곧 모든 프로구단들의 ‘이상향’에 가깝다. 그렇지만 아직 구체적인 플랜은 없다. 세부 계획이 발표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구단들과의 차별성도 미리 짐작키 어렵다. 당연히 가능성을 점치기도 힘들다. 현 시점에서 이랜드축구단 쪽이 제시한 청사진은 ‘팬들이 만드는 클럽’ ‘팬들이 자산인 클럽’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랜드 측은 “모든 것을 팬들과 함께 만들어나갈 것이다. 구단 이름부터 엠블럼까지, 팬들의 의견을 수렴할 것이다. 서울 인구가 1000만이다. 수면 아래서 목말라하고 있는 축구팬들이 많다”면서 “그냥 축구단을 다 완성한 뒤 경기를 보러 오라고 강요할 생각이 없다. 처음부터 팬들과 함께 만들어 나갈 것이다. 기본적인 플랜이 세워지면 일단 팬들과 5~10차례 만남을 가질 것이다. 팬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팬들과 함께 구단을 만들어간다면 결국 팬들이 우리를 명문클럽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뜻을 전했다.
물론 ‘팬들의 뜻을 반영하는 구단 운영’ 역시 이랜드 축구단만의 차별성은 아니다. 이런 주장 역시 많은 구단들의 공통된 지향점이다. 관련해 이랜드 측은 “기존 구단들은 이미 여러 해 동안 축구단을 운영해왔다. 도중에 개혁을 하는 것과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만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를 잡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전했다. 백지 상태이기 때문에 제대로 채울 수 있다는 뜻인데, 적어도 설명만 보면 ‘전례 없는 모델’에 대한 장밋빛 미래로 가득하다.
사심 없이, 이랜드의 초심이 끝까지 이어지기를 축구인의 한 사람으로 기대하고 응원한다. 여러 가지 고무적인 배경들도 보인다. 엄청난 시장인 수도 서울에 드디어 또 하나의 축구단이 생긴다. 머잖아 잠실을 안방으로 쓰는 이랜드와 상암에 연고를 둔 FC서울의 ‘강남-강북 더비’가 펼쳐진다면 그 파장은 짐작키도 어렵다.
다른 기업구단들과 달리 소비재 중심의 모기업이 운영하는 축구단이라는 기대감도 따른다. 이랜드그룹은 ‘의/식/주/휴/미/락’ 6개 영역에 걸쳐 250여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먹거리 즐길거리 볼거리 등 스포츠와 관련이 있는 아이템들이 대다수다. 이랜드 측이 “이런 말을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다른 기업 구단들과 다르다. 각기 다른 6개 영역의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우리만의 노하우를 통해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생각이다. 기존 구단들과는 다른 복합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다”는 말로 자신감을 피력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과감한 투자도 약속했다. 구체적인 금액을 제시하진 않았으나 “제대로 해볼 것이라는 자신감이 없다면 나서지 않았다”는 말로 어설픈 발자국을 찍지 않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외국인 감독을 포함한 7~8명의 감독 후보군을 놓고 벌써 저울질 중이고 나중에는 특A급 외국인 선수도 영입해 아시아 무대(ACL)을 노리겠다는 뜻도 전했다. 거듭 말하지만, 지금까지는 매력적이다.
품에 숨기고 있다는 ‘칼’은, 아직 눈으로 확인하진 못했으나 제법 날카로울 것 같은 느낌이다. 그 날카로움으로 침체된 축구판에 신선한 획을 긋겠다는 각오다. 언급했듯, 부디 번쩍이는 휘둘림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개되기 전까지 부단하게 갈고 연마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많은 기대 속에서 출범한다. 하지만 기대 이면에는 의구심도 존재한다. 그룹 내 자금 유동성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사업적인 팽창 혹은 정치적인 이익을 위한 계산된 진입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물론 이랜드축구단 측은 “어떠한 외적 이유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부디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다.
품고 있는 칼이 그냥 ‘무’ 정도를 자르거나 ‘호박’을 찌르는 수준에서 그칠지, 아니면 판을 요동치게 하는 신선한 동력이 될지는 지켜봐야한다. 그 지켜보는 ‘감시자’는 오롯이 팬들의 몫이다. 이랜드축구단은 ‘백지’ 상태에서 팬들과 함께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 의지가 헛되지 않도록 혹은 탄력을 받도록 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도록, 팬들이 중요하다. 칼은 팬들이 어떻게 갈아주느냐에 따라 날카로움이 달라질 수 있다.
[MK스포츠 축구팀장 lastuncle@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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