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승부의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징크스’란 단순히 미신으로 취급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기고 싶기 때문이다. 이기고 싶다는 간절함은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신경이 쓰이게 한다. 입는 옷부터 행동하나까지 조심스럽다. 어떤 감독은 특정 브랜드 혹은 한 색깔의 넥타이만 고집하고, 어떤 감독은 경기 전 상대 감독과 절대 악수를 하지 않는다. 모두 징크스와 관련된 에피소드다.
가장 좋은 것은 이런 ‘경기 외적’ 요인들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괴롭히는 것들이 많아지면 감독이든 선수들 플레이에 집중키 어렵다. 특정 상대에 대한 강박관념 역시 마찬가지다. 흔히 천적관계로 표현되는 일방적 전적들도 일종의 징크스다. 이상스레 어느 팀만 만나면 정상적인 경기력이 나오지 않고 결과 역시 맥을 추지 못한다는 악연의 꼬리인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징크스를 깨지 못하면 좋은 성적을 기대키 어렵다.
↑ 8라운드는 유독 ‘징크스’와 관계가 있는 결과들이 나왔다. 그리고 징크스와 맞물린 결과와 큰 차이 없이 순위가 형성되고 있다. 사진= MK스포츠 DB |
시즌을 앞두고 “올해는 어떤 팀과 맞붙어도 자신이 있다”던 하석주 감독의 호언장담은 허풍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껏 우리를 괴롭혔던 상대들을 다 꺾고 싶다”는 바람도 뜻대로 진행 되고 있다. 개막전부터 약속을 지켰다. 전남은 지난 3월8일 FC서울과의 원정경기에서 1-0으로 이겼다. 서울전 5연패 사슬을 끊는 값진 승리였다. 4라운드에서는 울산도 1-0으로 꺾었다. 2010년 이후 여덟 번 맞대결에서 1무7패, 철저하게 약했던 징크스를 깼다.
그리고 전남은 13일 열린 부산과의 홈경기에서 또 하나의 벽을 허물었다. 2-1로 부산을 제압하면서 지난 2010년 7월 이후 4무5패로 열세에 놓여 있던 상대전적에 균열을 가했다. 하석주 감독의 포부가 지켜지면서 전남은 4승2무2패 승점 14점으로 3위까지 도약했다. 과연 다크호스다운 행보다.
전남과 부산전 뿐만 아니라 8R에서는 유독 징크스와 성적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결과들이 많이 나왔다. 리그 선두를 달리던 울산은 ‘전북 원정 징크스’에 울었다. 2010년 7월 이후 1무6패, 이상스레 전주성에만 가만 작아졌던 울산은 이번에도 징크스를 깨지 못했다 이어졌다. 12일 열린 전주 원정경기에서 울산은 이동국에게 PK 결승골을 허용해 0-1로 무릎을 꿇었다. 내내 1위를 달리던 울산은 5위로 떨어졌다. 천적관계를 지켜낸 전북은 4위다.
반대로 FC서울은 먹잇감을 놓치며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1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경남FC를 상대한 서울은 0-0 무승부에 그쳤다. 최근 7번 맞대결에서 5승2무 좋은 흐름을 이어가지 못한 채 승점 1점 추가에 그쳤다. 현재 그들의 순위는 11위, 초라한 위치다. 서울의 라이벌 수원은 인천에서 반대의 결과를 가져왔다. 지난 시즌 인천 원정에서 2번 모두 패(1-3, 1-2)했던 수원은 13일 올 시즌 첫 맞대결에서 3-0 완승을 거두면서 2위로 비상했다. 반면, 인천은 7경기 연속 골을 넣지 못하는 극심한 부진 속에 꼴찌로 내려앉았다.
포항이 지난해 2연승을 거두면서 기분 좋은 인연을 만들던 제주에게 또 다시 3-0으로 승리하면서 시즌 처음으로 1위 자리를 차지한 것까지, 8라운드는 유독 ‘징크스’와 관계가 있는 결과들이 나왔다. 그리고 징크스와 맞물린 결과와 큰 차이 없이 순위가 형성되고 있
결국 징크스란 대상보다는 자기 자신이 더 큰 영향을 준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자연스레 징크스는 깨지게 마련이고, 어려운 족쇄를 풀 수 있다는 것은 곧 강하다는 방증이다. 자신들에게 좋은 징크스를 지켜낸 포항과 전북, 자신들을 괴롭히던 징크스를 깬 수원과 전남이 상위권에 포진된 지금의 흐름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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