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잠실) 서민교 기자] 김기태(45) LG 트윈스 감독의 파격이 대박을 불렀다. 베테랑 김선우(37)는 아쉬웠지만, 신인 임지섭(19)은 화려한 데뷔전으로 대형 사고를 쳤다. 한 동안 사라졌던 류현진(28‧LA 다저스)의 향기를 풍긴 좌완 괴물의 탄생이다.
임지섭은 3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4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의 개막 2차전에 선발 등판해 5이닝 3피안타 4볼넷 2탈삼진 1실점을 기록하며 팀의 14-4 대승을 이끌었다. 투구수는 단 75개에 그쳤고, 주자가 있는 위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극복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 LG 트윈스 좌완 신인 투수 임지섭이 LA 다저스 류현진 이후 처음으로 고졸 신인 데뷔전 승리 투수로 우뚝 섰다. 사진(잠실)=옥영화 기자 |
임지섭의 개막 시리즈 선발은 모험이자 보험이었다. 1선발 후보였던 레다메스 리즈가 이탈하면서 선발진에 구멍이 생겼다. LG는 SK 와이번스와의 홈 개막 3연전 이후 휴식기가 있기 때문에 단발성을 쓰고 엔트리에 뺄 선수를 찾다 임지섭을 낙점했다.
임지섭으로서는 흔하지 않은 기회였다. 김기태 감독은 “미래 가치를 보면 결과가 좋지 않아도 된다. 임지섭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나도 궁금하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강상수 투수코치도 “기존 선수들에 비해 구위는 뒤지지 않는다. 고교 졸업 후 얼마 되지 않아 제구력은 보완할 것이 많다”면서 “도망가지 말고 당당하게 정면승부를 하라”고 주문했다.
임지섭은 거침이 없었다. 첫 타자 민병헌을 상대로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줬지만, 이후 공격적인 투구로 두산 강타선과 정면승부를 펼쳤다. 특히 김현수와 호르헤 칸투를 상대로 안타를 허용하지 않았다. 직구 최고 구속은 149㎞를 찍었다. 190cm, 94kg의 당당한 체구에서 나오는 왼손 강속구에 두산 타자들은 적응을 하지 못했다.
↑ 고졸 좌완 괴물의 앳된 미소. 김기태 감독이 꺼낸 임지섭 파격 카드는 제대로 통했다. 사진(잠실)=옥영화 기자 |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고졸 신인 투수가 데뷔전 승리를 거둔 것은 김태형(1991년 4월24일 롯데 김태형 사직 OB전), KIA 김진우(2002년 4월9일 광주 현대전), 한화 류현진(2006년 4월12일 잠실 LG전) 등 단 3차례밖에 없었다. 임지섭은 류현진 이후 8년 만에 고졸 신인 데뷔전 승리 역사를 새로 썼다.
임지섭은 LG 신인 투수 개막 시리즈 승리 역사도 새로 썼다. LG에서 개막 시리즈에 선발 등판한 투수는 김기범(1989년 4월8일), 김상태(1999년 4월4일), 경헌호(2000년 4월7일) 등 총 3명. 이 가운데 승리를 기록한 투수는 김기범 한 명뿐이다. MBC 청룡 시절 입단한 김기범은 잠실 OB전에서 9이닝 1실점(비자책) 완투승을 거둔 것이 유일하다. 그러나 김기범은 건국대 졸업 후 프로에 데뷔한 대졸 신인. 임지섭은 고졸 신인 최초의 개막 시리즈 승리 투수였다.
임지섭은 국내 프로행 이전부터 ‘초고교급’ 투수로 평가받았다. 고교 졸업 후 곧바로 메이저리그 도전을 고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임지섭의 선택은 국내 프로행이었다. LG는 지난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으로 임지섭을 지명했다.
임지섭은 고교 시절 ‘삼진왕’으로 불렸지만, 프로에서는 물음표가 붙었다. 150㎞대 강속구를 갖고 있는 좌완 파이어볼러라는 희소성의 가치는 높았으나 불안한 제구력과 큰 경기 멘탈에 대한 보완이 필요한 신인 투수였다.
그러나 이날 잠재적 가치를 데뷔전에서 폭발시키면서 LG의 미래를 넘어 한국 프
차명석 MBC 스포츠+ 해설위원은 “임지섭의 파격 카드가 성공한다면, 제2의 류현진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며 큰 기대감을 보였다. 전 LG 투수코치 출신인 차 위원의 눈은 정확했다.
김기태 감독의 임지섭 선발 파격 카드는 악수가 아닌 기막힌 묘수, 신의 한 수였다.
[min@maekyung.com]